마지막 출근 날, 미용실에서 머리 자르기
미용실에는 늦지 않게 도착해서 머리를 가볍게 자르고 다음 목적지인 이비인후과를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가려고 하는 그때였다.
원래 다니던 미용사가 미용실을 옮기게 돼서 그 미용사를 따라 처음 가보는 미용실에 간 거였다. 그래서 가벼워진 머리를 찰랑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은 나에게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낯선 동네였다. 강남역이 있는 대로변에서 한 블록 들어왔을 뿐인데 언제 상업지구였냐는 듯 이곳은 아파트 단지가 둘러싸고 있었다.
이미 벚꽃은 졌지만 그 자리는 내가 좋아하는 옅은 연둣빛이 만개했다. 살랑살랑 바람이 불고 오히려 살짝 덥기까지 해서 겉옷은 벗어던졌다. 그리고 롤러코스터의 <봄이 와>(정확히는 김현철 노래에 롤러코스터가 피처링)를 들으며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걸었다.
봄에 퇴사하는 건 처음인데 날씨가 좋으니까 뭐든 용서된다. 뭔가 확실하게 정해진 상태라든가 잘돼서(?) 나가는 건 아니다 보니 불안한 마음이 없잖아 있다. 그래도 날씨가 좋으니까 그런 불안한 마음을 지그시 눌러주는 효과가 있었다.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 길. 내릴 때쯤 되니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노래는 바로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였다.
하필 내릴 때가 돼서 끝까지 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보통 밤늦게 많이 선곡되는 곡인데 한낮에 들으니 신선했다. 물론 다니던 직장에 마지막 출근을 한 오늘 나의 상황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더 그랬다.
이비인후과에 들러 기침이 멎지 않는 원인이 알레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말에 피검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거리에는 연둣빛이 흘러넘쳤다. 결코 진한 초록빛이 아니다. 연하디 연한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강한 빛. 왜냐하면 이제 이 연둣빛을 시작으로 수많은 생명이 탄생할 것이고 이것이 찬란한 여름의 지인한 초록빛을 불러올 것이기에.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 길.
며칠 전 밤에 이 길을 걸었을 때는 밤의 봄 눈이 내린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동영상을 찍었지만 아무래도 잘 나오지는 않았다.
그동안 두 번의 퇴사는 각각 겨울과 가을에 했었다. 퇴사를 한다는 건 회사라는 거대란 덩어리에서 툭, 떨어져 나온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계절마저도 쓸쓸함과 소멸로 얼룩진 가을과 겨울에 한 퇴사니 한결 더 쓸쓸했던 거 같다.
봄에 하는 퇴사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해는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고 벚꽃은 흩날리고 연둣빛이 넘실대는 세상. 봄은 겨울을 벗어나 시작과 변화를 시도하고 우리를 둘러싼 주변의 색깔이 밝은 쪽으로 변한다. 그래서 뭐든지 잘될 거라는 암시를 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봄에 하는 퇴사도 나쁘지 않구나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