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의 기록 : 걸어서 시간여행 1편 - 아모레퍼시픽 본사
주말을 앞둔 금요일 출근. 오전엔 팀회의가 있었고 회의가 끝나고 팀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그리고 오후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리프레시 데이라 점심 먹고 곧바로 퇴근했다. 4월의 서울탐방, 짧은 여정이 시작된다.
4호선 신용산역에 내려서 2번 출구로 나왔다. 이렇게 높고 현대적인 건물이 있는 곳에서 15분 정도만 걸으면 아직도 철길 건널목이 존재하는 오래된 동네가 나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서울은 신구新舊 대조가 심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엄청난 번화가가 있는가 하면 그곳에서 바로 얼마 지나지 않은 곳에 아직까지는 옛 모습을 간직한 곳들도 존재한다. 가만 생각해 보니 타임머신도 안 탔는데 손쉽게 시간여행자가 된 느낌이다.
아모레퍼시픽 본사 건물은 길 건너편에서 사진을 찍어야 건물 전체를 찍을 수 있을 거 같은 정사각형에 가까운 건물로 한 프레임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일단은 지금 당장 내 눈앞에 보이는 건물의 일부라도 사진을 찍어본다.
외관이 독특하다. 통유리나 시멘트벽이 아니라 가느다란 선(실은 기둥이다)이 마치 씨실과 날실을 엮어 놓듯이 건물 전체를 감싸고 있다. 어찌 보면 감옥 같기도 하고 그 왜 짜조 튀김 같은 튀김 있잖아. 그런 튀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겉에 튀김옷이 얇아서 여러 줄들이 교차하는 형태로 보이곤 하는데 이 건물의 외관 또한 아주아주 커다란 튀김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참고로 지금의 나는 점심도 배부르게 먹고 와서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왜 이럴까.
건물 로비로 들어선다.
널찍널찍하고 붐비지 않아서 좋다.
평일 오후의 한적함.
아마 이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사무실 올라가면 일해야 되겠네'라는 느낌으로 건물에 들어오겠지만 나는 이 건물과 하등 상관없는 사람이다. 아니다, 정정하겠다. 상관있을 '뻔'하긴 했다. 얼마 전 이직을 준비하면서 여러 헤드헌터와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그중에 아모레퍼시픽의 OOO포지션에 지원해보지 않겠냐는 연락을 받았던 것이다.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는 편이다. 메타인지 확실한 편, 조곤조곤 자기 팩폭 잘하는 편. 그래서 내가 여기에 비빌 만한 짬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혹시 모르잖아? 하는 기대감과 어차피 원서 내는데 돈 드는 것도 아니고 하며 원서를 넣었더랬다.
일단 헤드헌터 선에선 합격해서 정식으로 서류를 낼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다. 보통 경력직 이직은 내가 가지고 있는 이력서만으로도 지원이 가능한 경우가 많은데 여긴 대기업답게 회사 사이트에 직접 접속해서 접수하라고 했다. 신입사원 때 공채 지원할 때는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해 원서를 접수하곤 했었는데 오랜만에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적어내야 했다.
지원은 마쳤고 생각보다 서류심사는 오래 걸렸다. 한 달여가 지났을까. 서류 낸 것조차도 잊어버리고 그동안 연락이 왔던 곳들도 우수수 탈락하며 내가 방향을 잘못 잡았단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때쯤 정식으로 탈락 소식을 들었다. 그래, 언제나 말하지만 난 대기업형 인재는 아닌가 보다.
이 건물과 뭐라도 하나 연관된 거 없나 찾다가 생각나서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으로 적어본 허튼소리였다. 어쨌거나 지금은 나랑 100% 상관없는 그저 남의 회사다. 10여 년 전, 당시 막 입주를 시작한 여의도 IFC 오피스동에서 일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IFC몰에 놀러 온 사람들은 '여기서는 어떤 사람들이 일할까?'하고 궁금해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정작 그 안에서 일했던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하다고 마음먹으면 행복할 수도 있는 건데 나는 그때부터도 어지간히 회계 업무가 하기 싫었던 모양이다.
IFC몰이 아무리 새로 지은 근사한 건물이었어도 정작 내 자리에서는 창 밖 풍경은 1도 안 보이고 사람들 지나다니는 복도만 보이는 거지 같은 자리였다. 게다가 내 자리는 더 특수해서 서류 접수창구 같이 방으로 되어있는 구조라 복도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오며 가며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였다. 그래도 내 컴퓨터 뒤로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어서 좋긴 했다.
최근에 여의도 CGV에 영화를 보러 IFC몰에 갔었는데 내가 그 회사를 퇴사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어가더라. 그동안 건물은 감가상각 많이 되었겠지. 그 세월 사이에 IFC몰 건너편에 있던 빈 공터이자 공사장이었던 parc 쪽에는 더현대가 들어섰다. 오늘따라 이야기가 자꾸 옆길로 새는데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막상 좋아 보이는 건물에서 일하게 되면 결코 그 장소를 신선하게 바라볼 수는 없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것 같다.
1층에는 카페도 있고 미술관도 있고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각종 도록들을 전시해 놓은 도서관이랄까 카페 같은 곳도 있었는데 잠겨 있어서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전체적으로 트여있어서 좋다. 밝고 답답하지 않다. 현재 다니는 회사도 나름 건물에 회사명이 달려있는 사옥이지만 옛날에 지은 건물이다. 그리고 직사각형도, 정사각형도 아닌 사거리 코너에 자리한 이등변 삼각형 같은 특이한 건물로, 당연히 한 층당 사용하는 면적도 매우 적다.
이곳은 건물을 드나드는 문도 마운틴 게이트, 파크 게이트, 시티 게이트, 리버 게이트 같은 식으로 이름이 붙여져 있었다. 2층으로 올라오니 아모레 스토어라고 해서 자사 물건 파는 곳도 있었고 카페는 아니지만 로비가 잘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아무나 앉을 수 있도록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본격 여정을 시작하기 전 앉아서 로비를 내려다보며 휴식을 취해본다.
일반인인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건 여기 2층까지다. 자, 그럼 이제 1970년대 풍경으로 한번 가볼까? 그것도 타임머신이 아니라 내 두 발로, 당당히 걸어서 말이다.
<서울탐방 제14탄 : 옛것과 초현대를 넘나드는 시간여행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