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니스로, 다시 앙티브로
파리에서 거의 1주일을 머물다 남부일정의 신호탄을 알리는 첫 도시인 니스에 도착했다. 파리 오스트랄리츠 역에서 출발하는 야간열차를 타고 아침 9시에 니스에 도착했다.
니스는 프랑스지만 와보지 않은 곳이라 낯선 데다 어제저녁부터 유심이 말썽이더니 결국 작동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낯선 도시에 내리자마자 유심을 새로 사지 않고는 여정을 시작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이미 한국에서 사 온 유심이 있었고 그 유심의 개통일이 며칠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만 쓸, 5일 정도 최소한 짧은 기간만 사용할 유심을 사려고 했다. 그런데 대로변에 있어 눈에 띄길래 바로 들어온 오렌지 대리점에선 무조건 한 달짜리만 판다고 했다. 정확히는 사용기간이 애매하게 시리 30일도 아니고 28일이란다.
날짜 계산을 해보니 내가 도하에 스탑오버 한다고 비행 편을 하루 뒤로 미루는 바람에 마지막날 전날까지만 유심을 쓸 수 있는 상황. 결국 한국에서 사 온 유심을 마지막 단 하루를 위해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돈 써, 시간 써... 마음은 쓰리지만 이게 없으면 여행 자체가 안되기에 마음 편하게 먹기로 했다. 유심 문제를 해결하고서야 숙소로 간다. 역에서부터 거리가 꽤 멀지만 큰 대로변에 상점가라서 구경하며 걷다 보니 그래도 걸을 만했다.
체크인 시간 전이라 짐을 맡겨놓고 체크인 빼고 할 수 있는 건 다하고-화장실도 들렀다-나온다. 바로 근처에 맥도널드가 있길래 프랑스 맥도널드는 어떻게 생겼나 해서 가보기로 했다. 빅맥은 있는데 나머지는 종류가 너무 많다. 그리고 은근히 비싸네?
알고 보니 내가 좀 큰 사이즈를 고른 거 같아서 그냥 가장 기본적인 맛으로 작은 사이즈를 세트로 주문했다. 보니까 메뉴가 나오면 내가 찾아가는 게 아니라 직원이 테이블 위 번호를 보고 갖다 주는 형식인 거 같다.
그런데 패스트푸드인데 왜 이렇게 안 나오지. 15분 정도 기다려서야 나온 거 같다. 맛은 그냥 햄버거 맛이고 감자튀김도 프랑스 감자로 했다는데 똑같지 뭐. 그래도 배는 채우고 기차표도 얼른 끊고 (점심시간 한 시간 정도는 기차가 없더라 ㄷㄷ) 기차역으로 향한다.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는 피카소 박물관이 있는 니스 근처의 앙티브 Antibe라는 작은 도시다. 오늘 세탁을 안 맡기고 며칠 더 버텨서 저렴하고 오래 머무는 바르셀로나에서 맡기기로 해서 마음이 편해졌다. 스페인 물가 많이 저렴하겠지…? 보니까 물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약 25일을 머문다. (여행 전이라 잘못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가보니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크흑.)
기차 타고 이동하는데 구글맵으로 피카소 미술관 정보를 곧 영업종료 한다는 메시지가 뜬다. 자세히 보니까 미술관이 점심시간엔 문을 닫는다. 그런 고로 내가 아무리 빨리 간들 입장 가능한 건 2시부터란 말씀. 중간에 비는 한 시간은 그냥 산책하게 생겼다. 해가 길어서 내가 참는다 참아. (안 참으면 어쩔 건데?) 그래서 미술관 근처에 관람차가 있길래 그거 볼 겸 와서 의자도 있고 있길래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의자 폭이 좀 넓어서 아예 신발 벗고 편하게 앉았다. 나에게 '관람차 = 허니와 클로버 ost의 <waltz>'다. <waltz>를 듣고 난 뒤, 이 날씨에 어울리는 노리플라이의 노래인 <beautiful>, <눈부셔> 그리고 권순관의 <너에게>를 차례대로 들으며 따라 불렀는데…
<눈부셔>를 들으며 부르다 울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어도
그대 마음은 영원하길
해가 저물면
불빛은 훨씬 아름답죠
<눈부셔>, 노 리플라이
이 노래는 제목처럼 항상 맑은 날에 찾아 듣지만 위에 적어 놓은 노래 마지막 부분의 가사 때문에 언제고 울컥한다. 그리고 이상하게 <눈부셔>를 듣고 나면 <너에게>가 꼭 이어서 생각이 난다.
항구 앞 공터에서 페탕크-우리나라의 게이트볼 같은 느낌-하는 은퇴한 할아버지들과 소나무와 하늘과 구름과 요트와 또 근처의 니스 공항에서 이제 막 이륙하는 손에 잡힐 듯한 비행기들을 보며 보낸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렇게 또 여행의 최고의 순간을 갱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