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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Oct 07. 2023

자존감이 쭉쭉 떨어질 때 해야 할 것

쓸데없는 것도 좋으니 내가 잘하는 것 끄집어내기 

     살다 보면 자존감이 떨어지는 날이 있다. 남들은 저렇게 잘났는데 도대체 나는 왜 잘하는 거 하나 없을까 생각하며 무력해지기도 한다. 이런 시즌이 주기적으로 한 번씩 올 때 떠올려본다. 과연 내가 남들보다 아주 조금 뛰어난 장점은 뭘까?






     내가 찾다 찾다 찾다 찾은 나의 첫 번째 장점은... 바로 말랐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그동안 나에게 어마어마한 단점이었고 지금도 단점이다. 나는 말랐다. 엄마가 마른 편이라 유전적인 면도 있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위장이 약해서 먹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에게 소말리아 사람, 아프리카인, 뼈다귀 등 온갖 마른 것과 관련된 것으로 놀림을 받으며 자랐다. 엄마가 집에서 밥을 안주냐는 말 같지도 않은 농담과 몸무게가 몇 킬로 나가냐는 것과 같은 무례한 질문은 수시로 들었다.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많이 줄었지만 어릴 땐 그런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아서 스트레스였다.


     내가 살이 찌지 않아서 엄마를 속상하게 한 거 같아 매우 미안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니 말랐으니까 살찔 걱정이 없었다. 남들은 다이어트한다, 식단조절한다 난리인데 나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았다. 많이 먹고 싶어도 소화기관에서 받쳐주질 않는지 과식하고 나면 반드시 체하거나 화장실에 가기 때문에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만큼 적당히 먹고 잘 살고 있다. 이게 장점이라면 장점이겠지? 그런데 이 장점도 나이가 드니 무색해진 게 살이 찌긴 찌더라. 심지어 배만 찐다. 


      두 번째 장점은 듣는 귀가 (남들보다) 조금 발달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듣는 귀'란 외국어 발음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할 정도의 능력이다. 나는 외국어를 말하는 원어민의 발음을 듣고 구분해서 그걸 비슷하게 따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내가 혹시 절대음감인가?' 하고 기대해 본 적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건 아니었다. 내가 이걸 알아챈 계기는 외국어를 배울 때마다 선생님들로부터 발음이 좋다는 칭찬을 들었기 때문이다. 같이 수업을 듣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내 발음이 원어민과 비슷하게 들리는지 스스로 생각해 봤는데 다른 사람들은 캐치하지 못하는 어떤 부분을 나는 구분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국인과 원어민 발음이 다른 점이 내 귀에 들어오면 나는 최대한 그걸 따라 하려고 하다 보니 발음이 좋다는 칭찬을 받는 것이었다. 


     학창 시절엔 중학교부터 정규 교과목으로 영어 수업이 있었다. 수업시간에 교과서 본문 읽기가 걸리면 영어를 잘 못하거나 발음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싫어하는 애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내가 그걸 싫어하는 이유는 조금 달랐다. 나는 원래 집에서 영어 공부를 할 때도 소리 내서 읽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리 내어 읽는 걸 좋아했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주목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내가 교과서를 읽으면 외국에서 살다왔냐, 외국인 같다는 둥 주목 아닌 주목을 받게 되어서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대학생이 되어서 영어권 나라로 유학이나 교환학생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나를 어렸을 때부터 알던 사람이 아니라면 '네 발음은 외국에 유학을 다녀왔기 때문에 잘하는 것'으로 치부당할 게 뻔했다. 그게 싫어서 교환학생이나 유학을 안 갔다는 다소 특이한 이유도 이제야 밝혀본다.


     프랑스어를 배울 때는 선생님한테 '혹시 음악 하세요?'라는 질문을 들은 적도 있었다. 왜냐면 어떤 문장을 듣고 나머지 학생들은 다 똑같이 발음하는데 나만 조금 다른 발음을 했기 때문이다. 음악 하는 사람들이 보통 귀가 예민하니까 선생님이 에둘러서 물어보신 거였다. 아, 취미로 음악을 하긴 하는데... 그런 것도 영향을 미쳤으려나?


     사실 발음이 아주 좋지 않아도 말이 통하면 그만이다. 반대로 발음은 좋은데 말을 잘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발음이 아주 많이 심각하게 나쁘다? 이건 나름대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언어로 의사소통을 할 때는 문장 구성, 단어 구사력, 인토네이션 등 여러 요소가 의미전달을 하는데 필요하고 그중에 발음도 있다. 발음이 너무 엉망이라면 내용 전달이 잘못될 수도 있고 같은 내용을 이해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세상 하나 잘난 거 없는 나도 따져보니 그래도 살아 가는데 크게 중요하지 않은 두 가지 능력이 있구나. 좀 더 실용적이고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능력이었으면 좋겠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라도 바닥까지 친 자존감을 조금이나마 끄집어 올리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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