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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Oct 22. 2023

종이학 1000마리를 접는 마음

소망을 이루는 방법엔 무엇이 필요할까?

     설명절을 맞아 본가에 갔다. 다른 때는 가도   식사만 먹고 오는데 명절만큼은 자고 가라는 엄마의 엄명을 받들어 하룻밤 자고 가기로 한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아니 2년 전까지만 해도  방이었던 곳인데 주인 잃은 이곳은 이제 드레스룸이 되어버렸다. 드레스룸을 위한 행거들과 서랍이 난무하는 이곳에 주인을 잃은 -미국에  동생이 쓰던- 침대 매트리스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리고 내가 독립하면서 챙기지 못했던   개도 남아있었다. 지금 사는 곳에서도  이사할 예정인지라 여기에 두고 있는 나머지 짐들을 가져가야겠다 싶었다.


놓고 간 짐들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 지금은  쓰지 않는 가방 두어  (하나는 운동 다닐  쓰던 가방이었는데 가방 안이 빵빵하길래 뭐가 들었지? 하고 보니 운동할  신는 운동화가 들어있더라. 이 가방의 존재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네.)

* 옛날에 CD를 사용하던 시절, 음악이나 영상들을 구워놓았던 CD뭉치

* 회사에서 선물로 받은 블루투스 음향기기( 년째 열어보지도 않은 상태)

* 초등학교 2학년즈음 아빠의 승진을 바라며 접었던 종이학 1000마리


 

약 1000마리의 종이학을 넣어둔 투명 플라스틱 곰돌이. 



      이 중 종이학 약 1000마리를 접어서 넣어둔 상자는 수많은 세월과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도 여기까지 따라 남아 살아남았다. 이용가치는 아무것도 없는데 버리지 못하겠는 물건 중 하나다. 그저 접은 종이학을 모아놓은 통에 불과할 뿐인데. 종이학을 접었던 자그마한 색종이들도 이제는 색이 다 바래서 예쁘지도 않다. 하지만 그 종이학을 접던 마음을 생각하면 도저히 버릴 수가 없어서 일단 독립한 집으로 가지고 왔다.


     종이학을 접던  당시, 아마도 아빠는 승진시험에서 이미  차례 미끄러지고 그다음 해 승진시험에 다시 도전하는 상황이었다. 초등학생인 내가 승진이 뭔지, 승진을 해야 뭐가 좋은지 얼마나 자세히 알았을까? 이건 알고 보면  엄마의 마음인 거다. 승진을 해야 월급도 오르고 그래야 가정형편이  좋아질 테니까. 말하자면  종이학 1000마리는 가족 모두의 행복을 바라는 엄마의 사심이 가득 담긴 것이라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엄마는 아빠가 승진을 해야 한다는 소망을 나와 동생에게도 심어주었고 엄마의 말을 듣고 우리 자매는 열심히 종이학을 접었다. 종이학 접는  재밌기도 했다. 상자 안에 정확히 1000마리가 들어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근접한 숫자일 것이다. 종이학을 열심히 은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그해에 아빠는 승진을 했다.


     종이학을 접은  마음이 승진을 이루어준 것일까? 승진이  필요했던 부모님 그리고 '승진이 뭐야? 하며 엄마랑 동생같이 모여 앉아서 종이학 접는 게 신나서 접었던 나와 동생. 엄밀히 따지면 이건 아빠에게 선물한 거니까 이걸 받은 아빠가 관리해야 하는데도 이상하게 이걸 접었던 내가 이걸 버려야 돼, 말아야 돼하는 지경이 된 걸까.


소망에 대해 생각해 봤다.

소망이나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것을 원하는 본인이 직접 행동해야 한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나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실행해야 한다.

그걸 지켜보는 곁에 있는 사람은?

직접적으로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물질적인 형태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해주겠지만
그 외에 줄 수 있는 거라곤 응원하는 마음 밖에 없다.

종이학 1000마리는...

시간을 들여가며 학종이를 접는 수고를 통해 
무형의 마음을 부피가 있는 유형으로 치환해서
'내가 이렇게 당신을 응원하고 있어요'라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소중한 '마음'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닐까.


     이미 아빠의 승진이라는 소망은 이루어졌다. 그래서  종이학 1000마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기운-소망을 이뤄주는 기운- 이미  사라졌을 텐데도 나는 종이학이 담긴 통을 언제까지고 버릴  없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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