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잎 클로버로 가득한, 행운이 넘치는 곳을 발견하다
무려 근 일 년 만에 보는 친구와의 약속이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는데도 학생이 아닌 직장인이 되고 나니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다. 게다가 친구는 3교대 근무를 하는 간호사라는 특수한 직종인지라 더더욱 그랬다. 나는 이 오랜만에 만나는 약속에 살짝 늦을 것 같아 바쁜 마음을 달래며 집 근처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던 길이었다.
날씨도 좋으니까 두근거리는 음악을 들어야겠다 싶었다. MP3를 꺼내 어떤 노래를 들을까 고민하다 민트페이퍼에서 나온 컴필레이션 앨범인 '남과 여 그리고 이야기'를 선택했다. 그럼 이 앨범에 수록된 곡 중에 어떤 노래로 시작해 볼까. 방금 나는 집을 나서서 지하철역으로 걸어가고 있었으니 '집을 나서는 발걸음 뒤에 / 네가 줬던 노래'라는 교묘한 가사로 시작하는 뎁과 나루의 <너와 나의 프롤로그>를 골랐다.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신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집 앞에 있는 작은 천을 건넜다. 지하철역 앞에는 횡단보도가 하나 있는데 작은 길이다 보니 따로 신호등이 없었다. 대신 일방통행인 도로라 차가 왼쪽에서만 올라오므로 그쪽에서 차가 올라오지 않을 때 눈치껏 건너면 그만이었다. 분명 도로 아래쪽에 있는 차 신호등이 있으니 차들이 빨간불에 걸리면 멈춰있는 시간이 있을 거다. 그런데 이 도로는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곳이다 보니 신호등을 무시한 채로 그대로 올라오는 차들이 많아서 언제나 차들의 행렬이 끊기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 횡단보도까지 가지 않고 횡단보도가 나오기 전에 차가 없길래 미리 조금 일찍 길을 건넜다. 정직하게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기 위해 서 있다가는 계속 올라오는 차 때문에 이도저도 못 하고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한참 시간을 보내는 날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리 횡단보도를 건너고 보니 옆에 자그마한 풀숲이 있길래 그냥 눈길을 한 번 주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풀숲에서 이상한 걸 발견했다. 눈길을 쓱 주었을 뿐인데 네잎 클로버가 눈에 띈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경우 빽빽하게 난 세잎 클로버가 여러 겹 겹쳐지면서 네잎 클로버처럼 보이는 거라는 거, 우리 다 알고 있잖은가. 이미 약속 시간에 늦어서 발걸음이 급했지만 맞는지 아닌지는 만져보면 바로 알 테니까 그것만 확인하고 가기로 했다.
그런데...
진짜 네잎 클로버가 맞았다!
‘작정하고 찾을 때는 나오지도 않더니 그냥 지나가는 길에 슥 본 건데 어떻게 이렇게 바로 눈에 띌 수가 있지? 신기한데?’하며 약속에 늦은 것도 미안하니 친구에게 선물로 갖다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눈에 띄었던 그 네잎 클로버를 뽑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가 방금 네잎 클로버를 뽑은 그 앞, 옆, 뒤로 눈길이 가는 곳마다 네잎 클로버가 보이는 게 아닌가. 아무래도 내 눈이 이상한가 싶어 계속 클로버들을 이리 들추고 저리 들추고 만져 보았지만 전부 네잎 클로버가 맞았다.
‘그래, 이미 늦은 거 뭐 어때’라는 생각으로 아예 풀밭 옆에 다리를 쪼그리고 앉아서 본격적으로 네잎 클로버를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아주 손쉽게 몇 개의 네잎 클로버를 더 찾았고 심지어 다섯잎 클로버까지 발견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렸다. 안 그래도 약속 시간에 늦게 생겼는데 더 늦겠다 싶어 얼른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다.
어젯밤에 오랜만에 만화 <허니와 클로버>가 생각나서 오랜만에 봤다. 주인공 다케모토는 나와 같은 모습을 하고서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하구미는 몽골로 1년 동안 연구 조사를 떠나는 교수님을 위해 5인방(마야마, 아유, 모리타, 다케모토, 하구미)이 네잎 클로버를 찾던,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못 찾았던 그 들판에서 그런 다케모토에게 이 세상의 모든 행운을 주고 싶어 혼자 네잎 클로버를 찾았고 그것들을 층층이 쌓은 식빵에 꿀과 함께 넣어서 기차가 출발하기 직전 건네주는 장면이 있다.
하구미가 혼자 열심히 들판에서 네잎 클로버를 찾던 그 장면 때문에 다른 날과 달리 가끔 지나다니는 이곳 풀숲의 네잎 클로버가 유난히 내 눈에 들어왔던 건지도 모른다. 귓가에는 <너와 나의 프롤로그>가 흐르고 내가 단 한 번의 눈길로 네잎 클로버를 사로잡은 이 순간이 계속 기억되길. 그리고 이 네잎 클로버가 친구에게도, 나에게도 행운을 가져다주길.
2010년 7월 31일. 7월의 마지막 날, 우연히 발견한 네잎 클로버를 보고 쓰다.
+)
하지만 얼마 후, 네잎 클로버가 많던 이 풀밭은 지하철역에 공사가 진행되면서 무참히 사라져 버렸다는 슬픈 소식. 그전에 내가 다 뽑아 왔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