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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Nov 22. 2020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갑분 등산 일기 스타-트

     나에게 산과 바다 중 좋아하는 것을 하나 고르라고 하면 당연히 바다다. 산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바로 올라가거나 산을 바라보는 건 좋아한다-등산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걷는 것은 좋아하지만 평지가 아닌 언덕길을 헉헉대며 올라가기는 싫다는 단순한 이유다. 그런 내가 요즘 등산을 하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이 모든 변화의 시작은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와 이사라는 두 가지로 원인을 좁혀볼 수 있겠다. 이 두 가지 모두 2020년 올 한 해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들이다. 다만 전자인 코로나 바이러스는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 영향을 미친 사건이지만, 후자인 이사는 나 개인에게 벌어진 큰 사건이다. 

   

     먼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일상적인 운동을 못하게 되었다. 물론 야외에서 뜀박질을 한다던지 집에서 홈 트레이닝을 하는 식으로도 얼마든지 운동은 할 수 있다. 하지만 평상시의 나는 수영장에 가거나 운동을 배우러 어딘가에 가는 식으로 운동을 해왔다. 헬스장이나 수영장이 개장을 하긴 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목숨을 담보로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운동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아무 데도 등록하지 않았다. 대신 야외에서 걷기를 조금 하거나 간간히 자전거를 타는 정도의 운동만 했다. 그런데 9월에 건강검진을 했는데 나이가 먹어서인지 아니면 올해 운동을 제대로 못해서인지 결과가 아주 엉망진창이었다. 그래서 10월 한 달 내내 처음 가보는 종류의 병원에도 가고, 내과와 같은 평범한 병원에도 다니면서 이곳저곳 재검을 받았다. 돈도 돈이지만 마음이 쓰렸다.


     그리고 올봄, 25년간 살았던, 기억이 있고부터의 모든 사건이 벌어졌던, 그야말로 '집'이라고 하면 항상 떠오르는 동네와 익숙한 내 방을 떠나 낯선 동네로 이사를 왔다. 이사 온 아파트 단지 옆에는 바로 천이 흘렀고 근처에 낮은 산이 하나 있었다. 그동안 나에게 산이라 하면 엄청 높은 데다가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갔는데도 아직 입구인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런데 이사를 오고 나니 동네에서 슬슬 걸어서 샛길로 들어서면 정상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나오는 것이었다. 게다가 낮은 산이라 이미 산에 다녀온 엄마가 30분이면 충분히 정상까지 올라간다고 했다. 건강검진 결과로 우울해 있던 차에 운동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실내에서 하는 운동은 하기가 꺼려졌다. 그나마 등산은 야외활동이고 동네 사람들만 다니는 작은 코스라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 했다. 그래서 전부터 산에 같이 가자고 졸라댔던 엄마와 산을 올라보기로 했다. 


     첫 산행은 살짝 힘들었지만 너무 좋았다. 그렇게 많이 올라가지도 않은 것 같은데 정상에 올라서니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고, 사람들이 없는 구간에선 잠시 마스크를 벗고 공기도 마음껏 들이마셨다. 그리고 정상을 정복했다는, 목표를 달성했다는 뿌듯함도 있었다.


     우리 모녀는 평소에도 자주 얘기하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데 이런 식으로 산행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다른 의미로 참 좋았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길을 봐주기도 하고, 좋은 풍경을 보면 같이 서서 바라본다. 여태까지 나는 내 자녀를 낳아도 그만, 안 낳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지내왔는데 이번에 엄마와 등산을 함께 하면서 자녀와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등산이라고 하면 으레 엄청 높은 산을 올라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있는데 낮은 산도 산은 산이다. 구릉이 아닌 이상 낮은 산에도 돌부리와 산등성이, 경사진 비탈길 등 산이 갖춰야 할 요소들은 다 가지고 있었다. 만약 아주 높은 산에 갔다면 중도에 포기했거나 지쳐서 다음번엔 갈 생각이 쉬이 들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번에 간 곳은 집 근처에 있고 높이가 높지 않아서 적당히 헐떡이며 갈 수 있어 부담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앞으로 1주일에 한 번은 등산을 가기로 했다.


     짧은 산행을 마치고 나면 운동을 했다는 뿌듯함과 그에 비례해 전날보다 건강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약간의 허영도 느낀다. 그런데 몇 번 산행을 다니다 보니 바닥에 쌓인 나뭇잎 때문에 등산화가 아닌 그냥 운동화를 신고 걸어 다니니 발이 미끄러웠다. 엄마는 처음부터 등산화를 사라고 했지만 한 번 가고 안 갈지도 모르는데 등산화를 살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는 스스로 등산화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최근에 도서관에 갔을 땐 ‘핸드백 대신 배낭을 메고’란 제목을 단 소설가 유이카와 케이의 등산 에세이집이 보였다. 평소에도 서가의 그 자리에 항상 있던 책이었겠지만 등산에 관심을 갖게 된 이제야 눈에 띈 것이다. 언젠가는 이 동네를 떠나겠지만 이 곳에 사는 동안은 등산의 재미를 알게 해 준 우리 동네 산을 열심히 오르내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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