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쓰기 역사를 되돌아보다
'쓰는 인간에 대한 단상 (상)'에서 이어집니다.
주인공 마키를 보며 글을 쓰는 사람의 어려움과 절박함에 공감이 갔다. 나도 처음엔 소설을 써볼까 생각했으나 상상력은 빈약하고 아직까지 캐릭터를 구축하고 이런 것들이 너무 어렵게 다가왔다. 그래서 마키처럼 나에게 일어난 일을 그대로 써도 한 편의 단편소설이 되지 않을까 해서 단편소설을 생각해봤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아무리 단편소설이라 해도 생각한 것과 달리 일어난 일들을 문장으로 옮기는 것도 힘이 들었다. 그래서 소설까지는 아니고 나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에세이 같은 느낌으로 써보기로 했다.
영화를 통해 쓰는 사람의 어려움도 보였지만 그보다 같은 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입장 차이도 볼 수 있었다. 이사 온 첫날 마키가 '다음날 옆집에 인사 가야지'라는 대사가 나왔는데 결국 인사를 가지 못했다. 모든 사건은 다 그것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었을까? 옆집에서도 '옆집 이사 온 거 같던데 인사 오려나?'라는 대사를 했었다.
마키가 다음날 정말로 옆집에 인사를 갔었더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까? 같은 사건을 두고 보이는 다른 상황과 입장 차이, 최근 이웃 간의 소음문제 또 인터넷에 올라온 일반인이 나오는 동영상에 대한 무자비한 댓글이나 자극적인 영상만 찾는 상황, 동영상 몇 개 올려 돈을 쉽게 벌어보려는 태도 등 최근의 이슈를 잘 버무려낸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건 결국 글 쓰는데 스트레스를 너무 받은 나머지 약간은 극단으로 치달은 주인공 마키에게서 시작된 것 같기도 하다.
'쓰는 사람'은 과연 무엇인가. 왜 우리는 그렇게 '쓰고자' 하는가. 마키 같은 경우는 '자기'가 없다. 누구의 부인, 딸의 엄마로 존재한다. 자아가 없다. 그 자아를 글쓰기에서, 작가라고 불리는 것에 의해서 찾는 거 같다. 그렇기에 그렇게 매달리는 것이다. 첫 소설에 대한 호평은 감사하지만 그 뒤로 나온 작품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하니 정말로 이제는 안 되는 건가, 작가로서 끝난 건가 싶은 거다.
사람은 누구나 자아를 찾고자 한다. 누군가의 엄마, 아빠, 동생, 동료, 친구 그 무엇도 아닌 그저 나로 존재하고자 한다. 중간에 마키가 장을 보러 갔을 때 팬들이라고 하며 사람들이 와서 사인도 받고 사진도 찍고 했을 때 마키는 좀 뿌듯해 보였다. 내가 숨 쉬는 이유를 찾았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 쓰는 것도 그 자아를 찾는 과정 중의 하나가 아닐까?
그러면 나는 왜 쓰고자 하는가. 앞에서 말한 의사소통 영역 4가지 중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는 말하기와 쓰기가 있다. 하지만 나는 머릿속에 할 말이 많은 것에 비해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하는 편이고, 말할 상대를 가리는 편이다. 편한 사람들이나 내 이야기를 잘 받아들여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마음속의 이야기들이, 생각들이 한도 끝도 없이 나오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입을 꾹 닫게 된다. 그리고 말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상황 자체가 많지 않다.
그렇다면 그 무게중심은 쓰기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전엔 그래도 말할 상대-친구랄까-가 있는 상태였으니 친구들과 어느 정도 대화로 풀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만 글을 써도 됐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못하다. 최근에 읽은 ‘세상의 잡담에 적당히 참여하는 방법 ; 과학의 눈으로 본 내향인의 이중생활’(원제 : The secret lives of introverts ; Inside our hidden world)에서 내향인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주는 22가지 신호에 대해 말한다. 1~22번의 항목 모두 공감이 되는데 그중 7번 항목을 소개한다.
7. 생각을 말로 하기보다 글로 쓰는 것을 잘한다.
전화 통화보다 문자를, 직접 만나는 것보다는 이메일을 선호한다. 실시간으로 누군가에게 말하기보다 혼자서 휴대전화에 단어를 입력할 때 부담을 덜 느낀다. 많은 내향인들이 자기표현과 자기 발견을 위해 일기를 쓴다. 어떤 사람은 글쓰기를 평생의 업으로 삼는다. “글쓰기는 혼자서 하는 일이다.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눈을 마주치면서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내향인에게 맞는 일이다.”
나의 쓰기 역사는 일기부터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일기 쓰기는 처음엔 숙제였기 때문에 쓰기 시작했다. 억지로 썼으니 글씨도 개발새발이었고 내용도 아주 빈약했다. 일기장을 본 엄마는 실망하면서 글씨에도 사람 기분이 담겨있는데 글씨를 못 쓰는 건 괜찮지만 성의 없이 글씨를 쓴다면 그건 문제라고 했다. 엄마는 일기 쓰기 싫어서 설렁설렁 휘갈긴 내 글씨를 보고 문제점을 정확히 간파한 것이다.
그리고 일기의 내용도 ‘오늘은 ㅇㅇㅇ을 했다. 즐거웠다. -끝-’이 아니라 오늘 있었던 일 중 큰 사건을 쓰거나 특별한 일이 없다면 평소에 생각해본 것에 대해 써도 되고, 시를 한 편 적어도 된다고 했다. 그 뒤로 일기를 쓸 때마다 옆에서 엄마가 일기의 내용과 글씨에 대한 감시 아닌 감시를 해서 일기의 소재도 생각해야 했고 엉망으로 쓰던 글씨도 한 자, 한 자 힘줘서 성의 있게 써야 돼서 힘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익숙해졌고 일기장을 읽어보신 담임 선생님이 좋은 피드백을 해주시자 기분이 좋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엄마가 없이도 혼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기로 일기상도 받았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더 이상 일기 쓰기가 숙제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습관이 되어서 인지 일기를 썼다. 슬슬 비밀이 생기기 시작하는 나이인지라 엄마나 읽을 수 있는 공책에 쓰는 건 싫었다. 그때 컴퓨터가 눈에 들어왔다. 한창 가정에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할 때였다. 조잡한 일기장 프로그램을 받아 사용하기도 하고 한글 파일에 일기를 적고 비밀번호를 걸어두기도 했다. 중, 고등학교 때는 그렇게 일기를 썼다. 다이어리에 하루하루를 짤막하게 기록하기도 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구 생일이라던가 그런 것을 적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블로그의 존재를 알게 되어 이글루스에 블로그를 만들고 일기를 썼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친구들에게 공개된 블로그 주소를 알려주다 보니 일기를 쓰기가 꺼려졌다. 친한 친구들이었지만 그래도 누군가 나를 아는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불편했다. 그래서 아예 티스토리에 비공개 블로그를 만들고 정말 날 것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꼭 일기가 아니더라도 나에게 의미가 있었던 사건이나 말들에 대해서도 쓰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아이폰이 등장했고 핸드폰이 걸어 다니는 컴퓨터가 되었다. 뭔가를 써야 할 때마다 매번 컴퓨터를 켜야 하는 게 귀찮을 때도 있었다. 이제는 일기를 쓸 수 있는 앱으로 매일매일을 기록한다. 열 받은 일이 있으면 화나는 감정을 쓰고, 정말 기분 좋은 일이지만 누구에게도 공감받지 못할 일에 대해서도 쓴다.
돌이켜보니 나는 계속 ‘쓰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쓰는 인간'으로서 불특정 다수에게 내가 쓴 글들을 보여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