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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톤스 데뷔 20주년을 축하합니다 ♡

하루쯤 쉬어도 괜찮지, 오늘 당장 모든 게 변하진 않을 테니

by 세니seny

2024년 12월에 작성한 글입니다.


올해(2024년)가 페퍼톤스 데뷔 20주년이라고 한다. 그래서 기념앨범도 나오고 공연도 있고 이런저런 행사들이 많을 예정인가 보다. 이럴 줄 모르고(?) 두 달간 유럽여행을 다녀오는 바람에 실물 앨범만 주문해서 겨우겨우 받고 바로 출국을 해버리는 바람에 대부분의 행사엔 참여하지 못했고 6월 말부터 시작하는 클럽투어의 서문을 여는 서울공연을 보기 위해 날짜를 바꿔 겨우 공연 3일 전에 귀국했다.


내가 페퍼톤스를 좋아하게 된 건 2008년경이니까 좋아한 기간을 연차로 따지자면 벌써 15년이나 됐다. 회사로 치자면 부장급쯤 된 걸까. 하하하. 한 때는 단독공연은 물론이거니와 이들이 나오는 페스티벌마다 보러 쫓아다니곤 했다. 심지어 지역축제(라고 하기엔 그래도 서울에 붙어있는 과천이지만) 저녁 무대에 서길래 평일에 퇴근하고 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었다.


그날은 금요일이었고 자동차 운전연습을 핑계로 엄마를 대동해서 운전연습 겸 과천까지 차를 끌고 간 기억이 난다. 공연이 끝나고 나니 꽤 늦은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루종일 붐볐을 도로가 텅 비어있어서 마치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었다. 기분 좋은 드라이브였다.


직장인들이라면 '햇살엔 세금이 안 붙어 참 다행이야'라는 가사를 듣고 노래에 홀딱 빠져버릴 <New hippie generation> 뮤비의 무대가 된 여의도 증권가를 걸어 다니며 일한 적도 있었다. 2009년에 3집을 발매하지 않고 했던 3집 발매 공연에 가지 못해서 아쉬워했던 적도 있었다.


<new hippie generation>, 페퍼톤스


그때는 취준생 신분이라 돈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어서 공연 예매시도조차 하지 않았는데, 공연에 갔던 사람들에게 비발매 씨디를 나눠줬다고 한다. 한정판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로서는 매우 아쉬워했던 기억도 난다. 다행히 그 이후로 바로 취직이 돼서 3집 앨범도 사고, 여름에 하는 클럽투어는 물론이고 중간중간 페스티벌 공연도 다녔으며 연말 단독공연은 빠지지 않고 다녔다.


이제는 겨우겨우 클럽투어와 단독공연만 다니는 노쇠한 팬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을,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고 앞으로도 좋아할 것이다. 장원오빠가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로 유명한 배다해 님과 결혼한 덕에 공중파 텔레비전 그리고 유튜브 채널이 다양해짐에 따라 이곳저곳에 자주 나온다. 그리고 소속사인 안테나의 규모가 커지면서 국민 MC 유재석과 같은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이 되어버리다니 세상일은 참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지 않는다. 단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생기는 변화에 맞춰 자신들을 잃지 않으면서 여전히 옛날 같은 농담을 던지고 그게 먹히는 시대가 된 거겠지.


아직도 매년 여름에 클럽 투어를 진행해 줘서 정말로 고맙다. 클럽투어 참석을 한 해도 거른 적이 없는데 작년에는 표를 못 구해서 강제로 불참하기도 했었다.


큰 공연장에서 하는 공연은 조금 비싸게 느껴지더라도 앉아서 편하게 볼 수 있고 쾌적하고 설비도 빵빵해서 좋다. 음향은 물론이고 조명이나 무대효과도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에 반해 클럽공연은 공연장인 클럽 자체가 대부분 작기 때문에 수용인원이 적어서 예매하기도 어렵고 여름에 하니 너무 덥다. 그럼에도 꼭 클럽투어에 가는 건 대형 공연장에서 공연을 보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음향은 조금 뭉개지더라도 때로는 그들의 땀방울이 보일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살아있는 음악을 느낄 수 있다. 공연 시작 전부터 이미 오래 서있어서 허리도 다리도 아픈 데다 땀이 뻘뻘 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내가 더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수영을 하다 보면 숨이 달리는데 그러면 물속에 고개를 넣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려면 결국 고개를 넣고 조금 힘들어도 숨을 참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수영을 하다 물 밖으로 나오면 헉헉대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극한에 내몰림으로써. 클럽투어를 좋아하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공연이 펼쳐지는 공간이 작기 때문에 무대에 서있는 그들과의 물리적 거리는 물론이고 그들의 음악과도 아주 가깝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이런 건 쾌적하고 넓은 공연장에서는 절대 모를, 클럽투어를 가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 하지만 공연장이 작아서 피켓팅이 돼버리는 건 너무나 슬픈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이 여전히 일정한 궤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것. 두 가지는 필요충분조건이다. 두 조건이 모두 성립되어야 한다. 즉 나도 그 가수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좋아해야 하고 동시에 그들도 계속 좋은 노래를 만들고 활동을 이어나가야 한다.


20주년 축하해요, 페퍼톤스 ♡
앞으로도 같이 나이 먹어가요 :)


P20241214_204613135_D64A5877-FF84-4BD8-89C2-54D67330C8AA.JPG 20주년 기념 첫날 공연 끝나고 인사할 때 한 컷. (2024.12)



<Thank You>, 페퍼톤스


서두르지 않기를

흔들리고 물들지 않기를

언제나 너의 그 말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아직까지 그대로

불안하고 모자란 나지만

가끔 기댈 수 있는 추억

그게 참 고마워


복잡한 세상에 지치고 무뎌져

어지러워하는 우리들

설레고 벅차던 처음의 한 걸음은

조금씩 더 멀어져 가는데


함께 할 수 있기를

햇살이 비추기를

소리 내어 하하 웃고

모두 내려놓기를


한 치 앞도 캄캄한

이 먼 길의 어딘가에

소중하게 간직해 둔

널 만날 수 있기를


이유도 모른 채 시작해 버린 삶

이 머나먼 길 위에서

끝없이 걸어갈 의미가 되어줄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면


함께 할 수 있기를

햇살이 비추기를

소리 내어 하하 웃고

모두 내려놓기를


한 치 앞도 캄캄한

이 먼 길의 어딘가에

소중하게 간직해 둔

널 만날 수 있기를


노래할 수 있기를

끝을 알 수 없기를

다시 한번 쓰러져도

손을 뻗어 주기를


소중했던 너와 나

긴 시간이 흘러도

봄날의 무지개처럼

기억될 수 있기를

그럴 수 있기를


<Thank You>, 페퍼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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