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통해 제안을 받게 되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달라진 일 (상)'에서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브런치를 하고 나서 생긴 변화엔 뭐가 있을까?
첫째, 일정하게 글을 쓰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소재거리가 생길지 모르니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전에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만 긴 글을 썼다. 그런데 일주일마다 글 1개를 발행하기로 다짐하고 나서는 글을 꾸준히 쓰지 않으면 금방 글이 동날 것 같았다.
글 쓰는 시간을 딱 정해놓지는 않았다. 대신 하루에 해야 할 일을 끝마치고 난 평일의 저녁 시간이나 다음날 아침에 늦잠을 자도 괜찮은 금요일이나 토요일 밤에 주로 글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일주일에 2,3회 정도 글을 쓰는 시간이 생겼다. 카페 배경의 음악을 틀어놓고 일단 생각나는 대로 타이핑을 치고 있으면 시간이 훌쩍 간다. 이런 시간을 갖게 되어 감사하다.
둘째, 브런치를 통해 제안 메일을 받게 되었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할 때 다른 플랫폼 등으로부터 협업 제안을 받을 수도 있으니 메일 주소를 남겨달라는 항목이 있었다. 메일 주소를 남기면서도 이런 제안을 받는 것은 먼 미래의 일이거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쓰는 글들은 실용적인 팁을 전수해주는 글이 아니라 그저 나 개인에게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쓰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 3개월 정도 지났을 때, 메일함에서 브런치를 통해 제안이 왔다는 제목의 메일을 발견했다. 메일을 열어보니 내가 올린 회계팀 신입사원 면접 후기를 취업 업체 관계자가 보고는 취준생들에게 멘토 개념으로 실무에 대해 알려주는 콘텐츠 제작에 재무, 회계 분야로 참여를 해줬으면 한다는 협업 제안 메일을 보낸 것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회계, 재무분야에서 일한 지 10년 차이다 보니 여러 심난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10년 차라는 타이틀에 비해 실력이 부족한 것 같았고 앞으로 커리어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방향을 바꿀 건지 아니면 계속 이 길을 갈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제안을 받아서 기쁘기도 했지만 걱정도 되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예전 같았으면 거절했을 것 같다.
그런데 통계를 살펴보니 생각지도 않게 이 글의 조회수가 높은 편이었다. 그만큼 사람들이 원하는 정보나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개인적으로 경력 10년이라는 지금 이 지점이 중요하기도 했고 콘텐츠를 만드는 게 어떤 일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유료로 제공되는 콘텐츠라서 적지만 콘텐츠 제공자인 나에게 추가적인 수입도 발생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담당자에게 이 일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물어보았다.
내가 콘텐츠를 처음부터 끝까지 구성하는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 짜인 틀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 질문에 답을 해서 보내면 담당자가 해당 글에 대해 피드백을 해준다. 피드백이 완료되면 녹음실에서 해당 내용을 녹음한다. 취준생들에게는 녹음된 멘토들의 목소리를 콘텐츠로 제공한다고 했다. 이렇게 된 거 해보기로 했다.
업체로부터 콘텐츠 작성을 위한 질문지를 받았는데 질문이 꽤 세세했다. 금방 끝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일단 생각나는 대로 휙휙 적고 몇 번을 다시 읽으면서 계속 내용을 수정했다. 준비기간을 일주일 정도 주셨는데 하필이면 업무가 바쁜 월말에 걸려서 주말에 몰아서 하고 야근하고 집에 와서도 콘텐츠를 작성했다. 회계팀의 생명은 마감기한 준수니까 그걸 놓치기 싫었다. 직업병이다.
1차로 완성한 콘텐츠를 보낸 뒤 담당자에게 피드백을 받았고 몇 가지 추가 질문을 요청받아 대본을 완성했다. 녹음은 주중이나 주말 아무 때나 가능하다고 했다. 보통 직장인들이니까 주말에 많이 한다고 하는데 마침 내가 주말엔 일이 있었고 그다음 주에 휴가를 낼 일이 있어서 평일에 녹음하러 가게 되었다.
역삼동에 내려 골목으로 들어가니 조용한 주택가가 나왔다. 건물은 주택을 개조한 듯한 곳이었는데 평소에는 공간 대여도 하는 모양이었다. 담당자는 싹싹했고 녹음하는 방법 등을 알려준 뒤 녹음실에서 나 혼자 녹음하도록 두고 사무실로 사라졌다.
긴장을 풀고 녹음을 시작했다. 기침이 나올까 봐 조심조심, 발음이 뭉개질까 봐 조심해서 계속 읽었다. A4 용지로 거의 2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이라 양이 꽤 많았다. 그렇게 한참을 녹음하다가 궁금해서 얼마나 녹음이 되었나 하고 녹음기를 봤는데 어째 불도 안 들어와 있고 좀 이상했다. 그래서 다시 담당자를 불렀는데 알고 보니 녹음 버튼을 제대로 누르지 않은 상태에서 녹음이 되는 줄 알고 혼자 열심히 원고를 읽었던 거였다. 즉 여태까지 원고의 1/3 정도 읽었는데 하나도 녹음이 안 된 상황.
하는 수 없이 다시 심기일전해서 녹음을 시작했다. 깔끔하게 녹음한다고 애를 쓰긴 했는데 제대로 되었는지 모르겠다. 배가 고픈지 계속 꾸르륵 소리도 나고 목이랑 기관지가 안 좋아서 계속 기침이 나오려고 했다. 그렇게 녹음을 마치고 나니 잘못 녹음해서 날린 1시간 포함해서 3시간이 지나 있었다. 담당자와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내가 녹음한 내용은 콘텐츠로 제작되어 홈페이지에 올라간다고 한다. 그러면 해당 내용을 듣고 싶어 하는 취준생들이 결제를 해서 내용을 듣는다고 했다. 수익 배분 구조도 궁금했는데 적지만 나에게도 돌아오는 돈이 있었다. 신기했다. 이걸로 떼부자가 될 것은 아니지만 N잡의 스타트를 끊은 기분이랄까? 여태까지 일한 회사생활의 경험을 가지고 회사 밖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이번에 콘텐츠 제작에 참여하게 되면서 검색을 해보니 내가 취준을 할 때와 비교해서 취업 관련 서비스를 하는 회사가 무척 늘어난 것 같았다. 10년 전에 내가 취업 준비를 할 때만 해도 졸업한 선배를 통하거나 기업에서 개최하는 취업설명회 등이 아니면 실무에 대한 궁금증이나 업무에 대한 내용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이번 제안을 통해 10년간의 경력을 한 템포 쉬어가는 느낌으로 정리도 하고 그동안 내가 일한 것이 결코 쓸모없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브런치를 통해 생각지도 못한 이런 기회를 만나게 돼서 기뻤고, 내가 참여한 콘텐츠가 취준생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내년에도 브런치를 계속하려고 한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할 때는 막막했다. 작가 선정 메일을 받은 게 7월 중순이었으니까 딱 하반기 6개월만 해보자고 생각했다. 만약 글이 너무 안 써지거나 소재가 없거나 사람들의 공감을 받지 못한다면, 그러면 그만두자고 생각했었다. 그러면 최소한 시도는 해보고 접은 거니까 후회는 안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브런치를 통해
스스로 글 쓰는 시간도 만들어 냈고,
사람들의 공감도 받았고,
과거의 추억들도 꺼내보았고,
일상에서 벌어진 일들을 글로 남기자 실행할 용기가 생기기도 했고,
생각지도 못한 협업 제안 메일을 받고,
협업을 실재화시키기까지 했다.
그러면 이제 책만 내면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