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의 방배정... 처음 보는 직원과 각자 침대에서 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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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첫날의 마지막 일정으로(?) 대망의 방배정이 남아 있었다.
높은 분들은 1인 1실이지만 그 외에는 전부 2인 1실이 원칙이었다. 이번 기수엔 여자가 적어서 8명이었는데 나는 과연 누구랑 같이 방을 쓸까 궁금했다. 일단 같은 팀이나 같은 본부 위주로, 직급이나 나이대가 비슷한 사람끼리 방을 같이 쓸 거라고 했다.
그래서 혼자서 시나리오를 짜봤는데 거기서 일단 두 조(4명)는 답이 나왔다. 그럼 나를 포함한 나머지 4명을 어떻게 조합하느냐가 문제였다.
[직원 A]
나보다 먼저 입사했고 근무한 지 10년이 넘은 베테랑 직원으로, 사적으로 딱 한 번 밥을 먹은 적이 있다. 업무협조 관계가 있기 때문에 평소 업무 관련 대화만 한다.
그나마 3명 중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눠봤기에 개인적으로 친밀도가 높고 올해부터 공식적으로는 우리 본부 소속이 되었다.
[직원 B]
나랑 부서도 다르고 업무 때문에 가끔 전화하거나 메일을 보낸 적은 있지만 공식적으로 인사를 한 적은 없다.
지사에 근무하는 분이라 전 팀장님 있을 때, 나 빼고 팀장님과 나머지 팀원 두 명은 지사에 출장 겸 내려가서 밥 먹은 적이 있어 나머지 팀원들과는 안면이 있었다. 나는 그때 업무 연관도 없고 해서 굳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이분은 영업사원이니까 친화력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직원 C]
개인적으로 말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다만 나 혼자 친밀감을 느끼고 있는 건, 전회사에서 친하게 지냈던 직원과 성과 이름까지 똑같고 심지어 전체적인 이미지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직원을 볼 때마다 좋은 기억으로 같이 근무했던 그분 생각이 나서 그리웠던 그 시절을 자꾸 떠올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업무상 만날 일이 거의 없고 외근직이라 사무실에 잘 안 오다 보니 거의 오늘 처음 보는 수준이다.
이렇게 후보가 3명이었는데 여러 정황 상 A일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였다. 그런데 정말 생뚱맞게 확률이 가장 낮아 보이는 C와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왜져? 인생 모른다잉.
그런 데다 내가 나이가 많으니 더 불편했다. 나는 차라리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랑 방 쓰는 게 마음이 편하다. 내가 나이가 많으면 이 분위기를 주도해서 분위기를 풀어나가야 될 거 같단 말이야. 부담스러워.
서로 어색하게 몇 마디 주고받다가 내가 먼저 씻고 이 친구도 씻으러 갔다. 일본에 오면 그동안 일본어 공부한 게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며 호텔 텔레비전을 보기도 하니 틀어놓고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씻고 나와서 아이패드를 꺼내놓길래 '어, 아이패드 가져왔네요?' 했더니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하는 게 아닌가! 여기서 급 동질감 형성!
나도 내가 이번 여행에서 읽으려고 가져온 책을 슬며시 보여주었다. 게다가 나랑 똑같이 소설만 읽는다고 했다. 자기 계발서는 재미없고 안 읽힌다고. 소설도 종류가 많은데 세부적인 취향은 나와 다른 거 같았지만 어쨌든 그녀가 책을 읽는다는 사실만으로도 혼자 내적 친밀감 상승.
<기억에 남는 두 번째 풍경>
그래서 그걸 계기로 이것저것 회사생활에 대해서도 말을 걸다가 어차피 둘 다 책을 읽어야 하니 책 읽자면서 유튜브로 음악 작게 틀어놓고 둘이 나란히 앉아 책을 읽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하하하. 이게 바로 이번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두 번째 풍경이지만 사진은 없다. ^^;
이건 책을 챙길 때만 해도 상상도 못 한 일이다. 물론 책을 가져오긴 했지만 사람을 앞에 두고 책 읽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아 버스 이동시간이나 비행기에서 혼자 있을 때 읽으려고 가져온 거였다.
이렇게 우연히 같은 방에 배정된 친구가 여행지에서 책을 읽는 사람이었을 줄이야. 이것도 운명인 건가? 아무튼 대화를 조금 나누다 거의 한 시간 정도 둘이 얌전히 각자 침대에 앉아 대화 없이 책을 읽었다. 그러다 나는 먼저 자겠다고 하고 누워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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