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해외여행 보내준다는데... 가기 싫은 이유는?
* 인센티브 트립이란?
-> 일명 '포상휴가'라고 부르는 것으로, 회사나 기관 등에서 실적 달성,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대규모로 단체 여행을 떠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새로 취임하신 대표이사님께서 직원들에 대한 보상으로 '인센티브 트립'에 대해 언급하신 적이 있었다. 대통령으로 치면 일종의 공약이었다.
그래서 몇 년 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그저 먼 미래의 일이라 생각했다. 나는 언제든 퇴사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거 가기 전에 난 없겠지 뭐, 했는데 그동안 나는 여태껏 퇴사를 하지 않고 있었고 그 시간이 오고야 만 것이다.
회사 사람들과 여행을 가기 싫은 이유 중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이거다 : 사적으로 친한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관광지에서 같이 돌아다닐 사람이 없다는 것. 그게 제일 무서웠다.
마치 수학여행 갔는데 친한 친구 무리가 없어서 혼자 동떨어져서 돌아다니는 학생과 같은 느낌. 그래서 그냥 눈 딱 감고 2박 3일만 버티자는 심정으로 갔다. 여차하면 나랑 상황이 비슷한 팀원이 한 명 있으니 서로 의지하고 다녀야지, 하면서.
그런데 많은 인원이 움직이다 보니 비행 편을 나눠서 타게 됐고 팀원 하고는 비행 편이 달라서 현지에서 만나야 했다. 그래서 공항에서는 쓸쓸히 혼자 다녀야겠다고 생각하고 미팅 장소로 가서 안내를 받은 뒤 이동하려던 참이었다.
그나마 몇 번 말을 나눠본, 말도 많고 분위기를 잘 주도하는 분이 그쪽 팀 한 명과 일행으로 내 근처에 서있었다. 그분들도 체크인하러 간다길래 얼씨구나 하며 같이 따라갔다. 덕분에 남들이 보기에도 안 이상하고 나도 그럭저럭 외롭지 않게 비행기 탑승 전까지 같이 시간을 보냈다. (기는 좀 빨렸지만 고마웠다)
그나저나 어떤 이야기를 하던 도중이었다. 그 둘 중에 한 명은 나랑 이번에 얼굴도 처음보고 말도 처음 해본 사이인데 대뜸 '제가 녹내장인데요~ 어쩌고 저쩌고'라고 지나가는 말로 얘기하길래 깜놀했다.
나와 같은 병을 가진 사람인데도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사람이 있고 나처럼 꼭꼭 숨기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굳이 드러내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정말 다르구나 싶어 좀 신기했다.
모바일 체크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하고 떨어져 앉으려고 앞쪽 창가좌석으로 체크인을 해뒀기 때문에 비행기에 탑승해선 원했던 대로 혼자서 시간을 보냈다.
현지 내렸는데 날씨가 좋지 않다. 날이 흐리고 비도 좀 올 거 같다고 한다. 그런데 날씨에 안 어울리게 인스타 사진이 잘 나올 거 같은 가게들이 모여있는 아기자기한 장소가 첫 번째 코스였다. 바람이 엄청 심하게 불었는데 그 와중에 힘겹게 단체사진을 찍고 알아서 자유시간을 보내고 오라고 했다.
가게들이 층층이, 계단식으로 배치되어 되어있어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 끝까지 가봤다. 그랬더니 맨 위층에 제일 유명한 가게가 있었는데 줄이 줄이... 사람이 너무 많고 결정적으로 테이크 아웃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머무는 시간이 많지는 않았기에 다시 내려오다 보니까 적당히 테라스 좌석도 있고 핫도그 팔길래 그냥 간단히 이거라도 요기하자 싶어서 두 개 주문해서 팀원하고 같이 먹었다.
그런데 우연히 들어간 이곳이 은근히 좋았던 게, 여기서 나하 공항 활주로가 잘 보였다. 나랑 성격이 비슷한 팀원ㅡ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본인의 생각과 주장을 절대 먼저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ㅡ과 함께 계속 착륙하는 비행기를 바라보면서 핫도그를 먹었다.
나도 날만 좋으면 산책하고 싶었는데 그럴 마음이 안 나더라. 아무튼 팀원은 여기까지 그래도 왔으니 산책하고 차로 돌아가겠다고 해서 먼저 보내고 나도 좀 앉아있다가 가야겠다 싶어서 일어났는데...
<기억에 남는 첫 번째 풍경>
여기 여행 오기 전 바로 주말에 브런치에 올릴 글을 뭘로 할까 하다가 옛날에 쓴 글들을 찾아봤다. 그러다 노리플라이의 권순관이 부른 <아직도 난>을 테마로 쓴 글을 발견했는데 지금 갑자기 그 음악이 떠오른 거다. 왜냐하면 이 노래에 관해 쓴 글이 녹내장 하고 관련이 있는데 아까 아침에 공항에서 '저도 녹내장인데...' 하는 말을 들은 기억 때문이었나 보다.
이 노래는 밝은 노래가 아니다. 나에겐 비바람이 부는 거리를, 어려움을 헤치고 혼자 뚫고 걸어가는 사람이 그려지는 이미지를 가진 노래다. 마침 오늘의 이곳의 풍경이 노래의 이미지를 연상시켰다. 사방이 탁 트인 공간에 비바람이 몰아치고 하늘은 흐려서 이 노래와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로 돌아가는 길에 혼자 풀밭을 걸으며 노래를 들었다. 바람을 뚫고 소리치다시피 노래를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걸었다. 노래가 가슴에 사무쳤다. 나는 더 단단해야 해. 앞으로 갈 길이 머니까.
그리고 다음 목적지는 아메리칸 빌리지 일명 아메빌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차를 타고 꽤 이동했다. 이곳은 관람차와 선셋비치가 유명한데 관람차는 얼마 전에 철거됐다고 한다. 여기도 머무는 시간이 대략 1시간 정도였는데 저녁 먹을 시간을 맞춰야 돼서 일몰 시간 전에 떠나다 보니 이름이 선셋 비치지만 정작 선셋(노을)을 볼 수가 없었다.
처음엔 가이드 선생님 따라서 어느 지점까지 같이 이동했다. 거기서 기념사진을 찍고 나니 알아서 다들 끼리끼리 헤어지는 분위기길래 일단 팀원을 데리고 나왔다. 그런데 이 친구가 나랑 있는 게 불편해서인지 아님 나를 배려해선지 쭈뼛쭈뼛하면서 혼자 산책하고 싶다고 하길래 그러라고 했다.
사실 나도 좀 불편하긴 했다. 나도 산책 참 좋아라 하지만 아무래도 날이 심상치 않아서 이 바람 뚫고 한 시간 내내 같이 있기도 뻘쭘했으니까. 아까 오는 길에 보니까 이온몰이 있는데 거기 서점이 있는 거 같아서 산책은 조금만 하고 거기 가보려고 생각 중이긴 했었다. 오히려 잘됐다 싶어서 헤어졌다.
그렇게 아메빌을 슥슥 둘러보고 다시 선셋비치 쪽으로 향했다. 그러니까 2019년에 오키나와 여행으로 혼자 이곳에 여행 왔을 때, 노을을 봤던 그쪽으로 갔다. 지금은 겨울이라 그런지 마침 백사장을 파내고(?) 공사를 하고 있어서 더 이상 평화로운 비치가 아니었다. 공사장 느낌 팍팍.
그때 봤던 구도와 느낌과 기타 등등을 떠올려보려고 했으나... 바람도 겁나게 불고 눈에는 포클레인이 보이고 모래가 다 뒤집어져 있어서 그때와 비슷한 기분은 전혀 나지 않았다. 그때도 혼자였고, 오늘도 혼자였는데 이상하게 오늘이 더 외로운 느낌. 대신 그때 여행을 하며 즐겨 들었던 일본 시티팝 한 곡만 듣고 실내인 이온몰로 이동했다.
서점은 바로 1층에 있었고 많이 크지 않았다. 시간 여유가 있길래 내가 찾고 있는 책을 직원한테 곧바로 물어보지 않고 스스로 코너를 둘러보면서 찾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내가 찾는 작가 미즈무라 미나에의 책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한참 동안 찾다가 이제 시간이 다 돼서 쭈뼛거리며 직원에게 물어보니 없다고 했다. 크지 않은 서점이다 보니 모든 작가의 책을 구비해놓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대로 차로 돌아왔다.
저녁 먹으러 가서도 우리 테이블에 나와 우리 팀 직원 빼고 아무도 앉지 않는 현상이 벌어졌다. 그래도 같은 본부 내 옆 팀 직원 한 명과 원래 옆 팀이었으나 다른 팀으로 이동한 직원이 와주어서 그럭저럭 같이 저녁을 먹었다. 식당은 딱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로 예약을 해 둔 상태라 시간 안에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야 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숙소로 갔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공항에 가고 비행기를 타고 넘어오다 보니 피곤했다. 내가 술을 꼭 먹어야 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면 억지로 사람들을 모아서라도 아님 어디 끼어서라도 마시겠지만 그 정도로 술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사적으로 낄 그룹도 없다 보니 조용히 방에 있기로 했다.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