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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Jan 23. 2021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눈폭탄을 헤치고 집으로 돌아온, 재난영화의 한 장면 같은 퇴근길

'평범하게' 사는 것이 제일 어렵다고들 하는데, 그 말에 동의하며 떠오른 노래 하나.


왜 그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시는 가요

팔천 삼백 구십오 일째 난 그렇게 살죠

나는 그냥 평범한 사람 잘하는 게 별로 없죠 

차가운 눈초리 난 숨이 막혀


<가만히 두세요>, 롤러코스터





     내가 일하는 회계팀이 제일 바쁠 때는 언제일까? 


    보통 회계팀은 회계연도가 종료되는 시점 즉 연마감을 할 때 제일 바쁘다. 이때는 회계연도 마지막의 월 마감을 하면서 연마감을 위한 부수되는 업무들이 주어진다. 연간 실적정리를 비롯해 유동성 대체, 각 계정 확인 등을 하면서 기말감사와 세무조정을 위한 추가적인 자료 준비도 필수이다. 실제로 감사나 세무조정이 진행되면서 감사인들이 제기하는 의문점에 대해 해명 아닌 해명과 추가 설명을 해야 하고 무언가 이상하다고 지적을 받으면 소명하거나 소명이 안 되는 명백한 실수라면 마감을 다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재무제표가 수정될 수도 있다.


     우리 회사 같은 경우는 본사 보고 기한이 있기 때문에 더 힘들다. 회계연도가 올해 4월 ~ 다음 해 3월이었을 땐 매년 벚꽃이 피는 4월 초에 연마감이 진행되기 때문에 좀비가 되어 벚꽃놀이 끝물에 겨우겨우 맞춰가거나 그마저도 못 갈 때가 많았다. 그런데 회계연도가 1월 ~ 12월로 바뀌고 나선 벚꽃놀이는 정상적인 상태로 갈 수 있게 되었지만 다들 연말이라고 기분도 풀어지고 연초라고 새로운 기분으로 한 해를 시작하는 그 중차대한 시기에 좀비가 되어있다. 지난 일 년을 차분하게 마무리하거나 다가오는 새해를 보낼 계획을 세우기는커녕 제발 이놈의 마감이나 좀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연말을 보내기 일쑤다.


     올해도 그러했다. 코로나 사태로 사무실 밖으로도 못 나가고 점심과 저녁 도시락을 시켜먹으며 하루 종일 감사와 세무조정 대응을 했다. 심지어 나는 발가락이 부러져 반깁스를 하고 있는 상태인데 하루에 열 시간 이상 사무실 책상에 앉아있자니 피가 아래로 쏠려서 다리는 저리고 발은 퉁퉁 부어서 내 발인지 못 알아볼 정도가 되었다. 


     게다가 어제는 저녁 7시부터 눈이 오기 시작했는데 그 기세가 어마어마했다. 평소대로라면 나는 다섯 시에 퇴근하니까 벌써 집에 도착해서 한숨 돌리고 창밖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거나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폭설 소식과 꽉 막힌 도로를 보며 퇴근하는 사람들 참 힘들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일이 끝나지 않아서 집에 갈 수 없었고 11시가 넘어서야 감사팀이 퇴근하면서 드디어 집에 갈 수 있었다.


     설마 했지만 역시나 택시는 잡히지 않았고 이대로 택시만 기다리다간 오히려 집에 못 갈 것 같았다. 먼저 집에 전화를 해서 나를 좀 데리러 올 수 없느냐 물었지만 엄마는 길에 눈이 잔뜩 쌓여있어서 차를 갖고 나올 수 없다고 했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알아서 집에 가야 했고 남은 선택지는 대중교통 밖에 없었다. 고행의 시작이었다.


     회사 바로 앞에 있는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우리 회사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지하철역 출구 중 하나가 회사 건물의 지하 1층과 연결되어 있다는 건데 밤 8시가 되면 연결통로의 문이 닫힌다. 이미 11시 반이 다 된 이 시각엔 아무 소용없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건물 1층에서 밖으로 나와서 걸어서 지하철역 입구까지 갔고, 계단 곳곳에는 눈이 많이 쌓여있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평소에는 잡지도 않는 지하철역 계단의 손잡이를 잡고 깁스 신발을 신은 발과 운동화를 신은 발은 수평이 맞지 않으니 뒤뚱거리며 한 계단, 한 계단을 내려갔다. 그렇게 힘겹게 지하철역 안에 도착했다. 카드를 찍고 개찰구 안으로 입장했다. 다리에 깁스를 한 이후로는 그러니까 12월 중순 이후로는 계속 택시를 타고 다니거나 차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오랜만에 타는 지하철이었다.


     밤늦은 시각이기도 했고 코로나 때문에 열차 운행 횟수가 줄어서 인지 10분 정도 뒤에나 지하철이 도착한다고 했다. 그동안 지하철역에서 집에 가는 버스가 아직 다니는지, 언제까지 다니는지 알아봤다. 내가 탈 수 있는 버스는 총 3개인데 그중 2개는 이미 막차가 떠나 탈 수 없는 상황. 그나마 버스 하나의 막차가 0시 출발이어서 다행히 버스를 탈 수 있었다.


     평소 같았다면 3개 버스가 모두 지나가는 버스 정류장이 있는 역에서 내렸겠지만 그곳은 여러 버스를 탈 수 있는 대신 정류장이 중앙차로에 있고 지하철 출구에서 나가서 좀 걸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지금 깁스를 한 환자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짧은 거리도 걷기가 힘들다. 달팽이와 보조를 맞추며 걸을 수 있을 정도다. 게다가 눈이 많이 쌓여있다. 그래서 최대한 걷는 거리를 줄여야 했다. 그래서 평소에는 잘 이용하지 않지만 지하철역 입구로 나오면 바로 버스 정류장이 있는 다른 역이 생각났다. 


     그러는 사이 지하철이 와서 탔는데 정말 텅텅 비어있었다. 한 칸에 탄 사람이 10명도 채 안 되어 보였다. 2호선은 아무리 밤늦은 시각에 타도 사람이 바글바글한데 오늘은 내가 여태까지 본 것 중에 사람이 제일 적은 거 같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지금 반깁스를 한 환자니까 앉아서 가는 게 최선이었다. 그렇지만 혹시라도 자리가 없을까 걱정했는데 그런 걱정을 한 게 무색할 정도로 자리는 넘쳐났다. 그 칸에 탄 모두는 자연스레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편하게 자리에 앉을 수 있었고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어떤 사정으로 폭설이 내린 이런 날, 밤 12시가 다 되는 시각에 이 지하철에 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나처럼 늦게까지 일을 한 것일까?- 아마 안락하고 편안한 각자의 방에, 따스한 집에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을 가능성이 제일 높지 않을까.


지하철역에서 내려 버스정류장이 가까이 있는 출구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바람이 불며 눈발이 흩날렸고 인도에도 눈이 많이 쌓여있었다.
나는 깁스를 한 다리를 조심스레 내딛으며 힘겹게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버스 도착 예정 안내판에는 10분 정도 기다리면 내가 타는 버스가 온다고 쓰여있었다. 춥고 눈도 오니까 지하철역 안에서 기다리다가 시간 맞춰 나올까 했는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지금 다리에 반깁스를 한 환자다. 그렇게 가까운 거리인데도 뛰어서 갈 수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걷는 속도 자체가 너무 느리다. 하는 수 없이 좀 추워도 나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생각보다 바람이 차가웠다. 그래도 버스가 있어 집에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며 추위와 마음을 달랬다.


     다행히 전광판에 뜬 것보다 버스는 빨리 도착했고 집에 무사히 버스를 탔음을 알렸다. 이미 12시가 다 된 시각이어서 차가 많지는 않았지만 도로에 눈이 많이 쌓인 상태라 버스는 속도를 낼 수 없어 아주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천천히 가도 좋으니 집에만 도착하면 된다. 그거면 된다. 평소 같으면 밤이라 길도 안 막히니 쌩쌩 달렸을 그 길을 거의 1시간가량 천천히 갔다. 


     드디어 내릴 곳이 되었다. 평상시 같으면 나도 버스가 멈춰 서기 전부터 미리 뒷문에 가서 대기하고 있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내리고 버스 기사님은 부리나케 문을 닫고 바로 출발했겠지. 그렇지만 오늘은 속도를 낼 수 없었으니까 기사님은 아주 천천히 정류장에 멈춘 다음 문을 열었고 나는 다리를 다쳤으니까 그제야 일어나 뒷문으로 천천히 내렸다. 기사님이 다리에 깁스를 한 나를 본 것인지 아니면 이런 궂은 날씨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가 내린 것을 확인하고는 문을 닫고 천천히 출발했다. 


     버스정류장까지 아빠가 데리러 나오기로 해서 전화를 했더니 저어기 건너편 횡단보도 앞에 다 왔단다. 횡단보도까지 걸어갔다. 횡단보도를 앞에 두고 건너편에 아빠가 서 있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눈이 도로를 다 뒤덮어서 도로에 그어진 횡단보도의 하얀 선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있으니 신호등이 바뀌었고 나도 건너고 아빠도 내 쪽으로 걸어와서 횡단보도 중간에서 만난 우리는 횡단보도를 끝까지 건넜다. 깁스 때문에 양말을 신은 맨 발이 외부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춥고 눈에 젖을 수 있으니 아빠가 가져온 위생 덧신을 깁스 신발에 겹쳐 신었다. 그리고 아빠가 가져온 등산스틱을 짚고 걷기 시작했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집까지는 평소 걸어서 7,8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그렇지만 밤늦은 시각, 인도에 쌓인 눈은 치워져 있지 않았고 나와 아빠는 그나마 다른 사람들이 앞서 밟아서 내놓은 발자국을 따라 짚으며 조심조심 걸었다. 여기서 잘못해서 넘어졌다간 지난 열흘간 발목과 발이 퉁퉁 붓도록 깁스를 열심히 한 게 다 쓸모없는 일이 된다. 최악의 경우엔 입원하거나 결국 철심을 박아야 할지도 모른다. 아빠가 앞에서 걸으며 뭐라고 몇 마디 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걷는 데에만 집중했다.
새하얀 눈밭과 등산스틱, 조심스러운 발걸음.
평지를 걷고 있었지만 등산스틱 때문인지 아빠와 겨울산 등산을 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깁스 때문에 속도를 낼 수 없었고 또 조심히 걸어야 했으며 그러다 보니 속도가 더 늦어지고 힘이 들었다. 만약 히말라야나 겨울 설산을 등산하면 이런 기분이 들까? 란 엉뚱한 생각도 했다. 마치 재난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눈이 많이 와서 고립된 인간. 그렇지만 인간을 무력화시키는 대자연 앞에서 그걸 이겨보겠다고 열심히 작은 발걸음이라도 떼어보는 인간의 모습. 그러다 차라리 등산을 한다고 생각하기로 했고 눈길을 헤친다는 느낌으로 집까지 열심히 걸어왔다. 나도 아빠도 넘어지지 않고 무사히 집까지 도착했다. 


집에 도착해 무심결에 시계를 보니 1시였다.
그렇다.
어제 날짜로는 25시, 오늘 날짜로는 1시가 된 거였다.
어느새 어제는 끝나고 새 날이 되어 있었다.


     집에 무사히 도착했음을 자축하며 씻고는 배가 고파져 컵라면을 하나 끓여먹었다. 늦은 시각이어서 배가 고팠을 수도 있지만 다친 다리 때문에 평소의 몇 십배는 더 긴장하며 눈길을 헤치고 와서 그런지 기운이 쭉 빠졌을 거다, 아마도. 컵라면 한 그릇은 육체적 허기와 긴장이라는 정신적 허기 모두를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이것이 어제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 아침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출근했다. 직장인의 삶이라는 게 다 그렇다. 게다가 원래대로라면 오늘도 야근을 해야 하지만 다리 상태도 그렇고 어제처럼 퇴근길에 택시가 안 잡히면 곤란하기에 다섯 시에 먼저 퇴근하고 집에 가서 나머지 일을 하기로 했다. 엄마가 차를 가지고 데리러 와주셨는데 큰길은 눈을 많이 치워놓아 차들이 달리기 수월해진 데다 눈 때문인지 도로에 차들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집에는 그리 늦지 않게, 평상시와 비슷하게 여섯 시쯤 도착했다.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고 씻고 나니 벌써 저녁이 차려져 있었다.


이게 얼마 만에 먹는 집밥인가.
흰 밥과 무가 들어간 고등어조림 그리고 토하젓.
물론 배도 고팠겠지만 그저 꿀맛이었다.


     저녁을 먹으며 지난 일주일 간의 고된 야근과 기를 쓰고 집에 돌아온 어젯밤 일이 떠오른다. 집에 돌아온다는 그런 평범하고도 흔한 일이 사투를 벌일 만큼 힘든 일이었던가? 나는 아니 우리는 그저 회사에 가서 일을 하고 나면 지붕이 있는 따뜻한 집에 돌아와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는 게 인생의 전부인데 그 쉬워 보이고, 당연해 보이고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것들을 이루어내기가 이렇게 어려운 거였다니.


     그래도 오늘 밤은 무사히 집에 돌아와 맛있는 저녁을 먹었고, 거실 소파에 앉아 가족들과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어서, 아직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과 우리 가족 모두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건강한 상태로 이 모든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는 보통날의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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