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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Mar 14. 2021

깁스 생활자를 종료합니다

이제 끝인 줄 알았지? 또 다른 시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비가 오지 않았지만 하루 종일 날이 끄무레했다. 이런 날은 날씨처럼 기분도 다운되게 마련이라 나는 이런 날씨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날씨에 종속되는 주체적이지(?) 못한 인간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한동안 재택근무가 이어졌는데 오늘은 일이 있어 사무실에 출근을 했고, 퇴근 시간이 되어 자리를 정리하고 사무실을 나오려다 팀장님께 인사를 했다. 팀장님께선 다리도 나았는데 주말엔 뭐하냐고 물으셨지만 깁스를 풀었다고 해서 다리가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회사 건물 밖으로 나왔다. 정형외과에 가기 위해 테헤란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거의 40여 일을 차고 있던 깁스를 푼 지 고작 3일이 지났다. 깁스를 빼 버렸으니 다리 무게 자체는 가벼워졌지만 여전히 종아리의 붓기는 가라앉지 않았고 걷는 것도 어색하다.


     '걷는 게 어색하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이건 마치 '숨 쉬는 방법을 모르겠어요' 하는 것과 같은 말이랄까? 우리는 평소에 의식하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숨을 쉬고 있다. 숨 쉬는 방법을 하나하나 기억해서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채로 너무나도 쉽게 숨을 들이마셨다 뱉었다를 하고 있다. 


     그런데 숨을 못 쉬게 되는 상황-가슴이 답답해져 온다거나 수영을 할 때-이 닥치면 우리는 그 '숨을 쉰다는 것'에 온갖 신경이 쏠리고 거기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것과 마찬가지다. 걸을 때, 우리는 두 다리를 교차하며 아무 생각 없이, 이러한 행위에 대해 크게 의식하지 않으며 걷는다. 말하자면 다리와 무릎의 각도를 65도와 45도로 맞추고, 발목은 15도와 75도로 명랑하게 움직이면서 (물론 이 각도는 임의의 숫자로 전부 뻥이다ㅎ) 발가락에 균등하게 힘을 주며 걸어야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깁스를 하는 동안 발 끝부터 종아리까지 있던 모든 세포가, 근육이, 감각기관이 굳어버린 느낌이 든다. 나는 분명 걷고 있다. 그런데 자연스러워할 걷는 과정이 너무나도 어색하다. 자연스레 두 발이 교차하며 탁, 탁, 탁 걷는 게 아니라 한두 걸음 걷고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선다. 마치 태엽을 한 바퀴 감으면 딱 한 걸음만 걸을 수 있는 인형처럼. 특히 깁스를 했던 오른쪽 다리의 움직임이 너무나 어색하다. 그래도 다시 용기를 내서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러나 무언가 어색하고 불편한 느낌에 얼마 가지 못하고 또 멈춘다. 용기를 내서 다시 걷다가도 깁스를 했을 때처럼 종아리 뒤편이 찌릿찌릿 당겨오거나 발등에 통증이 와서 멈춘다. 그렇게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그래도 하나의 희망은, 얼마 뒤에는 언제 그랬는지도 모른다는 듯이 다시 정상적으로 걸을 것이라는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한 믿음이다. 그때를 기다리며 의식적으로 걸음걸이에 신경을 쓰고 똑바로 걸으려 노력한다. 만약 지금 이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깁스를 하고 있는 것처럼 오른쪽 다리를 질질 끌며 걷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까.


걸음걸이가 똑바르지 않아도
두어 걸음 걷다 어색해서 자꾸 멈춰서도
내 기분을 가라앉히는 흐린 날씨임에도
이렇게 힘들게 걸어서 가는 목적지가 
연인을 만나러 가거나 맛있는 걸 먹으러 가는 게 아니고
다쳤던 발가락의 경과를 보고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가는 것이라 해도 
내가 내 두 발로,
내 의지대로 다리를 움직일 수 있음에 
걸어서 어딘가로 이동할 수 있음에 기뻐하는 나를 발견한다. 

지금은 해가 쨍쨍하면서 파아란 하늘에 구름이 뭉게뭉게 예쁘게 떠 있거나
불그스름한 노을이 온 하늘을 뒤덮고 거리에 아름다운 빛을 퍼뜨리고 있지도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런 하늘을 가지고 있는 거리를 걷고 있을 때
두 발이 둥둥 뜨는 듯한 상쾌한 기분과 비겨도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 내가 있다.


     병원을 가기 위해선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야 한다. 그중 첫 번째 횡단보도는 횡단보도를 건널 수도 있고 지하도로 갈 수도 있다. 오늘은 지하도로 내려가기 위한 지하철 계단 대신 사거리의 횡단보도를 이용해 길을 건너기로 했다. 깁스를 했을 땐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힘들어서 횡단보도를 한번 이용해 봤는데 생각보다 신호가 너무 짧았다.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자마자 부리나케 건넜는데도. 그래서 초록불이 깜빡이기 시작했던 횡단보도의 중간부터 마음이 급해져 최대한 다리를 빨리 움직였지만 아무리 계산해 봐도 신호등이 바뀌기 전에 이걸 건너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빤히 깁스하고 있는 사람이 힘겹게 길을 건너고 있는데 차량 신호가 빨간불에서 초록불로 바뀌자마자 그대로 액셀을 밟아 차를 출발시켜서 사람을 치지 않겠지, 라는 약간 뻔뻔하면서도 당연한 생각을 했다. 보행자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고 차량 신호는 초록불로 바뀌었지만 나는 여전히 횡단보도 위를 걷고 있었고 다행히 맨 앞에 선 차들은 이런 나를 봤는지 아무도 액셀을 밟지 않아 주어서 이렇게 살아서 글을 쓰고 있다.


     한 번 그런 일을 겪고 나니 횡단보도를 건너기 무서웠다. 그래서 길을 건너야 하는 경우엔 불편해도 지하철 지하도를 이용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데에 다리에 무리가 많이 갔지만 적어도 신호등에 쫓기지 않고 힘들면 조금 쉬었다 움직일 수 있었다. 지하철 계단 하나하나를 내려갈 때마다 깁스를 하지 않은 왼쪽 발이 돌바닥에 부딪치며 오른발이 주지 못하는 힘까지, 하중을 전부 받으며 무리를 했다. 그러고 나면 깁스를 하지 않은 왼쪽 다리가 오히려 당겼다.


     그렇지만 오늘은 당당하게 횡단보도를 건넜다. 건너편 코엑스 건물 전광판에 흘러나오는 영상물을 보다가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고 10초 정도 뒤에 길을 건넜음에도,  평소보다도 느린 걸음인데도 여유 있게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었다.


     1차 관문인 횡단보도를 무사히 건넌 후 다시 길을 걸어가다 보니 오른편에 위치한 5성급 인터컨티넨탈 호텔로 차들이 드나드는 진입로가 있는 작은 건널목에 도착했다. 그런데 거기에서 마치 운명처럼, 건너편에는 누가 봐도 본래 걸음이 불편한, 다리가 휘어서 똑바로 걷고 있지만 휘청휘청 걷는 듯하게 보이는 사람 한 명이 걸어왔다. 그곳은 앞서 말했듯이 호텔 진출입을 위한 차들이 다니는 작은 길이어서 당연히 신호등이 없었으나 호텔 직원이 지키고 서서 사람과 차량 통제를 했다.


     내가 도착했을 땐 차가 오지 않아서 직원이 사람들을 지나가게 해주고 있었다. 나는 아직 걷는 게 불편하긴 했지만 깁스를 신었을 때보단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에 그대로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런데 건너편의 그녀는 건너지 않고 있었다. 짧은 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은 빨리 지나가는데 자신이 천천히 지나가면 호텔 직원이 그걸 기다려줄까 싶어서 그랬을까? 그녀 뒤에서 오던 사람들도 전부 다 건너고 있고 나도 이제 1/3쯤 건넜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었다. 평소의 나라면 관심을 두지 않았거나 보고도 금방 잊어버릴 광경이었다. 그녀는 한참 뒤에야 건널목을 건너기 시작했다. 아마 호텔 직원이 사람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차를 오지 못하게 막아줄 것 같은 확신이 서서 나중에서야 움직인 건 아닐까 하는 게 내 감정을 그녀에게 투영해서 내린 추측이다.


     그녀도 불편하긴 하지만 걸을 순 있다. 다만 남들보다 속도가 좀 느리고, 계단을 걸을 때 다리에 하중을 좀 더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저 걷는 것일 뿐인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냥 가다가 한 번 정도 뒤돌아서 다시 볼만큼의 미묘한 시선을 받으며 일상을 지내왔을 것이다. 그런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까? 비록 다리가 불편하긴 해도 내 다리로,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직장에 가서 일을 하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탈 수 있음에 감사해할까?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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