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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Feb 13. 2021

아무나 가입할 수 있는 신비한 북클럽에 가입하며

나의 북클럽 역사를 되돌아보다

     나는 눕자마자 잠드는 일명 ‘대면 자’스타일이 아니다. 보통은 뒤척거리다 잠이 드는 편인데 한참을 뒤척여도 잠이 오지 않을 때는 무언가를 찾아서 듣곤 한다. 그럴 때 찾아 듣는 것 중 하나가 김영하 작가님의 팟캐스트 '책 읽는 시간'이었다. 콘텐츠마다 분량은 다르지만 대략 1시간 내외로, 잠이 안 와 끝까지 들을 때도 있었고 듣다가 중간에 잠이 스르르 올 때는 슬쩍 방송을 끄고 잠에 들었다. 마음에 드는 콘텐츠는 여러 번 듣기도 했다.


     그런데 한 6개월 전쯤이었나? 그날도 잠이 오지 않아 팟캐스트가 생각이 나서 검색을 했는데 ‘결과 없음’이라고 나왔다. 몇 번을 검색해보다 이상해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작가님께서 그동안 올린 팟캐스트를 다 내리셨다고 한다. 나는 그동안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 한 번도 다운로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멍청이도 이런 멍청이가 없다. 


     그렇게 팟캐스트가 없어진 것을 아쉬워하고만 있다가 작가님이 인스타 계정을 운영하신다는 것을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으로 들어가 봤는데 그곳에서 작가님이 누구나 원하면 참여할 수 있는 북클럽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김영하 작가님이 주최하는 아무나 가입할 수 있는 이 신비한 북클럽은 작년 12월부터 시작되었고 매월 한 권의 책을 작가님이 선정한다. 그럼 한 달 동안 그 책을 읽은 회원들이(태그를 걸어서 소감을 남겨도 되는데 이걸 하고 말고는 개인의 자유다) 정해진 날짜에 인스타 라이브 방송(이하 라방)에 접속해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었다. 


     1월의 책은 피터 비에리의 '자기 결정'이라는, 나는 처음 들어보는 책이었다. 물론 작가님이 추천해주셨으니 당연히 읽어보고 싶었지만 당시의 나는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서관에 갈 수 없었고-도서관에는 왠지 없을 것 같은 책인 데다 코로나 때문에 도서관은 대출반납 업무를 중지한 상태였다-그나마 내가 접할 수 있는 전자책 사이트에서는 책이 검색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책을 읽으려면 무조건 책을 사야 했다.


     나는 대단한 독서가는 아니지만 책을 꾸준히 읽고 있는 사람이다. 어렸을 때는 책을 무조건 사서 읽었었는데 그게 하나둘 쌓이다 보니 상당한 양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게 아니라 한 번 읽고 난 책은 한참 동안은 다시 읽지 않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책은 무조건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거나 여의치 않으면 서점에서 서서 읽었다. 


     물론 읽어보고 정-말 마음에 드는 책은 소장을 위해 사기도 했다. 그리고 전자책이 나온 뒤로는 도서관에 없는 책은 전자책으로 읽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은 두 가지 조건 모두 맞지 않았다. 그런데 작가님이 운영하는 북클럽엔 책을 읽지 않아도 참여할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책을 읽지 않은 상태로 1월을 보냈다.


     1월 북클럽 라방 시간이 공지되었고, 나는 책을 읽지 않았지만 무조건 참여하기로 했다. 시간을 놓칠까 봐 알람을 맞춰두고 시간에 맞춰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다. 정해진 시간인 10시가 되기 조금 전이었는데 이미 방송이 시작되어 있었다. 팟캐스트가 없어져서 속상했는데 라이브로 작가님 목소리를 들으니 좋았다. 그리고 나와 함께할 북클럽 멤버들이 하나둘 접속하기 시작했다.


     라방은 작가님이 책에 대한 질문이나 포인트를 짚어서 말씀하시면 사람들이 댓글을 달고 그걸 읽어주고 의견을 덧붙이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책을 읽지 않았던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었지만 작가님이 하는 말들이나 올라오는 댓글을 보며 이번 달의 책이 어떤 책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철학책이고, 외국어로 된 것을 번역한 책이어서 그런지 (철학서+외국어 번역의 콜라보) 책이 얇은데도 이해가 어렵고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책에서 언급된 듯한 글쓰기, 경험, 문학이 주는 힘, 외국어 학습 등에 대한 키워드가 나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다 내가 관심 있어하는 것들이었다. 특히 글쓰기에 대한 부분이 꽤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듯했는데 작년에 브런치를 시작하며 글 쓰는 습관을 들여가고 있는 나에게 또 외국어 공부에 관심이 있어 현재 4개 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나에게 그리고 소설을 읽기 좋아하는 나에게 많은걸 시사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나는 그동안 혼자서 책을 읽어왔었고 주로 문학이나 에세이류를 위주로 읽었다. 그래도 어렸을 때는 주위에 책 읽는 친구들이 있어서 감상도 나누고 서로 책 추천도 하고 그랬었다. 그런데 이제 친구들도 책을 잘 읽지 않거니와 자주 만나지 않다 보니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어서 외로웠다. 


     그래서 2018년과 2019년 2년에 걸쳐 트레바리라는 북클럽에 가입했었다. 트레바리는 시즌(4개월)을 기준으로 하여 유료로 운영되는 북클럽으로, 가입비가 높은 편이었다. 대신 모임 공간이 주어지고 클럽 당 인원 제한과 같은 규칙도 철저하고 400자 이상의 독후감을 내지 않으면 오프라인 모임 참여 자체가 제한되는 등 엄격하게 운영되는 편이었다.


     이런 독서모임에는 처음 가보는 것이어서 걱정을 하며 첫 모임에 갔는데 다행히 첫 모임의 인상이 너무 좋아서 그 뒤로 시즌마다 클럽을 바꿔가면서 여러 클럽에 참여했었다. 그렇지만 비용이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었고 클럽장이 외부의 유명인사인 경우도 있었지만 나와 같은 참여자인데 좀 더 책임감을 부여받아 클럽장을 하는 경우도 있었기에 어떤 클럽장이 모임을 맡느냐에 따라, 또 멤버들의 구성에 따라 모임의 분위기나 품질의 편차가 상당히 컸다. 그래서 2년 정도 해봤으니 이 정도면 충분히 해봤다고 생각해서 그만두게 되었다.


     트레바리를 하면서 좋았던 건 한 달 동안 나와 같은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 2년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가 갑자기 다시 책을 혼자 읽던 시절로 돌아왔더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2020년 1월은 그냥 흘려보내고 예전에 김영하 작가님이 나온 방송에서 소개되었던 대화상점이라는, 트레바리보다는 조금 더 부담 없어 보이는 독서모임에 가입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코로나 사태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고 나는 겁이 많았던지라 모임에 한 번도 나가지 않은 채 모임이 종료되었다. 그 뒤로는 오프라인 모임이 꺼려져 당분간 북클럽을 안 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혼자 책을 읽자니 감상을 나눌 상대가 없어 대양에 홀로 둥둥 떠 있는 섬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김영하 작가님이 운영하는 아무나 가입 가능한 신비한 북클럽의 존재를 이제라도 알게 되어 매우 기뻤다. 그렇다면 내가 북클럽을 경험해 보면서 느낀 독서모임의 묘미는 과연 무얼까? 크게 3가지만 적어보았다.


평소라면 내가 읽지 않을 책을 읽는 것,
이 세상에 나 말고도 지금 이 시점에, 어딘가에서 나와 같은 책을 읽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나와 같은 책을 읽었는데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나 내가 말하고 싶었던 어떤 것을 정확히 짚어서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독서모임에서는 모임 시작 전부터 이번 시즌에 읽을 책이 정해져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 외에는 의견을 받아 추천수가 많은 책을 읽게 되곤 한다. 신기하게도 내가 전에 읽었던 책이 나온 건 의외로 한두 번 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내가 혼자 책을 읽고 있었다면 절대로 읽지 않을 책들이거나 적어도 지금이 아닌 한참 뒤에 읽을 책들이 선정되어 읽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모임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니 한 달에 한 권 정도는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정해진 책을 읽고 나머지는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을 읽으면 되니 크게 부담되지 않았다.


     그리고 독서모임을 하면서 좋았던 것은 연대감이었다. 이 시기에 나와 같은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지구 어딘가에 있다는 것.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 사실에 크게 위안을 받았다. 나는 내 방에서, 지하철에서, 카페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었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덜 외로웠다.


     마지막으로 똑같은 책을 읽었는데도 사람들끼리 감상이 비슷하기도 했고 또 제각각이기도 했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어떤 지점을 누군가가 속시원히 말해줄 때도 많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다. 나와 나이대는 비슷해도 다른 경험을 하면서 살아오고,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나는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어서 주로 듣는 편이었지만 공개적으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 예를 들면 중학교 때 겪었던 따돌림 이야기를 독서모임 시간에 한 적도 있었다. 그때 모임에서 선정된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였고 링크와 같이 내 브런치에도 이미 글을 남긴 적이 있다.


     아무튼 나에겐 아주 개인적인 이 경험을 말하지 않고서는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말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내가 그동안 만나온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하지 않았던 이야기이면서 어찌 보면 나한테 득이 되지 않는 이야기인데도, 친분관계가 없는 독서모임 멤버들에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모임이 사회적 이해관계로 얽힌 것이 아니었고 같은 책을 읽었으니 그래도 이런 나의 이야기를 그들이 어떤 형태로든 받아들여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올해는 김영하 작가님의 아무나 가입할 수 있는 신비한 북클럽 회원으로 활동해보려고 한다. 가능하면 책을 읽고 참여하는 회원이 되고 싶은데, 책을 읽지 않더라도 라방엔 꼭 참여하고 싶다. 혼자 책을 읽고 어설프게 뭐라도 쓰고 있는 내가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 틀리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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