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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May 01. 2021

2020년 12월, 코로나 시국의 결혼식

코로나 시국에도 일상생활은 이어지고 있다

     나는 결혼식장에 잘 가지 않는다. 일단 인간관계가 좁아서 초대를 많이 받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결혼을 안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굳이 이곳저곳 결혼식장을 쫓아다니지 않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아주 친한 사람이라면 꼭 가지만 그렇지 않으면 안 가고 축의금만 보내거나 그도 아님 축의금도 내지 않는다. 


     결혼식, 이것은 그날의 주인공인 두 사람과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시간으로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그들의 소중한 시간에 또한 나의 귀한 시간을 내서 함께 하는 것 그게 결혼식장에서 찍어낸 듯이 30분 만에 끝나버리는 결혼식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결혼식장에 참석하기 위해선 결혼식이 진행되는 시간 30분만 필요한 게 아니다. 


     일어나 씻고,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식장까지 이동해야 하고 본식은 30분 정도면 끝나지만 친구나 직장동료 사진을 제일 마지막에 찍기 때문에 사진을 찍기 위해 30분 정도를 더 기다리면 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사진을 찍고 나서 밥이라도 먹을라치면 또 한 시간 정도 걸린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하루의 반나절이 지나있다. 


      그나마 결혼식 시간이 오전 일찍이거나 오후 늦게라면 반나절이라도 시간이 남지만 애매하게 오후 시간 중간에 걸치면 하루를 다 날린다. '시간을 날린다'는 말이 결혼식 참석 여부를 두고 쓰기엔 무례해 보일 수도 있지만 더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하겠다. 그만큼 나에게 어느 결혼식에 가느냐 마느냐는 꽤 중요한 결정사항이기 때문에 더더욱 소중한 사람의 결혼식에만 참석하고 싶은 것이다.


     오늘은 내 뒷자리에 앉아있는 같은 본부 소속인, 하지만 팀은 다른 직장동료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코로나 시국에도 결혼식은 계속 있었지만 참석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도, 그 직원도 처음에 우리 회사에 입사했을 때는 같은 팀에 속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팀이 분리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업무가 연관되어 있고 아무래도 과거에 같은 팀이었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서 그런지 친밀도가 높다. 


     몇 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보통 조모상/조부상은 회사에 잘 알리지 않기 때문에 조용하게 먼저 퇴근을 했다. 상을 치르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사람들이 모였을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거기서 그 소식을 처음 듣게 된 그 직원이 미안했는지 간식과 함께 다음과 같은 쪽지를 전해주었다. 


      나에게 외할머니는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지만 그 관계성을 다른 사람이 알 리도 없고 위로해주지 않더라도 속상해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까,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동료는 마음을 표시했다. 세심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나중에 들은 직장 동료에게 받은 쪽지


    오늘 결혼식의 사회자는 여자였는데, 결혼식의 주인공인 둘을 소개해준 친구라고 했다. 아직까지 여자가 사회를 보는 결혼식은 많이 가보지 못해서 신선했다. 그리고 주례 없는 결혼식이어서 양가 아버님들이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해준 것도 좋았다. 나는 남의 결혼식에서 꼭 주책바가지 같이 눈물이 고인다. 배경음악으로 깔린, 내가 좋아하는 Moon River의 현 선율이 너무 슬퍼서 그렇다고 핑계를 대본다.


     내가 아직 결혼을 해보지 않아서 당사자의 마음은 모르겠는데 이상하게도 결혼식에선 특히 양가 부모님에게 감정이입이 된다. 그 둘을 키워왔을 부모님들의 마음 특히 엄마와 딸의 관계에 있어서 그렇다. 만약에 내가 결혼을 한다면 절대 잔잔한 음악은 깔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안 그래도 울 것 같은데 슬픈 곡조가 흐르는 순간 눈물이 퐝 하고 터질 게 분명하다. 내 결혼식엔 즐겁고 흥겨운 음악만 흐르게 하고 싶다. 결혼을 할지도 안 할지도 모르는데 이런 식으로 어떤 건 해야지/하지 말아야지 하는 것들만 늘어나고 있다.


     어렸을 때는 남들과 다 똑같이 결혼식장에서 재미없는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들을 보며 불쌍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너무나 철없는 생각이었다. 오히려 스몰웨딩이 정형화되어 있지 않아서 준비에 품이 더 들고 비용이 더 비쌀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결혼식장에서 30분 만에 끝나는 식일지라도 이런 식으로 양가 부모님이 한 마디씩 하고, 친구가 축가를 불러주고, 소개해준 친구가 사회를 봐주는 등 결혼 당사자들과 의미 있는 것들로 그 자리를 채운다면 남들과 똑같아 보여도 결코 똑같은 결혼식은 아닐 것이다. 


     갑자기 친한 친구 ㅈㅇ이한테 엄청 미안해졌다. 남편의 여사친이라는, 자신이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닌 친한 친구인 내가 부케를 받아주길 바랐을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말하면 되는 거였는데 내 친구는 직설적이고 쓸데없는 부분까지도 솔직한 사람이다. 그래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아주 솔직하게, 주위에 부케 받을 사람이 없으니 나에게 받으라는 식으로 말했고 기분이 상한 나는 부케 받기를 거절했다. 그걸로 친구 사이가 멀어지진 않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다. 오늘 부케 받는 걸 보니 부케를 받는 친구는 부케 받을 때도 사진에 찍히고 또 신랑과 신부 사이에서도 사진을 찍는다. 사진 찍히기 싫어하는 내가 그걸 견뎌낼 수 있을까? 그걸 견뎌낼 만큼 가까운 사람이어야겠지? 


     사회적 거리 두기가 격상되어서 식이 진행될지 말지가 사내의 관심사였다. 코로나가 막 발생했던 올해 초에는 식을 취소, 연기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제 1년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다 보니 방역지침에 맞춰 식은 진행되었다. 대신 모두 마스크를 쓰고, 출입 명부도 작성하고, 손 소독도 하고, 열 체크도 하며 결혼식에 참석하는 신기한 풍경이 벌어졌다. 식사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답례품을 전달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상관없이 시간은 흐르고 우리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래서 중차대한 감염병이 도는 코로나 시국 속에서 여러 어려움을 헤치고 펼쳐지는 결혼식은 내가 여태까지 봤던 그 어느 결혼식보다 더 숭고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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