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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May 14. 2021

오랜만에 연락이 온다는 것은 (상)

오랜만에 오는 연락에 대한 고찰 : 세 가지 이유 중 과연?

    지금까지 두 번의 이직을 해서 세 번째 회사에 다니고 있다. 현재 회사는 제일 먼저 다녔던 회사와 5분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그래서 생활 반경이 같았다. 그 말인즉슨, 점심을 먹으러 간다던가 출퇴근길에서 옛 회사 사람들을 만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하지만 막상 이직을 하고 보니 생각보다는 잘 마주치지 않았다. 


     내가 이직해서 다시 이 곳, 여의도로 돌아왔을 때는 퇴사하고 이미 3년이 지난 시점이었고 한 1년 전쯤 중간관리자 직급이 대량으로 정리해고가 되어 사람들이 많이 바뀐지라 연락해서 만날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은 계속 흘러 새 회사에 입사한지도 5년 차가 되어가자 그나마 친했던 사람들도 회사를 떠났다. 이제 더 이상 만날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아주 오랜만에 옛 선배 중 한 명에게 연락이 왔다. 아직도 새로 옮긴 그 회사 다니냐며, 시간 되면 밥이나 먹자고 했다.


     오랜만에 연락이 오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진짜로 그냥 만나서 밥이나 먹고 싶어서, 두 번째는 결혼이나 돌잔치 등 경조사가 있는 경우, 세 번째는 보험판매, 다단계 등 이 관계를 뭔가에 이용하고자 하는 경우. 이 선배는 내가 퇴사한 후에 이미 결혼을 했고, 애도 있었고, 회사는 잘 다니고 있으니(아마도?) 두 번째, 세 번째 이유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옛 회사와 5분 거리에서 일하고 있지만 정작 친한 사람들은 다 그만둬서 내부 소식을 모르니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같은 업무를 하는 선배니까 앞으로 커리어를 어떻게 가져가면 좋은가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두말도 않고 만나자고 했다.






    며칠 뒤 점심시간, 회사 근처에 있는 지하철역 입구에서 보기로 했다. 그런데 왜 5분 거리의 회사를 앞에 두고 굳이 반대쪽에 있는 지하철역에서 만나자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랜만에 본 선배는 살이 조금 붙었지만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잠깐 점심을 먹으러 나오면 보통 핸드폰이나 지갑 정도 들고 나오는데 이상하게 태블릿 PC 가방만 들고 있었다. 


    여기서 촉이 왔지만 일단 점심을 먹으러 갔다. 잘 지내냐, 어떻게 지내냐 같은 의례적인 이야기와 남자 친구는 있냐, 없으면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나이대는 어떻고 어디 다니는 이런 사람이 있는데 괜찮을 거 같다며 마치 누군가를 소개해 줄 것처럼 말을 한다. 그래서 내가 관심을 좀 보였더니 자기는 지금 우리가 같이 다녔던 회사를 퇴사한 지 한 8개월 정도 되었고(잉?) OO생명의 재무설계사가 되었다고 한다. 


     몇 달 전부터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마치 회사에 갓 입사한 사람처럼 증명사진으로 되어 있어서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었다. 그래서 혹시 어디로 이직했나? 싶었는데 그게 바로 OO생명으로 옮긴 거였다. 게다가 그 생명 보험사는 내가 직전에 다녔던 회사 바로 근처에 본사 빌딩이 있었기 때문에 나도 잘 아는 곳이었다. 


     사람들이 ‘보험 영업’하면 거부감을 갖는 지점이 분명 있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교육을 잘 시킬 것이다. 그 회사로 옮겼다고만 했지 나에게 이 상품 가입해라, 저 상품 가입하라고 하진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겠는가? 재무설계사를 비하하고 싶진 않지만 회계 담당자의 미래가 이런 것인가 하며 좀 씁쓸해졌다. 그래도 이 선배가 연락했을 때 거절하거나 뭘 묻지 않고 나온 건 평소에 그리 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퇴사 전에 따로 불러 밥을 사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눈 것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 일주일쯤 뒤 또 연락이 와서 보자고 한다. 그래 뭐, 이 사람들 일이라는 게 사람 만나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그러다 상품도 팔고 그런 거겠지.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보험에 쏟을 여윳돈은 없었다. 오늘 밥 먹으면서 확실하게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어 다시 만나기로 했다. 오늘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지만 이제는 슬쩍슬쩍 상품 얘기를 꺼낸다. 실비는 있냐, 자동차 보험은 있냐 묻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건강할 때 보험을 들어 놔야 된다고, 안 그러면 보험사에서도 기존 고객을 보호하기 위해 보험을 잘 안 들어준다고 하는데 속으로 씁쓸하게 웃었다. 



선배님,
보험사에서 거절당하는 그 고객이 지금 바로 눈 앞에 있어요. 




'오랜만에 연락이 온다는 것은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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