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마감 타임라인 : 임신 초기 임산부에 장염 걸린 팀원까지
202X 년 12월.
정말 정말로 (나의) 마지막 연마감이 시작되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까지는 쉴 수 있었다. 그다음 날부터 지옥 헬파티 시작. 계속 야근을 한건 아니지만 토, 일을 포함한 주말은 물론이고 해를 넘겨 1월 1일도 출근했다. 속에서 욕이 나오고 천불이 끓었지만 진짜 그지 같네를 비롯한 각종 욕이 흘러넘쳤지만 이 모든 걸 참을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아래와 같은 생각 덕분이었다.
올해는 진짜 마지막이다.
어떻게든 마무리만 하자.
세 달 뒤에 나는 자유다.
세 달 뒤의 나는...
이 사람들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난 5월 말에 이사를 했다. 여태까지 출퇴근 거리 하던 중에 가장 가까워 서서 출퇴근 시간이 매우 짧아졌다. 그 덕에 야근하고 택시는 잘 안 잡혔지만 버스 타고 금방 집에 도착할 수 있어서 화가 많이 풀렸다.
12월의 마지막 토요일.
나는 출근. 동갑내기 동료 팀원은 임신초기라 안정이 필요해서 재택근무하기로 결정. 중간 연차 팀원도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업무가 가능하다고 해서 재택근무를 하기로 했고 막내인 신입사원만 출근해서 일을 하기로 했다.
다음날은 2023년의 마지막날.
우리 팀에서는 나랑 막내 신입사원 그리고 연마감 업무에 관련된 옆 팀 사람들이 출근했다. 그런데 중간 연차 팀원은 분명 업무 프로세스 상 나한테 질문이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연락이 없었다. (이유는 나중에 알았지만) 막내는 역시 일찍 나왔다가 일찍 들어갔다. 마지막날인데 그래도 집에 들어가야지 하며 오늘도 마지막으로 남은 내가 사무실 불을 끄고 퇴근했다.
그리고 해를 넘겨, 1월 1일.
일요일에도 출근했더니 요일 감각이 없다. 썅. 오늘이 꽤 중요한 날인데 비용 및 재고까지 전부 다 마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ERP 시스템 상 숫자가 틀어질까 봐 개쫄린다.
오늘은 막내사원과 중간연차 팀원 두 명이 출근했다. 어제 중간연차 팀원이 나한테 왜 별다른 질문과 연락이 없었냐면 본인이 해야 할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분명 숫자를 맞추려면 익숙지 않아서 질문이 있어야 했는데 이제 좀 익숙해져서 잘하는 건가?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마무리를 안 짓고 자료 인풋만 하고는 그걸로 다 했다고 생각해서 나에게 질문이 없었던 거였다. 할말하않. 오늘에서야 숫자를 맞춘단다. 재고마감까지 돌리고 나면 만들어야 하는 리포트가 있는데 앞에 숫자도 안 맞췄으니 그걸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여기서 화를 내면
내가 지는 게임이다.
그래도 아주 조금 시간 여유가 있으니 잘 다독거려서 가자. 어제까지 아파서 누워있다 나온 애한테 모질게 굴 수는 없으니. 그러니까 제발 아프지 마. 한 명은 임신 초기에, 한 명은 장염에 멀쩡해 보이던 덩치 좋은 막내사원까지도 갑자기 콜록거리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여기서 누가 제일 스트레스 많이 받고 야근 제일 많이 하니…? 나야 나. 그럼 내가 제일 아파야 되는 거 아닐까?
그리고 막내인 신입사원. 다른 날은 자기 할 일 끝나면 집에 가거나 재택인 경우 집에서 그날 업무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마감이 끝나고 나면 추가 자료가 들어가기 어렵다. 시스템을 돌렸을 때 막판에 안 맞을 수도 있으니 네 일은 다 끝났어도 전체 프로세스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된다고 분명히 밀했었다. 그런데 내가 한 말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됐나 보다. 그래, 제대로 전달 못한 내 탓이다.
우여곡절 끝에 재고 마감은 잘 마무리되었다. 그래서 나머지 인원들은 퇴근했으나 나는 퇴근을 할 수 없었다. 중간연차 팀원이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이 있어서 얘를 덩그러니 놔두고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안 해본 업무면 모르겠으나 내가 하다 넘겨준 업무라 내가 업무를 안다는 죄로 (ㅠㅠ) 남아서 내 할 일을 하면서 곁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