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오는 회유책... 그러나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마지막 팀원이 도착해서 음료수를 시키고 똑같이 주간업무보고를 들었다. 혹시 평가 면담 때 아쉬웠던 점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했더니 이제 재택근무를 해도 되냐고 묻는다. 우리 회사도 코로나 때 재택근무가 생겼다가 없애려고 했으나 직원들 반발로 인해 주 1회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 바뀌었다.
하지만 이 팀원은 신입사원이다. 아직 업무가 익숙하지 않은 신입사원이 처음부터 재택근무를 한다는 건 무리라 당분간 출근하라고 했었다. 조만간 재택근무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얘기해야지,라고 생각은 했는데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제 입사한 지 6개월도 지났으니 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곧 인원 변동이 있을 건데 육아휴직 대체자가 곧 채용될 거고 내가 퇴사를 하게 될 거라고 했다.
앞서 두 명의 팀원에게 했던 이야기를 다시 주저리주저리 설명했다. 이야기를 전하는 내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인 건 셋 다 한꺼번에 싹 모아다 놓고 ‘얘들아~ 나 그만둔다~ 이유는 이러이러함’ 하고 설명하는 게 목도 안 아프고 훨씬 편하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반응이 각자 다르고 다른 사람들이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나한테 하고 싶을 수도 있으니 그걸 생각해서 번거로워도 한 명씩 따로 보기로 한 거였다.
그나마 신입한테는 제일 덜 미안한 게 (?) 제일 정이 안 들었다. 물론 이 소식을 듣고 놀라기는 신입이 제일 놀랐을지도 모르겠다. 본인을 뽑아준 팀장이 그만둔다고 하니까. 그런데 신입사원을 내가 뽑긴 했지만 직접 일을 가르치거나 크게 부딪힌 건 없다 보니 정이 제일 덜 들었다. 다른 팀원들은 그동안 동료로서 부딪치고 깨지면서 지난 몇 년 간 함께 했고 그러다 보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다. 아마 나보다 더 훌륭한 팀장이 와서 잘해주겠거니 싶어 별로 아쉽지 않다. 오히려 이 친구에게는 더 잘 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 팀원이 남자라 그런 건지 아님 나랑 쌓인 정이 덜해서 그런 건지 다른 팀원들보다는 덜 감정적이었다. 물론 힘든 상황이 벌어지겠지만 지난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 상황을 잘 이겨나가 보겠다고 했다.
다들 자기 직무에 고민이 있길래 혹시 너는 어떻냐고, 직접 회계일을 해보니 '아~ 다른 일 해야겠다'란 생각이 드니? 아니면 '일단 1,2년이라도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니?라고 물었다. 이 팀원이 또래보다 취업을 늦게 한 편이라 일단 지금 하는 일을 좀 더 해보겠다는 생각은 들었다고 했다.
그래, 늦고 어쩌고 그런 거 없다지만 상대적으로 늦은 건 늦은 거다. 새로운 일을 도모하더라도 여기다 발을 걸쳐놓고 하는 게 낫지. 난 계획은 있긴 하지만 좀 무모한 거고 (ㅋ_ㅋ) 그래서 잘 생각했다고, 다른 일을 하더라도 1년 이상 해본 사람과 3개월 하고 그만둔 사람은 다르게 볼 거라고 말해주었다.
물론 이것도 설명하기 나름이긴 하지만 본인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판단했다면 그렇게 밀고 나가면 된다. 본인의 스토리가 있다면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듣거나 평가하는 사람도 본인의 의견을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면담과 통보를 마친 뒤 신입사원에겐 바로 퇴근하라고 하고 나는 카페에 좀 더 앉아 있었다. 그리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본부장님께 보고드릴 게 있어서 잠시 방문했다. 업무적인 이야기를 하고 난 뒤, 오늘 팀원들과 면담해서 다 얘기했다고 말씀드렸다. 그래도 대표님께는 제가 직접 말씀드려야 될 거 같은데 어떡할까요? 했더니 얘기하는 건 좋은데 천천히 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하신다. 간단한 건 자기가 얘기해 놨다고. 예...? 이게 무슨 뜻이죠?
회유책인지 아니면 단순히 미안한 마음에서 나온 마음씀씀이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떻겠냐, 이렇게 해줄 테니 다시 생각해 보라고 여러 가지 안을 주신다. 하지만 내 귀엔 들어오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하고 거절의사를 밝히려는데 어어, 지금 당장 대답하지 말라시면서, 말하자마자 거절하면 상처받는다고. 그래서 생각하는 척이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이번 주말 끝나고 거절하려고 한다. 내가 지금 곱게곱게 말 돌려서 해서 그렇지 솔직한 나의 심정은 아-주 유치하지만 '그냥 일하기 싫어' 다.
여행 가는 두 달간은 휴직처리를 해줄 테니 다시 생각해 봐라, 이 분한테 얘기한 건 아니지만 전 팀장님께 워라밸 중시해서 주 35시간만 일하고 싶다고 제안한 돌아이니까 오전만 나와서 일을 해 보는 건 어떤지, 정 그러면 다시 팀원으로 내려가라던지와 같은 말들이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온다.
지금 저한테 주시는 제안들이 전혀 메리트가 없어요. 그런 제안은 다 꽁으로 받나요? 저도 혜택 받는 만큼 의무를 다해야겠죠. 안 할 거라고요. 하기 싫다고요. 나름의 계획도 있으니 더 이상 여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목표에 매달릴 거라고요. 그러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다고요.
확실하게 사직서를 내야 내가 더 이상 일할 의사가 없음을 이해하시려나.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시는 거 같은데, 난 유럽행 비행기를 끊어놓은 사람이에요. 하반기에는 계획한 자격증(들)도 준비해야 된다고요.
무거운 마음을 안고 방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