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받는 공감
거기서부터 에라 모르겠다, 퇴사 경위를 설명하면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팀원들을 까는 건 아니지만 팀장으로서 겪는 고충도 얘기했다. 그랬더니 알지 알지, 하면서 자기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낸다.
그래, 다 비슷하구나. 이쁨 받는 애들은 뭘 바라고 하는 게 아니라도 알아서 그런 행동을 하는 거고 열심히도 안 하면서 자기가 잘한 줄 알고 잇속만 차리고 돈만 바라는 직원은 다 보이는구나. 그런 것들은 잘하면 어련히 따라오는 건데.
게다가 이 팀장님은 나랑 나이도 비슷한데 지금 다니는 곳이 나처럼 세 번째 회사에다가 입사연도도 같았다. 그러면서 이 나이대는 이제 이직도 쉽지 않다 등과 같은 얘기도 하고….
재밌다, 재밌어. 진작 연락해서 떠들어재낄걸. 그렇다고 해서 나의 퇴사결정이 미루어지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마음만큼은 편하게 다녔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네.
밥 먹으면서 한참을 떠들고 일어나서 나와서 계속 아쉽다고 서로 먼저 연락할걸 그랬다고, 그러게 말이에요, 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녀는 어땠을지 몰라도 난 진심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에라도, 퇴사하기 전에라도 이렇게 연이 닿아서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진심이었다. 좀 더 친해지지 못한 건 아쉽지만 이게 어디야.
계열사라고 해도 회사마다 분위기가 다르다. 우리도 점심시간은 공식적으로 12시-1시지만 일이 있으면 좀 늦게 가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그쪽은 시간에 맞춰서 들어가야 하는 분위기인지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리고 아까부터 손에 들고 있었던 쇼핑백을 그녀에게 전달했다. 원래도 그녀에게 줄까 싶어서 지난 인센티브 트립갔을 때 좀 넉넉하게 사 온 과자선물인데 드디어 전달한 것이다.
둘이 떠든다고 해서 아무것도 해결되는 건 없었다.
지난 전체 모임 이후 단 둘이는 처음 만나는 거였지만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준 그녀야말로 내 마음을 세상에서 가장 잘 이해해 준 사람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회사일 이외에 다른 사실들은 나와 엄청 다른 사람일 수도 있지만 업무 상 처한 상황도, 나이도, 배경도 비슷하다는 사실만으로 서로 간의 거리감을 확 당길 수 있었다.
이제 퇴사가 일주일 코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제 마지막 출근일 당일에, 이메일 계정이 종료되기 전에 전사에 보낼 메일을 뭐라 쓸 것인가 하는 다소 쓸데없고 유치한 고민을 하는 중이다. 여태까지 퇴사하면서 한 번도 전사에 메일을 보낸 적이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해볼까 싶었다. 그래서 뭐라고 끄적여야 할지 고민 중인 예비 퇴사자 찌끄래기일 뿐.
아무튼 퇴사 전에 그녀와 만나서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그리고 앞으로는 기회가 있을 땐 나중으로 미뤄두지 말고 꼭 내가 먼저 누구에게든 연락해서 이야기를 털어놓기를 그러면 또 다른 식으로 변화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덧)
마지막 출근날, 따로 연락하겠다고 해놓고는 바빠서 놓쳤다. 며칠 지났지만 그래도 연락을 했고 다녀와서도 꼭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어떻게든 그녀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서 용기를 내보려고 한 거다.
물론 여행을 다녀와서 연락하려고 했다. 몇 번이고 메시지를 보내려고 했다. 내가 점심시간에 찾아가서 밥을 먹는 정도라면 회사 끝나고 만나는 것도 아니니 그녀도 특별히 싫어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무슨 이야길 나누지? 이제 회사 뒷담화(?) 이야기는 소재거리가 떨어졌고 계열사끼리 친한 것도 아니니 공통의 화제도 없다. 그래봤자 나는 이제 막 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떠들어재낄 거라고는 여행 이야기 밖에 없는데 과연 그녀가 그걸 듣고 싶어 할까? 이래서 회사를 떠나면 계속 인연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뜻이구나.
그래서 결국은 그녀에게 연락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