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나의 옛 상사가 불편한 지점 (2)

퇴사했는데 내 후임자를 만나야 하나...?

by 세니seny

모든 게 이런 식이었다. 결국 자기 지위를 이용한 방법.


그런데 나는 본부장님과 비슷한 성향이지만 이 방법을 쓰고 싶지 않은 게 이미 상대방이 이걸 불편하게 느낄 걸 알기 때문이다. 부드럽든 강하든 간에 이렇게 직급으로 찍어 누르는 방식은 싫은 거지. 쟤가 대충 무슨 마음일지 잘 알고 있는데. 겉으로는 '알겠습니다.' 해도 뒤돌아서 욕한다고. 그럼 결과가 좋겠냐고.


내가 어딘가 취직하지 않고 공부 중이라 비교적 쉽게 시간이 난다고 해도 나도 나름의 스케줄이 있다. 그리고 아무리 회사랑 가깝다고 해도 걸어가기는 힘든 거리여서 무조건 버스를 타야 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아닌 쌩 백수라 돈 나오는 구멍 1도 없어서 내 돈 내고 버스를 타야 한다.


이렇게 단순히 돈과 시간을 버리는 것뿐만 아니라 만나러 가기 전부터 이러쿵저러쿵 생각해야 되는 것도 짜증 난다. 머릿속에 물음표 백만 개와 함께 '도대체 내가 왜 그 자리에 가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마구 떠다닌다. 그리고 분명히 만난 자리에서 오간 대화들 중에 신경 쓰이는 거리가 생기거나 내가 대답 못해서 쪽팔린 상황이 생기는 등 물리적인 시간 외에 감정소모도 크다는 거다. 특히 나 같은 사람한테는.


만나는 날짜에 대한 선택지도 당장 내일 하고 내일모레, 이틀을 주셨다. 원래대로 히키 사이타마 콘서트에 당첨되었다면 공연 보러 일본으로 출국해서 지금 한국에 없을 텐데. 아아, 한국에 없고 싶다. 그래야 거절할 명분이 확실하니까. 아니면 어디 지방이라도 갔다고 뻥칠까. 알 게 뭐야? 그런데 그러면 또 8월쯤 다시 연락이 오겠지. 어떻게든 이 만남을 성사시켜야 하니까.


회사생활에서는 '내실' 말고 '보이는 것'도 꽤 중요하다.


이 만남에서 별다른 성과나 결과가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겉으로 보이는 것이 중요한 거다. 본인이 '이렇게 힘을 써서 옛 팀장과 새 팀장을 만나게 해 줬으니 앞으로 업무에 지장 없을 거예요'라는 걸 자신의 상관인 사장님에게 보여주는 효과도 분명 있으니까. 그런데 더 이상 이 회사 사람이 아닌 내가 왜 그 놀이에 놀아나야 하는 거냐고요.


어찌 됐건 저찌됐건 내가 휴직자도 아니고 뭣도 아닌데 왜 부르는 건지. 집 가깝다고 하니 만만하게 보고 그러는 건지. 회사 다닐 때나 회사랑 집이 가까워야 좋은 거지. 갑자기 회사랑 집이 멀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럴 거면 돈이나 달라고요. 이제 월말이 다가와서 카드값 및 자동이체 나갈 거 계산하고 있는데 내가 예산으로 잡았던 한 달 생활비 50만 원은 택도 없었다. 물론 백수 첫 달이라 사람들도 만나고 예상치 못한 이벤트가 있어서 돈을 좀 쓰긴 했지만. 문제는 앞으로도 월 50만 원은 한 달 생활비로 매우 빡빡하다. 예산을 좀 더 잡았어야 했나. 돈 한 푼이 아쉬운 마당에 왜 자꾸 사람 오라 가라 하냐 고요.


내가 퇴사하고 나올 때 그만큼 인수인계 해줬으면 됐지, 그 뒤로 사람 나간 거까지 내 책임이냐고요. 그건 알아서 하셔야지들. (하지만 내 책임이 아예 없다고는 부정을 못하겠음...) 그리고 새로 온 사람은 새로운 상황에 맞게, 자기가 찾아보고 할 일이지. 찾아보면 다 나온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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