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도시 그리스에서 데이터가 안 터지는 현대인은 웁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지하철은 잘 타고 가서 투어 장소 도착해서 일단 투어에 합류했다. 핸드폰을 켜보니 아크로폴리스 공공 와이파이가 있길래 그걸 이용해서 유심칩을 산 곳에 문의를 남기니 이런저런 걸 시도해 보라고 알려줬지만 그중 단 한 개도 먹히지 않았다. 2천 년도 더 넘은 유적지에 경외를 표하고 설명도 열심히 들어야 하는 마당에 유심침 안 되는 현대인은 그저 가이드님의 설명에 집중 못하고 핸드폰에 매달려 있었다. 어리석은 현대인 같으니라고.
어느새 오전 반나절의 투어는 끝.
가이드님이 알려준 통신사 가게에 가봤지만 이곳은 그리스 자국 통신사라서 그리스 밖으로 나가면 거의 무용지물인 유심만 팔고 있었다. 아까 아침에 지도를 보다 근처에 보다폰 매장이 있는 거 같아서 그쪽으로 가보겠다고 하고 나왔다. 다행히 보다폰 매장에는 유럽 전역을 커버할 수 있는 유심칩을 팔고 있었다. 게다가 매장에서 갈아 끼워주고 되는지 안되는지 까지 확인하고 나니 완벽하다. 이러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점심을 먹은 다음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보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보다폰 매장 근처에서 밥을 먹을까 하다 어차피 다음 일정이 박물관이라 결론적으로는 박물관에 가야 하니 아예 박물관 쪽으로 가서 먹기로 했다. 전에 구글맵으로 봐둔 식당이 있어서 바로 들어갔다. 메뉴판보고 샐러드를 하나 주문하고 그리스식 고기 꼬치구이인 수블라키를 주문하려니 고기를 골라야 해서 평소 잘 안 먹는 양고기로 주문했다.
https://maps.app.goo.gl/NDYKMYqDhXRKoCqX7?g_st=ipc
내가 들어간 식당은 아크로폴리스 들어가기 바로 전에 있는 여러 식당들 중 하나였다. 그러니까 관광지 바로 앞에 있는 식당이라는 뜻. 이렇게 관광지 바로 앞에 있는 식당에 우리는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다. 눈탱이나 안 맞으면 다행이게. 그래서 눈이 번쩍 뜨일 맛은 아니었지만 적당히 맛있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관광지 앞에 입지가 좋은 식당인 경우 친절하지 않은 경우도 상당히 많은데 물론 식당 영업 때문이겠지만 웨이터 중 제일 높아 보이는(?) 아저씨가 그래도 친절했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철저히 비즈니스적이란 걸 알지만 그래도 아는 이 하나 없는 이곳에서 지금 유일하게 나와 소통하고 있는 건 이 대빵 웨이터 아저씨뿐이다. 그리고 여행 시작부터 유심칩이 안 되는 큰 문제를 해결하고 난 뒤라 긴장이 풀려서 그런 걸까? 기분이 좋았다.
차양막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도 햇살이 뜨거웠지만 이상하게 앉아있는 자리에 불어오는 바람은 참 선선했다. 식당 건너편에 있는 건물에는 우리가 흔히 '그리스'라고 하면 떠올릴 법한 진한 자줏빛 꽃이 덩굴처럼 벽을 따라 쭉 늘어져 있었다. 그래, 이거면 됐지 뭘 더 바래. 이 풍경이, 이 시간이 계속되지 않을 것임을 알지만 이 바람과 풍경이 그대로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참 별것도 아닌 그저 이거 하나 보려고 서울에서 그 고생을 했구나 싶었다.
그대로 식당에 죽치고 앉아 있고 싶었지만 식사를 마쳤으니 일어나야 했다. 계산을 하고 나와 바로 앞 박물관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