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D 체험 제대로, 해변가에서 요가를 하다
새벽의 해변가에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마 밤부터 놀았을 젊은이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 원래 바닷가는 그런 곳이었지. 그러고 보면 아침의 바닷가를 보기는 상당히 오랜만이다. 코로나 때 부산 광안리에서 숙박하던 날, 진짜 바다가 코앞이라 새벽에 나갔다 왔던 기억이 났다. 그때와 조금은 비슷한 느낌이다.
쌀쌀하고 몸도 뻣뻣한데 요가는 잘할 수 있을까. 원래 요가가 끝나고 바닷가에서 짧게 수영을 한다고 했는데 수영은 추워서 못할 거 같다. 오늘 모임의 주최자가 구글맵으로 찍어준 모임장소가 저 멀리 보이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 최대한 모래사장을 피해서 보도블록이 있는 길로 걸어본다.
막상 모임장소에 갔더니 요가하러 온 사람들이 아니라 일출 보러 온 사람들이 있었다. 여기가 일출 포인트일 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다. 이미 요가매트를 깔고 있는 두 명이 있길래 물어보니 호스트는 좀 이따가 올 거란다. 구름에 가려서 일출은 잘 안 보이겠지만. 쨌든 기다렸다. 한참 기다리니 호스트도 오고 참가자도 하나둘 도착한다. 나같이 일회성으로 온 사람들도 있고 정기적으로 오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영어로 하는 거지만 한국어로 설명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자, 숨 들이쉬고 마시고- 릴랙스하구요- 평화가 어쩌고저쩌고… 바람이 좀 쌀쌀하긴 했지만 눈을 감으니 모든 게 4D로 체험되면서 평화로워지는 기분. 눈을 뜨면 오로지 눈앞의 수평선만 보였다.
영어를 이해하지 못한 설명은 보면서 눈치껏 따라 했다. 도저히 못 하겠는 건 이전 동작을 하면서 기다렸다. 그래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내가 앉은 방향에선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해가 보였는데 어느새 둥근 해가 떠있었다. 평화롭다. 참, 아까 해변가로 오는 길에는 달을 봤다. 보름달에 약간 못 미쳤길래 음력 날짜를 보니 보름이 막 지난 시기였다.
일출 보러 온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요가를 하고 있는 우리가 신기해서 그런지 사진을 찍었다. 심지어 이걸 지켜보던 어떤 관광객은 갑자기 나랑 내 오른편 남자 사이에 자기 옷을 깔더니 즉석에서 참여하려고 했다. 주최자가 뭐라 뭐라 해서 일단 내보냈는데 기어코 요가가 끝나고 있는 커피 타임에 따라와 참석했다.
초반에 웃겼던 에피소드.
요가할 때 트는 잔잔한 음악이 나오나 했는데 갑자기 웬 인도풍의 신나는 음악이 나왔다. 뚜루뚜루 뚜루뚜루 따라라. 요가의 발상지가 인도이긴 하니까 호스트가 의도한 건가 싶었다.
그런데 동작을 하면서 다리 사이로 보니 웬 스피커(?)를 싣고 온 자전거 부대가 자기들이 들을 음악을 스피커에 대놓고 그냥 틀어놓은 거였다. 그게 자연스럽게 우리가 요가하는데 배경음악으로 깔렸던 거다. 푸하하. 센스 있는 회원들이 리듬에 맞춰 궁둥이를 씰룩씰룩해 줘서 한바탕 웃었고 그들도 곧 음악을 끄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