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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5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순례자의 길을 걸어보다

단 4km지만 걷긴 걸었다

by 세니seny

오늘 날씨가 엄청 좋다. 더울지도 모르겠는 데다 어제 많이 걸었는지 발이 피로한 느낌이다. 그래서 어젯밤엔 발이 저린 느낌도 들어서 오늘은 얌전히(?) 4킬로만 걷기로 했다.


우선 기차를 타고 걷기로 한 목적지까지 이동해야 한다. 기차로 환승을 두 번해야 했는데 이 두 번째 탄 기차가 중간에 출발을 안 하고 서있는 바람에 10분 정도 연착돼서 그다음 열차를 놓쳤다. 기차로는 한 정거장, 고작 3분 거리지만 실제 거리는 4~5킬로 정도 된다. 그 정도면 한 시간 걸리니 한 시간 더 걸을까? 도 생각해 봤지만 욕심부리지 않기로 했다.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 포기할 것을 포기하는 건 장기 여행자의 중요한 덕목이다. 다행히 10분 뒤에 다음 열차가 와서 목적지인 알한드라(alhandra)에 내렸다.


1111.png 타구스 강을 따라 알한드라에서 빌라 프랑카 드 시라까지 약 4km 구간을 걸었다. (@리스본, 2024.06)


기차역에서 순례자길로 들어가는 경로를 찾아야 해서 순례자들이 사용하는 '부엔 까미노' 앱을 켜고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길 시작점이 바로 기차역 옆이었다. 다만 기찻길을 넘어가야 해서 계단을 올라 다리를 건너야 했다. 역 주위에 굉장히 큰 공장이 하나 있었는데 무슨 공장인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1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시멘트 공장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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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한드라 역과 시멘트 공장. 그리고 순례길 표지를 찾았다. (@알한드라, 2024.06)


공장을 계속 끼고 돌아서 마을로(?) 들어간 뒤 테주 강변으로 나오고 강변을 계속 따라 걷게 된다. 우와- 강이 보여. 윤슬이 반짝거리는 강이. 내가 이걸 보려고 왔구나.


원래 포르투에서 순례길을 걸으려고 했던 길도 바닷가길과 내륙길 두 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나는 바닷가길을 희망했었다. 지금은 비록 내가 생각했던 바닷가를 따라 걷는 건 아니지만 대서양과 연결되어 있는, 바다보다 잔잔하고 폭이 좁은 강의 물줄기를 따라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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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주 강변을 따라 걷는 길. 배도 있다. (@리스본, 2024.06)


오늘의 이 경험이 언젠가 먼 미래의 진짜 순례길을 걷는 경험으로 이어진다면 참 멋질 것 같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다음 여행의 씨앗을 뿌렸다.


오늘 날씨 최고다!!!


햇볕은 살짝살짝 따가워도 그만큼 바람이 불어와줘서 하나도 덥지 않다. 강의 물결도 수많은 보석이 박힌 듯 빛나고 있고 하늘 또한 내가 좋아하는 옅은 파란색이다. 그야말로 하늘의 색.


음악 듣다가 사진 찍을만한 곳이 나오면 잠시 멈춰 서고 다시 걷고의 반복. 오늘이 평일이라 그런지 운동하고 산책하러 나온 찐 로컬 동네 주민들만 보인다. 원래대로라면 주말인 토요일에 올 뻔했는데 그러지 않기를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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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이름 모를 분홍색 꽃이 피었다. 걷기 트랙만 본다면 그냥 강변 걷기이건만. (@리스본, 2024.06)


오늘은 페퍼톤스의 2집을 들으며 걸었다. 우연히 고른 이 노래들이 마치 호카곶에서 그랬던 것처럼 곳곳에서 지금의 나의 상황과 맞는 가사를 발견했다. 마치 가사들이 지금의 나를 위해 쓰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balance!>, 페퍼톤스
요란하고 분주한 이 길가에서 눈을 뜨는 순간
나른한 바람이 불어와 귓가에 속삭이네
기대해 오늘 하루는 너의 삶에
단 한 번뿐인 멋진 날이 될 거야!

눈부시게 빛나는 완벽의 밸런스
모든 것이 멈춘 이 순간
반짝이는 햇살 속 기적의 밸런스
문득 어떤 예감도 없이

<balance>, 페퍼톤스
<해안도로>, 페퍼톤스
두근거리는 한낮의 설레임
뜨겁게 벅차오르는 가슴을 모두 안고 달려가
저 커브를 지나면 귓가에 익은 파도 소리 들릴 것 같아

<해안도로>, 페퍼톤스
<diamonds>, 페퍼톤스
Breezy, windy, sunshine tenderly today
Step out to the road and you will recover the beauty, all the spice of your life
Look up to the sky and you will discover infinity, is way up there so definitely!!

<diamonds>, 페퍼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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