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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 두 달 여행의 마지막 날, 또다시 리스본 여행

MP3에서 랜덤으로 흘러나온 노래로 여행을 마무리하다

by 세니seny

오전만 해도 먹구름이 끼어 있었는데 어느새 걷히고 아주 맑은 날씨가 되었다. 기분이 좋다.


버스는 생각보다 오래 기다리지 않고 탔다. 아아를 마셨음에도 오늘 새벽에 일찍 깬 데다 술까지 한 잔 했더니 졸려서 반쯤은 꾸벅꾸벅한 상태로 시내까지 나왔다. 어느새 창문 밖에 나타난 코메르시우 광장은 파란 하늘을 담고 있었다. 비눗방울 아저씨가 와서 분위기가 예술이었는데 잠이 덜 깨서 멍 때리다 내릴 생각을 못하고 지나쳤다. 원래대로 다음 정류장에서 하차.


짜잔. 날씨 맑은 날의 리스본. (@리스본, 2024.06)


알고 보니 여기가 그 뉴진스 뮤비 찍은 그 주제 사라마구 박물관 앞이었다. 여길 처음 온 날은 좀 흐렸었는데 오늘은 날씨가 아주 맑아서 뮤비에서 본 색감이 나온다. 이대로 숙소에 돌아가기엔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조금만 더 산책하고 가야지.


오늘 여행은 핸드폰 데이터가 안 되다 보니 제약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실시간으로 마음에 드는,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음악을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준비하다 혹시 몰라 챙겼던 MP3를 여행 마지막 날에 알차게 써먹었다.


이런 풍경을 보며 음악을 들었다. 리스본에서의 마지막 시간. (@리스본, 2024.06)


어떤 노래를 들을까 망설이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딱인 러브홀릭의 <run>을 발견했다. 이어지는 오늘 오후의 플레이리스트는 완벽했다.


<좋다>, 데이브레이크
멋진 말들로 꾸며댈수록
나의 마음을 가릴 것 같아
빼고 또 빼고 줄여갈수록
보석과도 같이 남아있는 이 한마디

좋다
사랑해서 좋다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 기분

<좋다>, 데이브레이크
<run>, 러브홀릭
Run
고민할 것 없어
달려 우주까지
Feel
너의 특별한 색깔

Hide
버리지 못했던
어설픈 욕심들
Keep
너의 신비한 미소

느껴지니 새로
보게 될 너의 세상
보이잖니 너의
우뚝 선 모습 어때..?
이제 너의 두발은
구름을 밟는다

And run
never mind
And run
And you run

<run>, 러브홀릭
<bon voyage>, 토이 (feat.조원선)
예쁜 수첩과 펜을 준비한다
볕이 잘 드는 카페를 찾아서
가져갈 책과 음악을 적는다
빼놓지 말아야 할 편한 플랫 슈즈

너와 함께 지도에 색칠한다
두근두근 내 맘도 무지개 빛
보사노바 리듬 우릴 감싼다
손에 쥔 티켓과 행복한 상상

(중략)

언젠가 뒤돌아보면
제일 행복한 순간 지금일 거야
그대여 저길 봐요 나를 봐요
하나 둘 셋

<bon voyage>, 토이 (feat. 조원선)


노래를 더 듣고 싶지만 돌아가야 한다. 아쉬운 마음으로 체크아웃 후 맡겨둔 짐을 찾아 공항으로 가기 위해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간다. 지금은 짐이 없으니 가볍지만 이따 배낭과 캐리어를 이고 지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릴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할 만하다.


숙소에서 짐을 찾고 나오기 전, 와이파이로 다시 한번 공항 가는 길을 파악한다. 좋았어. 항상 걸었던 길 대신 어제 쌀국수 먹으러 갔던 비교적 평평한 길로 가보기로 했다. 큰 대로변 길은 경사가 심해서 짐을 들고 이동하기가 불편했는데 대로변 안쪽에 나 있는 길은 똑같은 방향으로 가는 건데도 평탄했다.


그나마 평평한 길에서 짐을 끄니 좀 낫다. 지하철역에 금방 도착해서 낑낑거리며 가방을 들고 내리고 이제 마지막이 될 리스본 지하철을 탔다. 데이터가 먹통이라 유튜브 같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쓰는 건 못하지만 핸드폰에 미리 다운로드를 하여둔 전자책은 볼 수 있다. 할 것도 없으니 읽다 만 페소아 시집이나 읽어야지 했는데 왜 이렇게 잘 읽힌담.


관광 일정은 끝났지만 아직 이 여행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으니 이 모든 과정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다 읽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페소아의 시를 전자책으로 읽으며 공항에 도착했다.


4년 반 만에 온 유럽대륙에서 꽉 채워 두 달을 보내고 이곳을 떠난다. 다음에 언제 와서 남은 동전을 쓸 수 있을까?


하지만 인천공항에 도착하기 전까지, 이 여정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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