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7 아테네에서 어슬렁거리기

오늘의 순간들 : 한국인 동행자들과 수니온 곳으로 드라이브

by 세니seny

자유일정이라 할 일도 없고 + 혼자 다니기 쓸쓸해서 유랑에서 구한 모임에 끼기로 했다.


누가 봐도 한국인 여행자인 사람들을 만나 폭풍수다를 떨었다. 유럽 여행은 처음인데 카톡방도 만들고 쭈뼛거리고 있는 사람과 여행 경험이 풍부해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 또 주재원으로 유럽의 어느 다른 나라에 있어서 그리스에 놀러 온 사람까지. 오랜만에(?) 한국 사람을 보니 이상하면서도 영어로 말할 때와 달리 생각하지 않고 말해도 되니까 좋았다.


오늘 지금 가는 노을로 유명한 수니온 곶이다. 들어는 봤는데 워낙 멀다고 해서 그럼 안 가야지 했는데 일몰 보러 간다는 사람들이 있으니 끌려 안 끌려…? 그리스에 거의 1주일을 머무르는데 섬도 못 가니까 이거라도 가자며 막판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배차간격이 긴 버스를 잡아 타고 해안선을 따라 곶을 향해 달린다. 바다는 그야말로 미친 파랑이다. 한낮에 왔으면 더 파래서 눈도 못 뜰 정도였으리라.


낮에 왔다면 동행 구할 생각은 하지 않고 여전히 혼자 왔을 테지만 한낮의 더위가 사그라든 뒤, 모르는 사람들일지언정 이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걸 택했다. 덕분에 일정에도 없던 이곳에 합류하게 됐다.


버스로 수니온 곶까지 달리는 길. (2024.04)


오늘의 첫 번째 (기억에 남는) 순간은 아까 이름 모를 언덕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며 멍 때린 것이었고 두 번째 순간은 오후에 카페에서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순간은 바다를 보며 달리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네 번째 순간은 아마도 일몰이 될 거다. 그것 말고도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더 남아있다면 좋겠다. 산길도로 드라이브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BGM은 서울에서 퇴근길에 자주 들었던 가수 죠지가 부른 <Drive>였다.


버스는 1시간 20분가량 걸려서 수니온 곶에 도착했다. 돌아가는 버스 시간을 감안해야 돼서 생각보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포세이돈 신전에서 일몰 보고 사진 찍는 게 포인트인데 이러다간 버스 타기 전까지 해가 안 지겠다.


아직도 해가 짱짱한 저녁 7시의 수니온 곶. 노을은 보지 못했다. (2024.04)


일몰도 일몰인데 그냥 이곳에 여유롭게 머무는 것 자체도 허락이 안되니 아쉬웠다. 이것이 대중교통 여행자의 숙명. 동행자들이 있는 덕에 어색하지만 사진에 찍히고 나도 누군가를 찍어준다. 그리고 버스 시간에 맞춰 헐레벌떡 내려온다.


일몰은 못 봐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드라이브 온 길이 좋았으니 용서하기로 한다. 그리고 돌아오는 버스에선 프랑스어를 쓰는 두 소녀가 내 뒤에 앉았으니 열심히 프랑스어 듣기 연습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6 아테네에서 어슬렁거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