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로 끝나는 직업이면 막무가내로 계약도 안 한 집에 찾아와도 되는 건가
그리고 부동산 중개인한테 문자를 보냈더니 바로 전화가 왔다.
미안하다면서 평소에 혼자 오는 남자는 집을 안 잘 보여주는데 그 남자 직업이 좋은 편이라면서 믿음직하니까 혼자 왔어도 집을 보여준 거라고 했다. 정확히 무슨 직업인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사'로 끝나는 직업이라는 듯한 뉘앙스였다. 그러면서 그 사람 누나가 이 근처에 살아서 잘 아는데 직업이 괜찮은데 어쩌고 저쩌고. 그러면서 그쪽이랑 다시 통화해 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그 남자 직업이 좋다는 얘기는 여기서 왜 하는 거죠, 대체? 어쩌라는 거지?
이 집에 이사 올 때부터 부동산 중개인 아줌마는 마음에 안 들었다. 모든 부동산 중개인 실장님들을 비하하고 싶지 않으나 이 분이 일을 너무 못해서 격하하고 싶은 마음에 '아줌마'라는 단어를 쓴다. 세입자인 나한테 마음에 안 들게 뭐 있겠느냐만 그 짧은 순간에도 집주인이 하지도 않은 말 하면서 천만 원 깎아준다는 둥 개소리 시전. 사람이 너무 가볍기 짝이 없었다. 아무튼 이 상황에서도 눈치 없이 그 남자가 직업이 좋아서 집을 보여줬네, 와 같은 이상한 소리를 하며 빠져나가더라.
나한테 그 사람 직업이 좋다는 둥 그런 얘길 왜 해? 막말로 '-사'자 붙은 자격증 봤어? 봤냐고. 말로는 누가 못해. 그래도 주소지는 강남구에 있는 아파트니까 혹시 집 보러 온 사람이 본인이 꿀릴까 봐 거짓말하는지 누가 아냐고. 아주머니 딸이라고 하면 이런 상황에서 문 열어주라고 하겠어요? 당장 신고감이지.
어제는 일한다던 하지만 오늘은 휴무인 여친(혹은 와이프)랑 동네를 같이 보러 왔겠지. 어제 혼자 집을 보고 가서 좀 아쉬웠으니 집 보여달라고 할까? 여기가 구축 아파트라 현관을 아무나 드나들 수 있으니 일단 현관은 쉽게 들어오고 원하면 바로 문 앞까지 갈 수 있다. 계약금도 걸지 않은 남의 집에 당당하게 찾아와 벨을 누르고 집을 보여달라는 건 대체 무슨 심보지?
다시 중개인 아줌마한테 전화가 와서는 미안하다고, 자기가 전화해 보니 혼자 온 게 아니라 여자친구랑 온건 맞는 거 같다고 한다. 그러면서 혹시 오늘 집 볼 수는 없죠? 이러는 거 아닌가. 내가 미쳤니?
저렇게 생겨먹은 또라이 새끼하고는 계약도, 상종도 하지 말라고 어깃장 놓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내가 집주인이 아니니 그런 말 할 자격은 없다. 이건 결국 집주인과 부동산 중개인 그리고 새로운 세입자 간의 계약이니까. 그 사이에 낀 나는 아무런 힘이 없다. 당연히 안된다고 하고 정 집을 다시 보고 싶으면 다음에 시간 잡아서 부동산하고 같이 오라고 했다.
아무튼 엄마도 열받아가지고 당장 부동산 전화번호 내놓으라고 해서 엄마가 따로 연락을 했다. 엄마가 들은 바로는 무슨 '-사'로 끝나는 직업을 가졌다던데 그러면 이런 상황을 만드는 건 더 개똥멍청이 아니야?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도대체 무슨 -사야?
얼마나 대단한 직업을 가졌길래
부동산도 안 끼고
멋대로 집을 보여달라 마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