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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위기감지

우울모드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by 세니seny

아르바이트 근무를 마치고 퇴근해 집에 왔다. 오늘은 저녁에 수영도 안 가니까 저녁 빨리 먹고 프랑스어 공부해야지, 했는데... 안 되겠다. 우울모드 진입 직전이다. 뭘 하고자 하는 의욕이 싹 사라졌다.


양배추전을 해서 밥 조금 먹고 안주 삼아 맛은 없지만 버리긴 아깝고 취하긴 해야겠으니 와인을 마신다. 취기가 오르고 왓챠는 해지했기에 홍김동전 풀버전을 볼 순 없어서 유튜브에 쪼개져서 올라온 홍김동전을 보며 깔깔대고 웃는다.


술을 먹으니 조금 가벼워졌다. 그런데 술이 깰 때쯤 되니까 기분이 별로다. 이래서 술 안 먹어야지, 하는 거다. 오늘 하루만 버리자. 이런 날마저 공부를 하겠답시고 머리에 꾸역꾸역 무언갈 집어넣는다면 나는 미쳐버릴 거야. 그래, 좋아. 뭐가 불안한지 생각해 보자. 원인을 파헤쳐보는 거야.


비록 알바로 근무하긴 해도 오늘은 월급이 들어오는 날이었다. 그럼 응당 기뻐야 하는데 이상하게 기쁘지 않았다. 통장에 찍힌 돈이 그저 숫자로만 보였다. 왜 그런지 알 거 같았다. 전에는 월급 받으면 쓸데 쓰더라도 나머지를 남겨서 투자를 할 수 있었다. 여윳돈으로 적금을 부어왔고 최근엔 주식도 샀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건 꿈도 못 꾼다. 비상금 펑크나 안 나면 다행이게. 지금 아르바이트로 버는 건 비상금(생활비) 충당용이다. 한 달이 아니 열흘이 아니 하루가 간당간당하다. 불안하다.


작년에 그다지 불안하지 않았던 건 미리 떼어둔 6개월치의 생활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자격증 공부도 해야 했으며 10년간 근속한 나에게 주는 휴식이란 의미도 있었으니까 크게 불안하지 않았다. 그리고 연말이나 내년 초쯤 되면 으레 자리를 잡겠거니 적어도 서서히 자리를 잡아나가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과 ...
너무 달라지고 있다.


이번에 면접에 붙었어도 2월 말이나 3월 초부터 출근하는 건데 이것들이 기약이 없어져버렸다. 이다음 기회는 적어도 3월이나 그 이후가 되겠지. 또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현실과 타협해서 아주 조금이라도 내가 생각한 것과 접점이 있는 매수표원이라도 하겠다고 결정한 건데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속 한편에 매수표 업무를 살짝 무시하듯이 생각하기도 했다. 아니, 그렇잖아? 전부 기계로 대체되는 마당에 인원수 확인하고 표 끊어주는 게 뭐가 그리 어려워.


지금보다는 사회성이 떨어지는 대학생 때, 대학생들의 로망인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었다.


CGV나 메가박스 같은 체인점은 아니었지만 당시엔 나름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있는 극장이었다. 나는 매표 업무에 배정되었는데 사람들이 이 자리 달라, 저 자리 달라 우기고 지금 생각하면 별거 아닌 말들에도 상처를 받아 1주일 만에 알바를 그만둔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보다 나이를 먹으며 그때보다 사람들을 잘 대할 수 있게 되었고 매수표 업무는 그것보단 쉬워 보였다.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한 게 면접에서 다 드러난 걸까? 어쨌거나 지금은 에어비앤비 체험상품도 언제 승인 날지 기약이 없고 채용공고도 언제 뜰지 모르니 불안한 거다.


생활비 6개월 치도 넉넉하게 쓴다고 했을 때 이야기다. 지금은 아끼고 아껴서 2월까지는 자금이 있다. 그런데 3월부터는 없다. 진.짜.로. 그래서 큰일이다. 게다가 이사를 앞두고 있는데 전세로 갈 게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걱정이 심화되고 있다. 그래서 기분이 좋지 않다. 자,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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