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만의 팬지

너와 나의 god

by 생활작가

음악에는 세월이 묻어있다.

나를 한 순간에 타임머신을 태우는 두 가지가 있다.

#음악 그리고 #향기

지오디를 좋아했다.

하루에 6시간 이상 안 잤던 고3에 가장 기억나는 게 있다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오디 콘서트를 갔던 일

애수를 들으면 미칠 듯이 졸려서 CD 플레이어를 켜고 시험공부를 했던 내가 거기에 있었다.

촛불하나를 들으면 새벽 4시 눈을 부릅뜨고 수능준비를 하던 나도 거기에 있다.

거짓말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팬들이 외치는 소리를 따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수능시험장에 가는 그 순간에도 지오디 노래를 들었다.


테이프가 늘어지게 1집을 듣고, 육아일기를 비디오테이프에 녹화해 돌려봤다.

CD플레이어는 안 늘어나서 너무나 좋다며 애지중지 모은 용돈으로 음반가게에 달려가 지오디 시디를 샀었던 시절이 생각난다.

그 이후로 오랫동안 무언가를 그리도 간절히 열렬히 좋아해 본 적은 없었다.

IMG_0824.jpg 나의 영원하고도 유일한 아이돌




지오디가 컴백한대. 윤계상도 같이 한대.

2014년 나는 너무 바빴다. 부서도 옮기고 결혼도 해야 했다.

언제 적 지오디냐!

함께 팬질?을 했던 고등학교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는 오랫동안 그들도 노래도 잊었다.


지오디 20주년 콘서트 한대. 갈래?

친구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그때 첫째는 3살쯤이었나. 나는 애를 낳고 퉁퉁 부은 몸이 아직 돌아올 줄 몰랐고

저질이었던 체력 또한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근데 갑자기 너무 가고 싶었다.

남편도 집에서 꼼짝 안 하는 내가 안 됐었는지, 혼자서 애 볼 수 있다고 다녀오라고 한다.

그래 가보자.

운전실력도 초보 of 초보지만 그래도 한번 가보자하며 일주일 전 티켓을 끊었다.

가는 길에 친구에게, 우리 하늘색 풍선이라도 사가야 되는 거 아냐?

물었다가 석기시대에서 왔냐며

요즘은 하풍봉이라고 전자식으로 불 들어오는 거 써. 풍선 들고 가면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걸?

핀잔을 들었다.

IMG_0952.JPG

콘서트를 보면서 잠들어있던 온몸의 세포가 깨어난 기분이었다.

애 낳느라 죽었던 세포까지 살아나는... 기분?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고 뛰는 나에게 내가 놀랐다.

나 아직 이만큼 뛸 수 있고 소리 지르고 놀 수 있구나!

고등학생의 내가 거기에, 내 안에 있었다.


꾸준히 지오디를 좋아했던 (결혼은 안 한) 내 친구를 통해

그 간의 지오디의 서사를 받아, 영상을 보고, 음악을 들으며 나는 다시 팬지가 되었다.


그들 안에는 서사가 있다.

우리가 자라온 세월도 있다.

뭐랄까 희로애락이 다 담겨 있는 소설 같았다.

거기에 나의 과거가 가득히 들어있는 주옥같은 노래들도 있다.


얼마 전 지오디의 25주년 콘서트를 했다.

그러면서 팬지(:팬지오디)를 모집했다.

사실 그 시절 돈도 없었고 팬클럽까지는 용기도 안 났기에 팬지가 된 적이 없었다.

단번에 팬지에 가입하고 나서 그 사실만으로도 며칠은 신이 났다.

오빠들도 늙었고 나도 늙었고 우리도 늙었다.

그래도 우린 열정이 있고 실력도 있다.

함께 한 시절을 보낸 과거도 있다.

노래를 조금 놓쳐도 춤을 조금 못 춰도

사실 그대로 서서 숨만 쉰 대도 디너쇼에 갈 의지가 있는 팬지들이 아직 수만 명이다.


엄마 꼭 가야 돼?

25주년 콘서트에 가려는데 8살 딸아이가 묻는다.

응 꼭 가야 돼. 내년에 하면 또 갈 거고 앞으로 계속 갈 거야.

엄마 못 가게 하면 나중에 너 아이돌 콘서트 티켓팅 같은 건 없어.


그리고 너도 조금 더 크면 꼭 누군가의 팬이 돼

대신 그것도 오래도록 보고 네 마음에 딱 맞는 실력도 보고 인성도 보고 다 봐야 해

그러면 엄마 옆에서 같이 응원해 줄게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고, 응원하고, 애썼던 건 사는데 정말 중요해.


세상과 육아에 지친 나를 20년 뒤의 지오디가 위로해 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지오디는 현역 아이돌.

그리고 우리도 여전히 현역 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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