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묻는다. 넌 무엇이 되고 싶니?
열다섯 살 이후로 끊임없이 생각했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 걸까.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스무 살에도 서른 살에도 직장을 구한 뒤에도
그리고 지금.
마흔을 넘은 지금에도 난 가끔 세수를 하고 난 뒤의 거울 속에 나에게 묻는다.
넌 무엇이 되고 싶은 거냐고.
한 번도 무엇이 되고 싶었던 거냐고 물은 적은 없다.
그리고 한 번도 제대로 대답한 적도 없는 것 같다.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직장인이 되었고
아내가 되었고 엄마가 되었다.
어쩌다 보니 된 것 말고 나의 간절한 열망으로 나는 무엇이 되고 싶었다.
세상은 계속 나에게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책을 열면 넌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분명한 꿈과 희망을 갖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
온 세상이 날 돕는다고도 했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서 결정해야 했다.
열아홉, 나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
열심히 기사를 쓰고 내 생각을 그대로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 생각이 있긴 했었나? 내 생각과 주장을 조리 있게 말하는 방법을 난 학교에서 배운 적은 있었던가?
그전에 나는 기자가 될 만한 성적과 배경과 열정과 의지를 갖고 있는가?
그렇게 나는 첫 번째 꿈을 접었다.
은행원이 되고 싶었다.
가난했고 돈을 잘 벌고 싶었다.
다행히 난 숫자에 대한 감각도 있었고 전공도 무관하지 않았다.
열심히 자격증을 따고 토익을 따고 준비를 하면 은행원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시중의 모든 은행의 서류를 넣었고 그중에 열 곳 정도는 서류를 통과해 면접을 보았다.
그중의 다섯 곳 정도는 최종면접도 보았다.
마지막, 정말 갈 수 있을 줄 알았던 은행의 최종합격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붙고 내가 떨어졌던 날
난 은행원의 꿈도 접었다.
은행원의 꿈을 접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가 되고 싶었는데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같은 건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무하마드 유누스의 사상 같은 이야기가 웬 말이란 말인가
가만히 생각했고 그런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은 공공기관뿐이라는 결론에 다 달았다.
나는 또다시 공부했다.
수 없이 떨어졌지만 그 비슷한 직업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꿈을 이룬 걸까?
아니다.
이것이 내 꿈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달았을 뿐이다.
수없이 고민했던 나의 n번째 꿈도 사실은 내가 진정원 하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되고 싶어 된 것은 아니었으나
'엄마'라는 타이틀은 꽤나 행복하다.
꿈도 적성도 아니었지만 엄마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세상에 태어난 이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인 것처럼 보인다.
"내가 사람을 낳았어!" 이런 기분이랄까?
그러나 엄마가 꿈일 수는 없다.
나는 사람을 낳았고,
이 두 명의 인격체가 훌륭하게 커서 세상을 향해 더없이 가치 있는 일을 해준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나의 업적이나 나의 뿌듯함의 전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늘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에게 묻는다.
넌 도대체 무엇이 될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