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려다 미끄러지는 사람들
어릴 땐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대학 갈 수 있어.”
“좋은 직장 들어가면 집도 사고, 차도 사고.”
“너도 언젠가는 잘살 수 있어.”
그 말들은 마치
세상 어딘가에 기회의 사다리가 놓여 있다는 믿음을 심어줬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사다리는 점점 미끄러워졌다.
아니,
아예 없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20대 후반,
직장을 잡고, 돈을 모으고,
주말엔 모델하우스를 구경했다.
“3년만 더 모으면 계약금 되겠다.”
“지금은 못 사지만, 언젠가는…”
하지만 그 '언젠가'가 오기도 전에
집값은 다시 두 배가 되었다.
지금은 한숨만 나온다.
살 수 있었던 순간은 지났고,
살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사라졌다.
청년들은 더 이상 꿈꾸지 않는다.
아니, 꿈꿨다가 다쳐봤기 때문에
이제는 애써 기대하지 않는다.
중산층은 더 이상 안심하지 않는다.
예전엔 열심히 살면
노후엔 한 채쯤은 가질 수 있다고 믿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흔들린다.
자산이 있는 사람은 더 많이 벌고,
없는 사람은 계속 뒤처지는 게임.
그 게임에는
기회란 단어조차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집을 가진 사람들은
이제 와서 말한다.
“집은 사는 게 아니라, 사는 곳이야.”
“굳이 너도 안 가져도 돼.”
“임대도 좋아, 요즘은 그런 시대야.”
하지만 그 말들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말처럼 느껴진다.
사다리를 이미 타고 올라간 사람들이,
사다리를 치워버리는 장면.
그게 지금의 풍경이다.
집을 못 산 건 내 탓일까?
더 빨리 결혼하지 않아서?
투자를 몰라서?
목돈을 안 모아서?
아니.
내가 열심히 사는 동안,
정책은 방향을 바꾸고,
기회는 비켜갔고,
금리는 오르고, 가격은 뛰었다.
열심히 산 사람도 소외되는 구조라면
그건 시스템의 책임이다.
모두가 오를 수는 없더라도,
오를 수 있는 사다리는 있어야 한다.
집을 갖고 싶은 마음,
자산을 형성하고 싶은 욕망은
죄가 아니다.
그 욕망마저 접으라는 사회는
미래를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
사다리가 사라졌다고,
다들 포기한 건 아니다.
아직은,
조금 더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청년들은 알바를 하고,
중산층은 생활비를 줄이며
그래도 언젠가를 믿고 있다.
그 믿음 하나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마”라는 말은
너무 잔인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