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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광 Nov 21. 2023

터닝 포인트

한 번 한 번이 터닝 포인트였다


30대 미혼 남성이 쟁취해야 하는

가장 큰 두 가지가 일과 사랑이다.

적어도 난 그렇다.


일이야 당연하니까 제외하고.


사랑은 주고받지 못할 때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는 것처럼

늘 갈증을 느낀다.


결혼을 위한 사랑은 아니다.


결혼은 물론 중요하지만

사랑의 과정 혹은 결과물일 뿐


그것 자체를 목표로 둔 적은

지금껏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결혼을 하려고 만나는 게 아닌

만나보니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라고 하면 갈음이 되려나.




터닝 포인트를 지나는 사람은

본인이 터닝 포인트에 있는지

잘 모른다고 한다.


그저 변화하는 상황을 인지하고

본인의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늘 향할 뿐이고

그에 대한 결괏값이 나올 때쯤 뒤돌아보고는

아, 그때가 터닝 포인트였구나 한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특히 더 그랬다.

실수는 있을지언정 쉬운 만남은 없었고

결정은 기간과 속도와 무관하게 늘 어려웠다.


그렇다면.

문득 생각해 보니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변화를 주었고,

내게 터닝 포인트가 됐었구나 싶은 것이다.




그녀는 거래처 담당자였고

업무상 서로 소통할 일이 많았다.


사실, 나는 처음 알게 된 후 거의 1년을

그녀가 남자인 줄 알았다.


부드러운 남자가 떠오르는

이름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직무 특성상, 급하게 처리돼야 하는 건이 많아

메일을 주고받기보다 카카오톡 메신저가

주요 소통 수단이었다.


프로필 사진에 떠 있는 사진은

여자친구 사진이겠거니 했다.


짧지 않은 협업의 시간이 쌓여가면서

서로 내적 친밀감 또한 쌓였다.


메신저로 주고받는 사무적인 말투도

조금씩 부드러워졌고,

가끔 급하게 요청을 하는 클라이언트의

험담을 하기도 했다.


간혹 카톡 말투로 느껴지는 위화감이 있었다.

설마 여자분이신가?라는 의심을 시작했고,


꽤 시간이 지난 후

급한 건으로 인해 전화를 할 일이 생겼다.


그 의심은 사실이었고, 일이 마무리됐을 때쯤

나는 지금까지 남자분인 줄 알았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이름만 보고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며,


고객사를 상대해야 하는 만큼

본인을 남자로 생각해 주는 게

오히려 편하다는 뉘앙스의 대답을 했다.


마침 타이밍 좋게

거래 한지도 꽤 됐는데 담당자끼리

미팅 정도 한 번 해도 괜찮지, 하는

팀장님의 제안인 척하는 지시가 있어

미팅 약속을 잡았다.


여자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기대를 1도 안 했다면 거짓말이지만,

물론 그때는 궁금증 정도였다.


그 미팅 자리가 발단이 돼

살얼음 추위가 한창이던 연초의 한 겨울.


나는 사내연애도

사외연애도 아닌 연애를 시작했다.




잔잔한 연애였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게 이별 사유가 됐다.


첫눈에 반한다는,

생물학적인 끌림은 사실 없었다.


그간 쌓인 서로에 대한 데이터가 호감이었고

실제로 만나보니 좋은 사람이고,

나와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은 쉽지 않았다.


어쨌거나 서로의 연결점은

회사 간 비즈니스였고,

이에 대한 리스크는 분명 있었기 때문에.


거리도 매우 멀었다.


그래도 만나다 보면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실제로 대체로 그랬다.


만나는 동안 여러 일이 있었고


각각의 일들이

이별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중요한 것은

서로 무난 무난하기만 하다는 것이었다.


먼 거리로 인해 보통 주에 1번 만났고,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대체로 무난한 데이트를 했다.


그녀 쪽에서 먼저 결혼이야기가 나왔고

난 이런 느낌이라면 무난하게 살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 무난이라는 이름의 위화감은

시간이 갈수록 나를 엄습했다.


그 위화감은 권태기로

서로에게 구체화가 시작됐고


결혼이야기는 진척되는데

마음은 점점 멀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됐다.


서로의 부모님까지 뵙고 난 후에야,

우리는 멈출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선 새로운 갈증이 생겨났다.


다음에 누군가 만나게 된다면

서로 지킬 건 지키는 무던한 연애가 아닌


다 내던질 수 있는

불같은 사랑이 하고 싶다는 갈증.


거래처 그녀와의 경험이

그전까지의 연애관을 뒤흔드는

터닝 포인트가 된 셈이다.




고등학교 시절 밤 12시부터 새벽 2시까지

라디오를 즐겨 들었다.


난 경기방송 '감성터치'의 애청자였다.


거기서 유명한 감성글을 낭송해 주곤 했는데,

아직 기억에 남는 글이 있다.


우리 또한 누군가에겐

과거의 사랑이 아니던가.


하지만 모두

지금 사랑에 충실하며 살고 있으니.


따뜻하게 이해해 주고

성숙하게 날 사랑하게 해 준.

그의 과거를 난 사랑한다.




연애관을 뒤흔들었던 나의 과거는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지금 역시

이별과 퇴사, 각각의 헤어짐 속에서


사랑뿐만 아니라 일에서도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


난 지금 내가 폭풍의 눈에 서 있음을 직감하고 있다.

아직도 매번 정신 차리고 쉬이 서있기 어렵다.


아침, 점심, 저녁. 항상 나를 몰아세우다가도

잠들기 어려운 새벽이 되면

나를 달래며 글을 쓴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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