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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광 Dec 10. 2023

그대로 인해 흔들리는 세상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


살다 보면 가끔 어떤 노래에 꽂혀

그 노래만 줄곧 반복해서 듣게 되는 일이 있다.


내게는 주로

신나고 템포가 있는 노래보다


나도 잘 설명하지 못하는 내 마음을

나지막이 설명해 주는 듯한 잔잔한 노래가 그러했다.


우연히 TV 노래 경연프로그램에서

듣게 된 그 노래는 내 음악 앱을 한곡 반복으로 점령 중이다.




모두들 치열하게 살고 있을 평일 오후는

나에겐 잔잔하지만 꽤나 괴로운 시간대 이기도 하다.


집에 혼자 있을 때,


오후의 햇살과 함께

나른함이 찔러오는 것이 느껴지면

커피를 진하게 타서 옥상에 올라가곤 한다.


그 노래 제목처럼.


취향에 안 맞는 진한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옛날 일과 내가 겪었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먼 옛날 멀기만 했던 사람부터

가까운 옛날 가까웠던 사람까지.


그들 모두 약하게, 혹은 강하게

내 세상을 흔들었던 사람들.




창유리 새로 스미는 햇살이

빛바랜 사진 위를 스칠 때


빗물에 꽃씨 하나 흘러가듯


마음에 서린

설움도 떠나


지친 회색 그늘에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


파도처럼 노래를 불렀지만

가슴은 비어


그대로 인해 흔들리는 세상


유리처럼 굳어 잠겨 있는 시간보다

진한 아픔을 느껴




'그대로 인해 흔들리는 세상'

아, 난 그 노래의 이 부분에 꽂힌 것이 틀림없다.


그 가수는


내가 가지고 싶어 하던 목소리 톤으로

통기타 반주를 하며 담담하게 불러나갔다.


마치 김광석이 이 시대에 활동했다면

이렇게 불렀을 거야,라고 하는 듯이.




살면서 사람을 만나 오면서

그들은 내 세상을 흔들며 영향을 주었고


그 흔듦이

기쁘기도, 고맙기도, 부담스럽기도,

두렵기도, 해가 되기도 하였다.


흔들리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렇지 못한 관계였다면 시작을 하지 않았을 테니.


그러니 생각해 본다.


빗물에 꽃씨 흘러내리듯

설움이 조금씩 옅어져 가는 지금


때아닌 따뜻한 햇살을 피해

회색 그늘에 앉아


파도 같지만 빈 마음으로.


나는 당신들의 세상을 얼마나 흔들었을까.


그 흔듦이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웠을까.

혹여나 힘들거나 두렵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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