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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광 Dec 07. 2023

무신론자, 신점을 보다

확신은 던져주지 않는다



신점을 봤습니다.

요즘 핫하다는 곳이라,
한 달 전에 예약한 곳을 이제 가게 됐죠.

저는
점을 보는 것 자체를 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믿지 않았어요.

지금 이 자리에서 날 처음 보는 사람이
내 과거와 미래에 대해 평가하고

재단한다는 것 자체가


꽤나 불쾌한 일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전 무신론자인 탓에,


신내림 같은 건 없다.
앞에서 이야기하는 무속인이
내 외모와 분위기 말투, 습관 등

외견으로 보이는 특징과 전달받는 정보를 조합해
순발력으로 응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신내림이라고 착각,
하는 게 아닐까 하고요.

그런 제 선입견은 무참히 깨졌고,

내담을 끝내고 온 저는

조금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분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저를 보자마자

'길을 잃었네'
'원래 하던 일, 사실 그리 하고 싶지 않지?'

라며 사정없이 정곡부터 찔러대더랍니다.

지금까지 이래 했을 거고,
너는 이런 사람이니까
일이 이렇게 됐을 거야, 라며

앉은자리에서 저에 대한 재단을 하는데,

그분이 제 초상화를

거칠게 스케치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그려진 초상화는
마치 거울을 보는 듯했습니다.

결국 자신감을 되찾아야 되는데
그건 스스로 해내야 한다.

몇 가지 일이 풀리는 시점을 던져주며,
그렇게 될 테니까 너무 걱정 말고 생각 말고
일단 하는 게 중요하다.

잘 될 거야.

라는 말과 함께.

저는 순간 치솟으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아야 했습니다.

아, 나는 잘 될 거라는 그 말.
따뜻한 격려가 듣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거구나, 싶었죠.




삶은 고민과 선택의 연속이고
재단하기 어려운 미래라는 것은

마치 안개가 자욱이 낀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
어떤 게 언제 튀어나올지 몰라, 두렵죠.

그래서 우리들은
내가 잘 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을 얻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신점은 확신을 던져주지 않습니다.

대신 자욱한 안갯속 저 멀리 어딘가에
이정표를 찍어줘요.

저기까지 가면, 뭔가 있을 테니
가던 길 그대로 가라고요.


"어차피 누가 뭐라 해도 가고 싶은 대로 갈 거잖아?"

"그러니까 가던 길 가"

단지 그것만으로도 우리들은
마치 안개가 걷힌 것처럼
힘을 낼 수 있게 돼요.




몸살이 나 오한이 일고 뜨끈뜨끈한 몸을
억지로 이끌고 왕복 3시간을 다녀왔습니다.

고단했고 열은 더 심해졌지만
돌아오는 길은 오히려 한결 편했습니다.

바뀐 건 없습니다.

여전히 안개는 자욱하고
어떻게 될지 모르며,

해나가야 할 일들 천지에요.
찍어준 이정표도 금방 희미해질 겁니다.

그렇지만 주저앉고 싶을 때
가끔 이렇게 신의 힘을 빌어

전투력이 상승하는 풀 버프를 받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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