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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광 Mar 07. 2024

좋은 이별이란 없다

그 끝이 오늘이 되지 않고 내일이 되지 않게


살면서 우리가 관계를 맺어오는 모든 것들에는

만남과 이별이 있다.


좋은 이별이란 없다.


근 몇 개월 간

몇 번의 크고 작은 이별을 겪으며 내린 결론이었다.




두 달 전 직장인 밴드를 그만두었다.


주류 멤버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원하는 스타일의 곡을 하지 못해서,

무대에 서는 텀이 너무 길어서 등


평소 가지던 불만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활동을 지속함으로써 얻을 있는

기쁨과 행복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개선안을 제시해 보았지만

내 목소리가 어느 한 군데 부딪히지 않고

메아리치듯 허망하게 되돌아오는 것을 느끼자마자


다음 공연까지 내 포지션을 책임져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나는 자리에서 등을 돌렸다.


스스로 잘했다고 평했다.


매주 수요일 저녁 비어버린 일정과

일자리를 잃고 방에서 뒹굴고 있는

내 마이크를 보며 상실감을 느끼기 전까지.


그리고 보컬로서 모자란 실력에도

싫은 말 한마디 하지 않던 멤버들의 마음 씀씀이에

활동하는 내내 고마움을 느껴왔다는 걸

상기하기 전까지.


10개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 동안 몸담으며

정이 들었었고 기쁠 때도, 힘들 때도 있었다.


다시 연이 되어 돌아올 것을 고대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도 나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들과 나의 직선은 서로 평행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에. 모른 척 참아낼 수 없게 되었기에.




밴드 공연을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찾아와서 보겠다고 했던 친구가 있었다.


찾아갔던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그 친구는

한창 놀고 싶을 어린 나이임에도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나는 나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알면서

여지를 주는 실수를 했고,

뒤늦게나마 단호한 거절과 사과를 했다.


최대한 빠르고 조용하게 사라져 주었지만,

아마 상처가 되었을 테다.


힘들어했을 그 친구를 생각하니

모습에서 이별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작년의 내가 겹쳐 보였다. 거울을 보는 것처럼.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다.


예전의 그녀가 단호해지지 않기를,

마음을 돌리기를 그렇게 원하던 내가

되려 다른 누군가를 그렇게 단호하게 대했다는 것이.


그래서 그 이별은 미안했다.




어린아이가 생떼 부리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라는 말을

무척 싫어한다.


시작부터 끝을 상정한다는 것이 나는 마음이 아프기에.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태어나면 언젠가 죽는 것처럼

생떼를 부려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끝이라는 것은

모른 체할 수 없는 명백한 진리 같은 것이다.


그 끝이 오늘이 되지 않고 내일이 되지 않게

배려하고 배려받으며 동화 같은 결말을 꿈꾸는 것.


그것에 실패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별이고,


내가 인간관계에서

상실을 왜 그토록 두려워 했는가에 대해

스스로 내린 결론이다.


그래서 나에게 좋은 이별이란 어불성설이다.




같은 평면에서 양방향으로 뻗어가는 두 개의 직선은

완벽하게 평행하지 않는 한 언젠가 부딪히게 되어있다.


고로 맞부딪히지 않게 미세조정을 해주어야 한다.

차선을 넘어가지 않게 가끔 핸들을 돌려주는 것처럼.


내게 좋은 이별은 없다. 일종의 실패같은 것이다.

그렇게 아프지만 조금이라도 배우고, 느끼고, 성찰한다.


그렇게 다음에 만날 우리라는 관계가

맞부딪히지 않고 오래오래, 혹은 영원히


가까이 마주한 채 평행을 달릴 수 있도록.

그렇게 좋은 이별이었다,

평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게.


발버둥 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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