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운 미술이야기 - 고호의 억울한 죽음
자주 가는 추어탕집 메뉴판 옆에 해바라기 그림이 걸려있더군요.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이었어요.
궁금해서 물었더니 지인이 복을 불러 오는 그림이라면서 얼마전 선물을 해주었다고 했어요. 고흐라는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고, 저 그림의 실제 가격은 현재 1200억원의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했더니 더욱 기뻐하더군요. 복을 불러오는 그림이 확실하다는 표정으로 함박 웃으며 주방 아주머님들과 신나서 이야기를 나누더라고요.
오늘도 의도치않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말았네요. 고흐가 찢어지게 가난에 시달렸고, 자신의 귀를 잘라 친구에게 보낼 정도로 기이하고 힘들게 살다가 그만 정신병원에서 자살했다는 이야기는 안했어요. 밥 먹으며 할만한 얘기도 아니고 굳이 좋은 기분을 망칠 필요가 없잖아요. 이런 센스와 배려가 전 마음에 들어요.
언제부턴가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이 '이발소 그림'처럼 여기저기 걸리더니, 비슷한 해바라기 그림이나 사진들이 부적처럼 '복을 부르는 그림'으로 불리면서 개업선물 1순위가 되어 팔려 나가기 시작했죠. 풍수인테리어라고 검색해도 해바라기 그림이 다양하게 올라옵니다. 제가 어릴적엔 이런 그림을 '이발소 그림'이라고 했는데, 시골동네 이발소에도 걸려 있을 정도로 흔한 그림이라는 뭐 그런 뜻이 있었죠. 그때만해도 그림으로 복을 불러들일 수 있다는 발상이나 의미부여를 할만한 능력자들이 없었어요. 역시 사람도 그림도 시대를 잘 타고 나야 하는 거네요. 돈복이 아무때나 통하는거라면 해바라기를 그렇게 열심히 그렸던 고흐는 떵떵거리고 살았어야 하니까요. 불행히도 고흐는 생전에 해바라기 그림 덕을 전혀 보지 못했죠.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을 본 적 있으세요?
전 진짜 고흐의 해바라기를 감상한 적이 있어요. 생각보다 작고, 빛이 바랠까봐 미술관의 조명을 어두침침하게 하고, 관람객과 거리를 두고 보라는 조건 등이 있어서 기억에 남는거라고는 노란색이 전부였어요. 그러고보니 노란색이 황금, 돈을 상징하는 색깔이라서 해바라기 그림이 더 '돈복'과 연관지어 관심을 끌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네요. 어째됐든 노란색은 고흐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어요. 심지어 고흐가 죽음에 이른 것도 노란색과 연관이 있다고 하네요.
가장 먼저 희생된건 바로 화가가 직업인 고호 자신이었죠.
아마도 고호는 싸구려 안료를 더 많이 사용했겠죠.
어쨌든 고호는 산업재해로 명을 달리했다고 할 수 있어요.
고호가 살았던 시대만 화학안료의 피해가 극심하고 목숨을 위협하는 건 아니에요.
패션시장의 과열이 쏟아내는 환경오염물질이 장난이 아니죠. 매일 쏟아지는 옷폐기물이 어마 어마 하지요. 가난한 나라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가난한 동네에 있는 쓰레기산에도 가장 많은게 옷폐기물들이라고 해도 별로 과장이 아닐 정도예요. 고래가 몹쓸 쓰레기를 삼켜서 죽어가는데 그 안에 잘 썩지도 않는 나일론 옷들이 엄청 엉켜붙어 있던 끔찍하고 안타까운 장면도 떠오르네요.
그래서 제가 건너 건너 아는 J는 결심했다는 거에요.
"나라도 더이상 쓰레기가 될 옷을 만들지 말자!"
그리고 뼈를 갈아넣는 입시전쟁을 치루며 어렵게 합격하고 전공했던 패션디자인을 과감히 포기했다고 했어요. 한때 J는 그 대학을 다닌다는게 아주 자랑스러워 가슴이 부풀어 올랐었죠. 실제 걸어다니면 가슴이 가장 눈에 띄었어요. 졸업후 유학을 고민하기도 했고, 대기업 취업에 성공해서......
앗! J가 아니라 다른 친구가 성공한 거였네요. 이 친구는 그냥 패션디자이너로서의 꿈을 꾸면서 잠깐씩 일을 했군요. 그렇게 살다가 서른 중반의 나이에 J는 갑자기 학원을 차렸다고 했어요. 엄마와 영수학원을 차렸더라고요. 같은 대학, 같은 과를 졸업하고 10년 넘게 모임을 하고 있는 친구들은 좀 의아해 했죠. 디자이너들의 감각치고는 이름이 너무 올드했으니까요?
'영수?', '혹시 어머님 존함이니?' 이렇게 묻기도 했어요. 친구들이 너무 성급했죠. 역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지요. 그냥 정말 영어와 수학을 가르키는 영수학원이었죠.
중요한 건, J가 패션을 그만두고 학원을 차린 이유예요.
패션이 환경오염을 심각하게 일으킨다는 거였죠. 멋지게 생각하고 실천으로 옮긴 용기에 모두 박수를 쳤어요. 물론 찜찜하기도 했지만요. 다른 친구들은 모두 그놈의 패션으로 환경오염에 기여하며 먹고살고 있으니까요. 저도 뭔가 세상을 위해 고민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J에게 기꺼이 응원을 보냈지만, 영수를 가르치다가 정신적인 오염때문에 그만두는 건 아닌지 살짝 염려가 되더군요. 당연히 말하지는 않았어요. 이제 시작했는데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저도 J와 같은 고민을 했던 적이 있었죠. 아니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어요.
아크릴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나서 팔레트에 남아서 굳어버린 물감이 마치 비닐이나 플라스틱 덩어리처럼 뜯어지는 걸 보면 매일 그림을 그리느라 버려질 화학안료가 지구를 오염시키는게 그려지거든요. 그림보다 더 생생하게요. 아크릴물감을 수도물로 씻어 버리는 것도 끔찍하죠. 깨끗이 씻으려면 엄청난 물을 소비해야 하고 오염시켜야 하니까요.
고작 개인이 작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느라 사용한 물감을 씻어내는데도 물감의 몇배로 물을 써야하는데, 물감을 만드는 공장은 어떨까요?
크레파스, 색연필, 싸인펜, 물감, 아크릴물감, 유화안료 등등 색색깔깔 화려한 색깔을 만들어 내는 물감과 그림 재료들 중 자연에 버려져서 자연스럽게 썩어 거름이 될만한 건 눈꼽딱지정도 겨우 될거예요. 거의 대부분의 안료들이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이죠. 그런 걸 페인트나 안료를 만드는 공장에서 매일 버린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지구의 인내에 감탄과 감사를 무지막지 보내고 싶어집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살아있는게 정말 신기하고 신비할뿐입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니까, 더이상 물감을 낭비할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소비자가 성분을 보고 고를 수 있으면 좋은데 물감은 전성분 표기가 안돼 있어요. 제조사에 성분 문의 메일을 보내면 가끔 답장을 해주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이 외국 회사들이고 국내 회사들은 성분을 알려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J처럼 나라도 물감 사용을 자제하고 환경오염을 덜하자 이런 생각을 했었죠. 그렇다고 아예 관두지는 않았어요. 나중에 딴소리 한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미리 말씀드리는 거에요.
“의외로 미술 재료에 동물성 원료가 사용된 것들이 꽤 있어요. 동물 가죽으로 만든 아교를 칠한 종이도 있고, 흰색이나 검은색 물감 중엔 동물 뼈가 들어간 것도 있어요. 카드뮴처럼 천연광물이기는 하지만 사람에게도 안좋고 환경도 오염시키는 안료도 있고요.
그런데 고호는 어딜봐도 이런 고민을 하지는 않았더군요.
고호의 고민은 인간에게 있었지 자연환경이나 기후변화, 환경오염을 염려할 수준이나 상황이 아니었던 거죠. 당시엔 값비싼 천연안료 대신 그나마 값싼 화학안료가 생산되는게 감사하고 즐겁기만 때였을테니까요.
덕분에 수많은 화가들이 화학안료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실험대상자 역할을 톡톡히 해낸거죠.
고호도 그 중의 한명이에요. 왜 고호의 눈에 보이는 세상이 갈수록 노랗게 변하고, 건강이 악화되는지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고 본인도 그런건 관심도 없었죠. 길거리에 버려지고 방황하는 창녀와 어린아이, 감자 몇알로 겨우 끼니를 떼워야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슴을 후벼파고, 성질 돋구는 사람들과 비참한 자신을 자책하고 원망하기에도 기운이 딸리고 버거운 인생이었으니까요. 온갖 괴로움과 고통을 그림에 쏟아부어야 그나마 살 것같았던 고호에게 당신이 쓰는 미술재료가 알고보면 환경을 오염 시키고 지구를 병들게 할거라는 말까지 들었다면 어땠을까요? 우리는 아마 고호의 그림을 보기 힘들었을 수 있어요. 고호는 매우 민감하고 섬세하고 염려가 많은 인물이었으니까요.
그래도 고호는 화가로서의 자부심은 정말 대단했지요.
"언젠가는 내 그림이 내 생활비와 물감 값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을 알아줄 때가 올 것이다."라며 스스로 자기 가치를 인정하고 포부를 당당히 말했죠. 고흐의 말은 적중했고, 이제 고흐의 해바라기는 1200억원(8420달러)을 호가하며 그 가치를 인정 받고 전세계인이 알아주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유명해서 수난을 겪기도 하지만요.
2022년 10월, 영국의 환경단체 '저스트 스톱 오일(Just Stop Oil)' 활동가 두 명이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전시한 반 고흐의 1888년 유화 '해바라기'에 하인즈 캔 수프를 끼얹졌죠. 다행히 액자에 유리가 끼워져 있어서 그림이 손상되는 건 막을 수 있었습니다. 사고를 저지른 이들은 고흐때문이 아니라, 화석연료 신규허가 및 생산을 중단시키고자 정부에 대항하기 위한 시위를 한거였죠.
활동가 중 한 명은 "예술이 생명, 식량, 정의보다 소중한가"라면서, "그림을 지키는 것이 더 걱정인가, 아니면 우리 지구와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 더 걱정인가"라고 되물었지요. 고흐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지 무척 궁금하네요.
아마 고호라면 환경단체의 편을 들어주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고호의 삶은 늘 없는 자들의 편에서 부당한 것들에 대항하는 쪽에서 몸을 사리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가난한 화가였던 고흐가 즐겨 쓰던 물감들 속에 납중독을 유발하거나, 피부염, 간질환, 신경 손상 등을 위협하는 화학물질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는게 속속 밝혀지고 있으니 결코 지나칠 수 없을 겁니다.
아직까지 고흐가 화학안료때문에 무슨 병을 얼마나 앓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고흐를 치료했던 페이용(Dr. Theophile Payron) 박사의 기록에 따르면 고흐는 쇼크가 왔을 때 솔벤트나 케로신(등유) 같은 미술재료를 마셨다고 했지요.
제가 아는 화가분이 밤에 작업을 하다가 몰입한 나머지 컵에 담긴 소독제를 벌컥 들이키고 바로 119에 실려가 오래도록 고생했던 게 떠오르네요. 미치도록 열정적이었던 고흐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쇼크가 와서 마신거라면 너무나 안타깝고 착잡하네요.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진정시킬 방법이 없어서 어떻게라도 해보려고 먹어서는 안될 것까지 마셨으니까요. 이래저래 고흐는 최악의 환경에서 언제 죽어도 이상할게 없는 안좋은 것들을 먹고 마시며 힘들게 살았네요.
더군다나 화학안료를 밀폐된 공간에서 오래 사용하면 그 중독 증상으로 어지러움, 두통, 청력감소, 이명, 구토 등의 증상이 드러난다는 연구결과가 있는데, 자신의 귀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해서 한쪽 귀를 자르고 자화상을 그린 고흐의 이상행동에 물감의 독성물질이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잡아떼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 참고 자료
인터넷 신문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2101493897 2023.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