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넬리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가는 그곳에서 웃음을 찾았다.

by youngmiMe



Llanell


21 ✕ 29.7cm / pencil on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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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스에서의 시간들은 나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였고,

그리는 시간 속에 내가 나의 감정들을 담아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사실 웨일스에 가기 전 그동안의 나에게는 그리는 시간은 잠시 눈을 감고 어둠을 걷는 시간이었다.

그 순간은 모든 상황들과 생각들 잊을 수 있는 시간이었고, 아무 감정도 없이 나의 모든 것을 잠시 마비시켜주는 시간이었는데 나는 그 모든 느낌들이 좋게 느껴졌다. 아마도 모든 것들을 생각하는 용기가 없었기에 그림은 그리면서 멍해지는 그 순간들이 나를 편하게 했던 것 같다. 그림 그리는 시간을 통해서 나는 어떤 생각으로 그리고 어떠한 감정들로 하여금 나를 도망치게 해주는 도피처 같은 곳... 그 시간들이 나는 나를 위로해 주는 줄 알았다.


하지만 웨일스 작은 마을에서의 그 시간들은 나를 변화시켰다.

자연이 일상인 그곳에서 나는 자연에게서 위로받았다. 늘 똑같은 일상을 살아 냈지만, 자연도 분명 그 자리에 그대로 인대도 늘 똑같이 않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의 마음과 눈과 귀를 넉넉하고 따뜻하게 위로해주었다. 나도 자연처럼 일상을 똑같지만 다른 아름다움들로 살아내고 싶어 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나를 용감하게 만들어 준 것 같다. 말이 통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나의 이야기를 그 누구보다 더 궁금해했고 나 또한 그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영어가 짧은 나에게는 말로 소통하는 일이 너무나 어려웠지만, 손으로 그림으로 때론 온몸을 사용해서 나의 이야기들을 하게 되면서, 나의 바보 같고 어눌한 모습에도 그들은 나의 이야기를 알아들어 주었고 좋아해 주고 사랑해주었다. 굳이 무언가로 나를 포장할 필요가 없는 그 공간에서 나는 정말 자유롭고, 행복했다. 그리고 헤어짐이 있더라도 누군가와 더 깊이 관계하고 싶어 졌다.


그러나,

처음 그곳에 갔을 때부터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온 것은 아니다. 너무나 조용한 그곳에서의 첫 생활은 나를 너무 불안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그 땅의 침묵이 나를 불편하게 했던 것 같다. 그곳에 가기 전 한국에서의 생활은 계획성 있게 그리고 타이트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밤이 되면 거의 기절해서 잠을 자는 패턴을 지냈던 나에게 한 동안 잊고 살았던 천천히 느리게 때론 게으른 일상을 만들어 나를 긴장감 없는 상태로 만들어 주는 일이 이상하게 느껴졌고 먼가 불안한 마음들로 하여금 그곳에서도 부지런해져야지라는 생각들이 멈추지 않았던 것 같다. 정말로 일상에서 필요한 중요한 것들을 나는 불안으로 불편함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게으른 하루가 나를 얼마나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지, 천천히 걷고, 느리게 생각하는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 것들인지 잊고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곳이 나를 점점 더 안아주었고, 나는 그 안김을 처음에는 벗어나려고 했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곳에 내가 푹 안겨있음을 느꼈다. 한국에서는 별거 아닌 일상들이 그곳에서는 조금 특별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고, 어쩔 때는 좀 지질한 내 모습이 보이기도 했지만 별로 부끄럽거나 불안하지도 않았고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위축되지 않았다.


그곳은 분명 나를 너무나도 눈부시게 꽉 껴안아 주었다.


그런데 나는 또 그 모든 것들을 잃어버린 듯 살고 있었다. 그래서 그 기억들을 더듬어 보고 추억하려 한다.

그림으로 글로 그리고 그곳에서 남겼던 사진과 작고 소소한 나의 이야기와 풍경을 담고 있는 감정들과 함께

영국에서 보낸 평범하지만 아름다웠던 나의 일상들과 생각들을 지금 내 옆에 살아있는 것처럼,

나는 한 번 더 그 추억들 속에 다시 안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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