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생 황혼기에 접어든 솔이의 시간
세상의 색은 조금씩 흐릿해져 가고
낮게 엎드려 스치는 바람은
나의 정수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습니다
내 느릿한 보폭에 맞춰
당신의 그림자가 기꺼이 뒤로 물러납니다
급할 것 없다는 듯 툭, 툭,
땅을 짚는 내 앞발의 떨림까지 읽어주는 당신
오래전엔 앞질러 가느라 놓쳤던 것들이
이제야 비로소 내 낮은 코끝에 걸립니다
이끼 낀 돌 틈에 숨겨진 풀꽃의 안부와
뿌리 깊은 나무가 길어 올린 마른 흙의 온기
"솔아,괜찮아?"
나를 부르는 당신의 음성은
공기 중에 흩어지는 다정한 입자 같습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긴 숨을 들이켜고
당신의 무릎 언저리에 머리를 가만히 기댑니다
지금 내 발밑에 고인 따스한 햇볕이 소중하니까요
느릿한 발소리에 녹아내려 보드라운 무늬로 남는 오후
어느덧 길게 늘어진 우리의 그림자가
하나의 선으로 길 위에 평화롭게 누워 있습니다
올해로 15살이 된 나의 솔!
이제야 비로소 느린 걸음에 맞춰주는
나의 사랑을 깨달았다는 솔이의 고백이며
멀리 갈 필요 없이, 그저 나의 곁에서 발걸음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솔이의 진심이다
나란히 걷는 두 존재의 그림자가 하나로 겹쳐지는 평화로운 일체감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