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과 성찰
사우나는 언제나 내게 작은 쉼표였다.
뜨겁게 달아오른 증기 속에서 땀을 흘리다 보면,
내 몸에 걸터앉은 피로가 서서히 벗겨졌다.
그곳은 낯선 사람들이 같은 온도를 공유하며 잠시나마 무장을 내려놓는 곳이었으니까!
그러나 오늘, 그 익숙한 공간이 나를 배신했다.
누군가 나의 사물함에서 지갑을 가져간 것이다.
처음 든 감정은 분노였다.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져간 낯선 손길. 단순히 돈을 훔친 게 아니었다.
그 안에는 나의 이름, 나의 번호, 나의 삶을 증명하는 카드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들고나간 순간,
그는 단순히 물건을 가져간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를 훔쳐간 셈이다.
“왜?”라는 질문을 마음속에서 되뇌었다.
왜 하필 내 지갑이었을까. 왜 하필 오늘이었을까.
왜 남의 삶을 그렇게 가볍게 들고 갔을까!
지갑 안에는 돈이 조금 있었다.
크지 않은 금액이었으니, 그것이 목적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 허망했던 것은 작은 조각들이었다.
운전 면허증. 은행카드. 지하철 G-pass.
한양대 학식권 몇 장. 사우나 티켓 몇 장. 마사지 카드 모서리가 구겨진 영수증.
그것들은 내가 밟아온 시간을 보여주는 작은 기록이었다.
사소하지만, 결코 대체할 수 없는 내 일상의 흔적.
그 모두가 낯선 손에 넘어갔다.
나는 허공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지갑이라는 것은 단순히 돈을 담는 도구가 아니구나. 그것은 내 삶을 압축한 작은 아카이브였다.
누군가가 내 서랍을 함부로 뒤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분노와 허망함에 잠겨 있을 틈은 없었다.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홈페이지에서 지급정지를
했다
"분실신고 및 재발급 신청완료"라는 문자가
오자 드디어 안심이 되었다
내일은 경찰서를 찾아가야 한다. 분실 신고를 하고, 임시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야 하고
지갑도 새로 마련해야 한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에 잠겼다.
지갑은 작은 물건이지만,
그 속에는 내가 살아온 시간이 차곡차곡 들어 있었다. 그것을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을 잃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증명하는 방식 하나를 잃는 것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세상은 언제든 나를 흔들 수 있다.
내가 아무리 지키려 해도,
어떤 순간에는 허무하게 잃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그 후에 내가 무엇을 붙잡느냐였다.
오늘의 사건은 분명 불쾌하고 불운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묻는다.
‘나는 무엇을 진짜 내 것이라 부를 수 있을까?’
지갑 속의 돈은 사라졌다. 카드도, 티켓도, 내 손을 떠났다.
그러나 나의 분노, 허망, 사유는 내 안에 남아 기록이 되었다. 그것만큼은 누구도 가져갈 수 없다.
나는 오늘 지갑을 잃었다.
그러나 이렇게 글로 남긴 순간,
이 경험은 단순한 분실 사건이 아니라 사유의 기록이 되었다.
기록은 사라지지 않는다.
훔쳐갈 수도, 지워낼 수도 없다.
오늘 남긴 이 기록은,
사라지지 않고 내 곁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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