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일, 살아가는 일

글은 왜 쓰는가에 대한 나의 대답

by 안명심


글은 왜 쓰는가?

삶의 기록이라고도, 자기표현이라고도,

세상과의 대화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내게 글쓰기는 그 어느 하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글은 상황마다, 마음의 결마다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이 질문에 내 나름의 답을 붙들어본다.




첫째로, 글쓰기는 기억을 보존하는 작업이다.

인간은 망각하는 존재다.

오늘의 감정도, 어제의 풍경도, 이름 모를 거리에서 스쳐간 얼굴도 시간은 희미하게 만들고 지워버린다.

그러나 글로 적어두는 순간 그것은 지워지지 않는 자취가 된다. 오래된 일기장을 펼쳤을 때 잊었다고 믿었던 풍경이 또렷하게 살아나는 경험은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글은 사라져 가는 것을 붙잡는 도구이며, 망각에 저항하는 인간의 손짓이다.


둘째, 글은 자기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말로는 쉽게 흘려보내는 생각도 글로 옮기면 구조를 갖추어야 하고, 문장의 옷을 입어야 한다.

그렇게 적어 내려가다 보면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무엇을 갈망하는지 드러난다.

때로는 내가 몰랐던 고통이나 기쁨, 오래 묻어둔 상처가 문장의 틈에서 불쑥 고개를 든다.

그래서 글쓰기는 곧 자기 성찰의 과정이 된다.

글을 쓰면서 비로소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글은 타인과의 대화이자 연결이다.

우리가 읽은 책 속 한 문장이 가슴을 울릴 때,

그것은 저자가 먼 시대, 먼 공간에서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다.

글은 시공을 초월해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

누군가는 기쁨을, 누군가는 슬픔을, 누군가는 삶의 무게를 글로 나누고, 독자는 그 글을 통해 위로받거나 용기를 얻는다.

내가 쓴 문장을 읽는 낯선 이가, 그 순간만큼은 혼자가 아니라고 느낀다면 그것이야말로 글의 가장 큰 힘일 것이다.


넷째, 글은 존재의 증거이다.

우리는 태어나고 살아가고 사라진다.

그 과정에서 남는 것은 흔적이다. 누군가는 집을 짓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노래를 남긴다. 그리고 나는 글을 쓴다.

글은 내가 세상을 지나갔다는 증거이며,

내가 무엇을 생각했고 무엇을 사랑했는지를 남기는 흔적이다.

언젠가 내 몸은 사라져도 한 줄의 문장은 누군가의 눈길 속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글쓰기는 곧 사라짐을 넘어서는 시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상처와 갈등을 경험한다. 마음속에 쌓여가는 응어리를 그대로 두면 언젠가는 그것이 나를 무너뜨린다.

하지만 글로 풀어내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나를 옭아매지 않는다.

내 고통을 문장으로 옮기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를 단단한 문장으로 다스린다.

글은 나를 치유하는 손길이자,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창이다.


그리고 글은 미래로 건네는 편지다. 오늘 쓰는 글은 지금 이 순간의 산물이지만, 언젠가 미래의 누군가가 그것을 읽게 된다.

그 사람은 나의 시대를 이해할 단서를 얻고, 나의 마음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이 글도 아직 만나지 못한 독자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글은 시간의 강을 건너 미래와 만나는 가장 인간적인 방법이다.


한 편을 완성할 때마다 이전의 나와 조금 달라져 있음을 발견한다. 문장을 다듬으며 인내를 배우고, 사유를 이어가며 사고의 깊이를 깨닫는다.

때로는 실패한 글 앞에서 좌절하기도 했지만, 그것조차도 다시 쓰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글쓰기는 완성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끝없이 이어지는 배움의 과정이다.




쓰는 일은 곧 살아가는 일이다. 글은 나를 지탱하는 기둥이자, 나를 세상과 이어주는 다리다.

글을 쓰며 살아 있고, 살아 있으므로 글을 쓴다.

글은 내 삶의 숨결이자,

내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아름다운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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