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로니에 공원의 숨결

시작을 증명했던 하루

by 안명심

마로니에 공원은

뜨거운 청춘의 기대, 차가운 가을의 서정, 그리고

오랜 지성의 역사가 하나로 융합된 복합적인

공간이다.

인파의 열기로 몸살을 앓으면서도

깊은 사색을 끊임없이 허락하는 도심 속 가장

역설적인 심장이다.


​혜화역에 도착한 직후, 친구와 나는

신인문학상 시상식장으로 향하기 전 공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우리는 역사 출구 앞에 자리한 정겨운 포장마차를 외면할 수 없었다.

이른 시간 출발한 까닭에

빈속으로 허기진 간을 달래야 한다는

핑계 아래, 붉은 떡볶이와 따뜻한 순대, 바삭한 튀김을 급하게 시켰다.

포장마차의 투명한 비닐 천장 아래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 소박한 순간은,

문학적 긴장감 대신 익숙하고 인간적인 행복을 주었다.



​허기를 채운 뒤, 마로니에 나무 아래에서

서둘러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높은 가을 하늘과 대비되는 샛노란 은행잎을 배경 삼아,

이 날의 긴장과 기대를 웃음으로 포장하려는 듯 셔터를 눌렀다.

그 사진 속에서 우리의 모습은,

곧 펼쳐질 치열한 세상 앞에서 잠시나마 소박한 음식으로 에너지를 충전한, 가장 서정적인 청춘의 모습 그대로였다.

벤치 아래 떨어진 은행잎 하나를 집어 들었다.

부채처럼 넓게 펼쳐진 황금빛 잎맥.

은행나무는 오래전 중국에서 건너왔고, 전쟁과 화마에도 살아남는 강인한 나무라했다.

더디지만 끝내 살아내는 생명.

손끝에서 바스러지는 잎을 보며 내 마음도 조용히 뜨거워졌다.



​우리가 밟고 있는 이 흙과 돌은 단순히 공원의 바닥이 아니라, 과거의 시간을 담고 있는 지층이었다.

이곳은 원래 서울대학교 문리대와 법대가 자리했던, 한국 지성의 뜨거운 요람이었다.

캠퍼스가 1975년 이전된 후, 이 공간은 지성의 터를 문화예술의 광장으로 이어가고자 마로니에 공원으로 재탄생했다.

공원의 이름을 결정지은 마로니에 나무는,

캠퍼스 시절부터 젊은이들의 사색을 묵묵히 지켜온 영원한 증인처럼 굳건히 서 있다.


​이 공원의 활기는 주변 소극장들에서 온다.

이곳을 둘러싼 골목골목에는 수십 개의 극장이 빼곡하게 모여 있어,

평일이나 주말이나 언제나 꿈을 좇는 젊은 예술가들과 관객들의 인파로 몸살을 앓는다.

벤치에 앉은 젊은 친구들은 시집이나 희곡집을 들고 열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나도 매일 한 문장씩 써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시상식을 마치고

​쉴 틈 없는 열기 속에서,

잠시 호흡을 고를 곳이 필요했던 우리는,

가까이 있는 낙산공원에 올라가 이 복잡한 대학로 전체를 조망해 보자고 했다.

성곽을 따라 이어진 길, 서울의 지붕들이 낮게 펼쳐지는 풍경들을 보고자 했다.


그러나 마로니에 공원을 에워싼 인파와 시간의 제약, 그리고 벤치에 눌러앉아버린 가을날의 나른한 기운 때문에, 결국 오르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눈앞에 보이는 낙산의 고요함을 뒤로하고,

다음에 다시 이곳을 찾아 저 높이 솟은 능선에서 역사를 내려다보자고 다짐했다


​마로니에 공원은 그렇게 시간과 공간,

열정과 고독이 교차하는 서정적인 배경으로

언제나 숨을 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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