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초의 망명
세수를 마치고 고개를 들면
거울 속에 낯선 여자 한 명 서 있다
습기 어린 유리 너머로
주름진 눈가가 길게 번져 나간다
잠시 두 눈을 감는다
암전 된 눈꺼풀 안쪽은 무한한 과거
눈을 뜨면 꽃물 든 뺨과 팽팽한 이마를 가진
그 시절의 소녀가 환하게 웃고 있을 것만 같다
기대감에 젖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드디어 짧은 영겁을 지나 눈을 떴을 때
거울 속엔 여전히
추레하게 낡아버린 여자가 서 있다
조금 전보다 한층 더 깊어진 눈빛은
방금 막 과거를 여행하고 돌아온
어린 소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배웅하는 것만 같다
제미나이횔용
거울은 매일 마주하는 일상이지만, 동시에 가장 낯선 나를 마주하는 경계의 공간이다.
습기 어린 유리창을 닦아내는 행위는 현실의 나를 직시하려는 의지이자, 가려진 진실(과거)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의 시작이다.
눈을 감는 짧은 암전의 순간, 우리는 시간을 거스른다.
눈을 떴을 때 젊은 나를 찾지 못한 절망이 아니라 다녀왔느냐는 듯 깊은 눈으로 바라봐 주는 것. 그것은 추레한 늙음마저 삶의 한 층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