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회전이 하루를 적셨다
일상의 균열
-세탁기 앞에 서서-
탈탈거리는 소음도 경쾌하게 여겼다
내 몸의 얼룩을 제 몸으로 옮겨가며
회전하는 세계의 중심을 지키던 낡은 원통
갑자기 기계가 완강한 침묵을 선택했다
코드를 뽑았다가 다시 찔러보고
심장 같은 버튼을 수없이 눌러봐도
검은 액정 위엔 무뚝뚝한 에러 코드뿐
비누 거품 속에서 헤엄치던 옷가지들이
축축한 절망처럼 바닥에 엉겨 붙어 있다
아무리 헹궈내려 애써도 지워지지 않는
기계 내부의 깊은 골절
내 삶을 깨끗하게 펴주던 저 쇳덩이도
실은 오래전부터 삐걱거리는 비명을
세제 향기 뒤로 숨기고 있었나 보다
이제는 놓아주어야 할 시간
마지막까지 뱉어내지 못한 젖은 빨래들이
무겁게, 아주 무겁게
울음을 짜내고 있다
내 오늘에 대한 경고문 같기만 하다
탈탈거리던 소리가 정적에 잠기자
미처 짜내지 못한 수심이 거실 바닥까지 차오르는
기분이다.
시끄럽던 소음도 늘 음악이라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작동을 멈춘 세탁기.
수명을 다했나 보다
삶의 근본적인 한계를 닮은듯해
문득 슬픔이 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