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물 두번째 이야기
요즘 까페에 들리면 일회용품은 사용이 제한된다는 안내문구를 볼 수 있다. 올 봄 PET 대란 때문에 환경부에서 실시하는 정책이라고 하는데, 일회용품이 편의성과 위생문제 등으로 필요성이 있는 만큼 무조건 못쓰게 할 게 아니라 재활용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는 정책을 취하면 어떨지 생각해본다. 우리나라에는 활용가치가 높지만 정부, 기업 등의 무관심속에 그냥 버려지는 부산물들이 너무 많다.
음료로 활용되는 술지게미
몇 년전 수도권에 있는 유명 막걸리 제조장에 초청을 받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선 하루만 해도 몇 톤이 되는 술지게미가 나오는데 처리하기가 영 힘들다고 하여 부산물 활용방안을 만들어보고자 방문한 것이다. 술지게미는 오래전부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용되어 왔다. 술지게미와 흑설탕을 섞고, 여기에 대추나 계피 등을 넣고 맛을 낸 모주는 오래전부터 제조되었는데 전주지방에서 특히 유명하며, 콩나물국밥과 함께 먹을 경우 잘 어울리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술지게미로 장아찌를 담근다던가, 빵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60년대 동네마다 양조장이 있던 시절엔 술지게미로 밥대신 먹는 등 그 활용이 흔했는데, 동네 양조장이 줄어들면서 최근에는 찾아보기 힘든 식품이 되었다. 그러나, 양조장이 조금만 대형화 되더라도 최대 수십톤의 술지게미가 한꺼번에 생산되고, 술지게미는 쉽게 부패하므로 보관저장이 어려워 나오는 즉시 사료용 원료 등으로 쓰이고 있다라고 한다. 내가 방문했던 양조장에서는 사료용으로만 나가는게 아까워서 그 활용방안에 대해 고민중이라고 했고, 그 부분에서 도움요청을 받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술지게미 활용법은 찾지 못했다. 워낙 대량으로 생산되는 데다가 한꺼번에 처리해야하니 활용에 제약이 있을 수 밖에 없었는데, 일본에서 쓰이고 있다는 방식대로 건조시킨 후 분말화하여 빵이나 과자원료로 사용하는 방법을 만들어봤다. 그러나, 술지게미 자체에 감미료가 들어있어 단맛이 지나치게 높고, 국내엔 다수분 식품원료를 한꺼번에 대량건조할 수 있는 설비가 없어 아이디어로 연구만 해놓고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일본에서는 술지게미를 활용한 식품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식 감주, 아마자케이다. 전통식 아마자케는 쌀과 누룩을 섞어 누룩의 당화효소가 쌀전분을 분해할때까지만 발효하여 만든다. 그러나, 알콜발효가 일어나기전 당화발효만 일어나게끔 발효공정을 제어하기가 어려운 데다, 술지게미 활용이라는 더 좋은 생산방식이 등장하여 현재는 누룩으로 아마자케를 만드는 방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술지게미를 활용한 아마자케는 우리나라의 모주와 비슷한 방법으로 만든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에서는 마트에서 술지게미를 쉽게 구매할 수 있기에 가정에서도 구입한 술지게미에 설탕과 몇가지 맛내기 원료를 첨가하여 간단하게 아마자케를 만들어 먹는다. 아마자케는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가공식품으로도 많이, 다양하게 제조되고 있으며 겨울의 음료라 하여 따뜻하게 데워 먹는 것이 선호되고 있다고 한다. 신사에서 여는 축제때 아마자케를 나눠주는 곳도 많이 있어 아마자케는 일본인들에게 익숙한 음료이다.
항산화성분이 풍부한 밤껍질의 활용방법
과일이나 야채 껍질은 원래 해충 등으로부터 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단단한 셀룰로스와 리그닌 등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폴리페놀, 플라보노이드, 테르페노이드 등의 항산화물질들도 외부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껍질조직 사이에 다량 분포되어 있다. 이렇기 때문에, 과일이나 야채 등 농산물의 껍질에는 유용한 성분들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여 이를 활용하기 위한 연구가 오래전부터 다양하게 진행되어 왔다. 껍질은 착즙이나 절편, 분쇄, 건조 등의 농산물 1차 가공전에 제거되는 것이 보통인데 껍질이 두꺼운 농산물들은 껍질 분리량이 많기때문에 껍질을 활용한 다양한 용도개발을 기대해볼 수 있다. 밤은 벌레등의 침입을 막기 위해 껍질이 두꺼운 편인데, 특히 속껍질에는 벌레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탄닌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예로부터 밤속껍질은 율피라하여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어 왔는데 동의보감에서도 소화개선과 혈액순환을 도우며, 감기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율피는 고유의 항산화효능 때문에 일찍이 미백이나 피부노화방지 용도로서 화장품원료로 개발되어 사용되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율피를 미생물로 발효하여 소화흡수에 방해가되는 섬유질을 제거하고 카페인산, 갈릭산 등의 폴리페놀 등의 추출이 더 잘되게 함으로써 효과가 더 개선된 발효율피소재도 여럿 개발되어 특허출원되었다. 식품쪽으로는 기침완화등의 목적으로 율피차를 만들어 먹기도 하나, 아직까지 식용원료로서의 사용은 미미한 편이다. 그 이유는 현재 사용량이 많지 않아 밤가공시 나오는 껍질을 보관이용하기가 곤란하고, 탄닌 고유의 텁텁한 맛과 식품으로서의 효능에 대한 과학적 규명이 아직은 부족한 상황이라 실제 사업을 벌일만한 기반여건 조성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밤으로 유명한 충남 공주 정안지역에서는 연간 율피가 100톤 이상 생산된다고 하는데, 최근 간식으로도 인기가 있어 깐형태로도 많이 유통되는 밤 생산을 감안하면 전국적으로 연간 1천톤 이상의 율피가 생산될 것으로 추정된다. 좋은 효능에도 불구하고 많은 양의 율피가 활용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농산부산물 또는 식품부산물로 신규 원료를 만드는 것은 꽤 까다로운 일이다. 부산물은 한꺼번에 많이 생산되고, 변질되기 쉬운 특징을 가지고 있어, 빠른 시간내에 대량으로 처리해야만 하나 지금까지의 보편적 가공방법을 적용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의지만 있다면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수준의 부산물들도 있어서 정부에서 환경보호를 위한 부산물 활용지원금 등을 지급한다면 해결가능한 과제들도 도출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규제로서 환경오염물질 배출을 막는 것보다는 부산물 활용장려를 통해 자원의 순환을 촉진시키고 생활도 더 편하게 만드는 정책을 실행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