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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안보와 농업정책 방향 #3

농산물선물거래와 가공소재

작년 서울신문 칼럼 이후 기사를 하나더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내용이 "농산물선물거래와 가공소재" 이다.


1848년 시카고상품거래소의 설립은 상품으로서의 농산물유통거래를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사건이고, 1800년대 후반에 우리가 생각하는 선물거래의 틀이 잡혀갔으며, 1900년대 들어 카길등 곡물메이저가 등장하면서 국제곡물거래의 틀이 잡혔다고 보면 된다. 카길의 시작을 냉전시대와 함께 설명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미 카길은 그때 메이저였고, 미국 정부가 벌이는 식량무기화 정책을 통해 동반 성장하여 지금같은 막강한 기업이 되어버렸다.


또하나 알아야하는 건, 1950년대 미국 농업은 전쟁을 거치며 대폭 증가된 농업생산량이 자국수요를 초과하여 항상 농산물이 남는 문제를 겪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때 미국 정부가 한국같은 저개발 동맹국에게 원조식량을 무상 제공하면서 자국내 농산업을 보호했고, 그와 동시에 카길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가공사업을 시작하여 전 산업영역에 걸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미국정부는 원래 밀을 원조해주지 않았다. 카길공장에서 밀가루를 생산하여 동맹국들에게 뿌렸다. 이유는 자국 산업을 부양하기 위해 그런 것인데.. 유독 한국만은 밀을 통밀그대로 수입하게 해달라했고, 미국의 허가가 떨어지자 일본으로부터 제분기술을 전수받아 원조 밀을 밀가루로 만들어 국내 시장에 공급하였다.


미국의 자원원조, 일본으로부터 선진기술수입, 한국은 소재생산.. 반도체에서 보는 것 같은 국제 공조시스템이 이때 이미 형성되었던 것이다.


사실 CJ가 삼성에서 계열분리되었을때 이러한 비즈니스모델을 더 발전시켜 국제 곡물시장에 엘리베이터 하나 확보해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란 생각도 해본다. 미국의 메이저 영화사하나 만드는 데 참여하고 스필버그랑 호형호제 하던 영향력으로 일본의 유명상사나 미국 곡물메이저랑 협업해서 국제자원조달 시스템을 하나 만들수도 있었을텐데.. 참 안타까운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던 여러 핵심사업중 해외원조를 통한 해외자원시장 진출이란게 있었다. 대기업들 삥뜯어서 만든 미르재단이 했던 핵심사업이 K-Food AID를 해외원조국에 제공하여 해당국가에서 한류붐이 일어나게 하고 바탕으로 장차 수출시장개척의 발판을 놓겠다라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최순실이 끼여들면서 이대에 몰아주고 좀 이상하게 되었지만.... KOICA를 통한 해외 시장개척 전략은 꾸준했다. 어쩌면 아버지때 했던 걸 보고 그걸 카피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1950년대를 거치며 국제 곡물거래 및 선물시장에서의 본질은 "과잉생산 농산물"과 "이를 이용한 소재가공"이다.
한국에서 밀을 열심히 재배해봤자 절대 국제시세는 따라갈 수 없다. 국산 밀이 과잉일 턱이 없기때문이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국제 시장에서 겨뤄볼 수 있는 자원은 쌀이다. 생산량도 많고 남아돌기까지 한다.


철광석을 생산하는 철광석회사는 큰 돈을 못번다.
천연자원 그대로는 어따 쓸데가 없기때문이다.
철광석에서 산업적용도로 쓸만한 철소재를 만들어주는 제철회사가 그래서 돈을 버는 것이다.
산유국은 돈을 좀 만지지만, 전세계 석유자원의 판도를 주무르는 건 엑손모빌같은 정유사들이다. 원유가 종류별로 정제되어야 다양한 산업에서 사용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우리나라를 만만히 볼 수 없는 이유는 우리나라에 원유정제시설과 기술이 있기때문이다.


곡물메이저중 하나인 벙기는 매년 한국 식품전시회에 홍보부스를 낸다. 규모는 작지만. 대두유, 카놀라유, 해바라기유 등 다양한 유지가공소재를 판매한다고 부스를 내고 있다.
곡물메이저가 메이저가 되려면 필수적으로 가공사업을 해야한다. 곡물메이저들은 사탕수수에서 설탕, 대두에서 대두유, 밀에서 밀가루, 옥수수에서 전분과 물엿을 만드는 공장을 에외없이 100% 소유하고 있다. 카길은 원당과 전분당공장, 밀가루 공장을.. 벙기와 ADM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유지추출공장을 가지고 있다.
네슬레의 펫푸드사업부와 벙기의 대두박 사료회사가 결합하여 Solae라는 회사를 만들었는데, 이 회사가 대두단백질과 대두를 원료로 한 식품, 건강식품, 사료사업의 Global No.1회사가 되었다. 이 회사를 DuPont이 인수하였고, 최근 식물성 대체육 원료를 공급하느라 정신없다고 한다.


하림이 진짜 곡물메이저를 하고 싶었다면 벌크상선 회사만 덜렁 살게 아니라 원물 가공공장까지 확보했어야 했다.

원조곡물로 일본에서 기술을 전수받아 가공하던 CJ, 대상.. 이런 회사들이 해외에 자원가공공장들을 짓고, 전세계 식품소재시장의 메이저 공급업체가 되었다. 조미료의 핵심원료인 MSG와 핵산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세계에서 시장점유율 1등이다. 국내에서는 서로 경쟁하느라 칼부림까지 날만큼 살벌했지만, 그 경쟁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하니 그때까지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었던 일본회사들을 제치고 1등이 되었다.

이런 회사들의 성공스토리에..
지금의 주무부처인 농림부는 어떤 기여를 했었던가?
혹은 이런 회사들을 이용하여 우리나라 농산업에 커다란 발전계획을 세웠던 적은 있었을까?

농산물 가공은 지금하는 것처럼..
소규모 농가의 소득증대목적으로 보조금이나 줘가면서 활성화하는 게 전부가 되어서는 안된다.

국내의 잉여자원을 대기업 생산설비와 연결하여,
효과적으로 가공하고, 전세계 시장에 유의미한 진출을 할 수 있도록 계획을 잘 짜는게 진짜 국가가 할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껏 정부의 농업정책과 대기업, 소재산업과는 완벽히 따로 돌아갔다. 2011년 쌀이 남아돈다고 하여 정부비축한 쌀을 싸게 공급할테니 식품기업들이 쌀가루가공하여 관련산업을 육성하자라고 계획을 세웠다. 몇몇 대기업 포함하여 정부말 믿고 투자를 했는데, 몇년 못가 남는 쌀이 없다면서 공급중단을 선언해버렸다. 기업입장에선 정부나 농민이나 약속안지키는 건 똑같은 수준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자원가공사업은 원료공급이 충분하고 확실한 해외에서 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얘기한다.



10년전인가? 4시간쯤 달렸는데도 끝이없이 펼쳐져 있던 미국 일리노이지역 옥수수밭을 지나가며..
이건 차원을 다르게 하여 생각해야하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산쌀을 활용하여 밀과 경쟁할 수 있는 쌀가루 제분시설을 그려보라고 해서 그려봤더니. 연간 쌀처리량이 20만톤이다.
이걸 얘기했더니. 엄청 놀라면서.. 나보고 미쳤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젤 큰 미곡종합처리장이 5만톤도 안된다.
그러나, 수입밀로 제분하는 우리나라의 흔한 제분공장은 연간 밀처리량이 20만톤정도 된다. 그건 왜 미쳤다고 말을 안하는 걸까?

20만톤처리가능한 미곡종합처리장..
도마다 하나씩 놓으면 된다.
그옆에 부산물 처리 공장도 하나씩 건설하고..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쌀값 많이 내려갈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쌀값을 올리는 것에만 신경쓰고, 내리는 것에 대해선 신경을 안 썼다. 20만톤짜리 도정공장이 생기면, 쌀값은 그대로 받고 소비자들에게 나가는 쌀값은 내려가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게 가능한 소리냐고? 당연히 가능하다.

곡물메이저들이 곡물을 싸게 유통하는 비결이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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