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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정공모 연구과제는 실용화 되기 어려운가

정부 R&D과제에 대한 단상


옛날에 알룰로스 만들어 팔때다.


거래처에 가서 어떻게 만들어야 사겠냐고 알아보러 다니라고 했다.


그걸 취합해서 제품의 최종 스펙을 결정하려는 생각이었음.




원래는 그냥 우리가 생각한대로 만들어서..


수요업체에 제시해주고 파는 식으로 생각했는데..


실제 그렇게 영업하니까 "좀 이상하다면서.." 구매결정을 꺼렸다.




수요처 의견을 반영해서 만들려니까..그때부터 난관인거다.


원하는 스펙이 각각 다르다.


어디는 농도가 높은 쪽이 좋다하고, 어디는 낮은쪽이 좋다하고..


필요한 당도도 다다르고, 점도도 다 다르다.




좀 지나보니 그걸 다 맞춘다해도 그 업체가 그걸 쓸 확률이 100%가 안된다는 걸 알게되었다.


도대체 어느장단에 맞춰 일해야되는 거야?


개발하는 팀은.. 우리가 변덕을 부린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우리는 억울했다. 우리가 그랬나.. 거래업체들이 그랬지..




과연 어떤 기준에 맞춰 제품을 만들까.. 깊이 파기시작했다.


완성은 못하고 다른 업무를 하느라 손을 뗏지만..


어렴풋이 알게 된건.. 정답은 없다.


신소재의 이상적인 규격이란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 거다.라는 거였다.


상자안에 고양이가 있는데.. 이게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상자에서 꺼내봐야 안다는 거. 꺼내기전엔 확률로 생존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확률 50%. 반은 죽고 반은 살은거다.


양자화학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들은 "도대체 뭔소리냐. 살았다는거냐 죽었다는 거냐.."라고 얘기할 거다.


일반인과 같은 수준의 고위 임원들도 같은 반응이었을 거다.




암튼. 거래처가 원하는 이상적인 규격이란 찾기 어렵다.


다만.. 그 수치가 어떤 범위안에 존재한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정확한 수치를 알려고 끝도 없이 노력하기보다는..


그 범위 안에서 최선의 수치를 결정해내면 되는 것이다.






오늘 작년 말에 뜬 농림부 지정공모과제 RFP를 다시 읽어봤다.


지원하려고..


보면 볼 수록.. 한숨이 나왔다.


"이거 쓴사람.. 이 분야 잘 모르고 쓴거 같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우리팀이 그나마 다행인건..


내가 최종 수요처에 있고, 규격을 정해줄 수 있는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다.


성능지표로 어떤 임의의 규격을 설정해서 이게 세계 최고수준에 맞먹든 말든.. 어찌됐든 수치화 할 수는 있는데..


세계 최고 수준에 맞춘다한들.. 그게 100% 수요처에서 구매해야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100%라고 생각한 그 지점이 실제로는 수요처에서 생각한 목표와는 다른 범위에 있는 지점일 가능성도 무궁무진하게 많으니깐..




제품개발자가.. 혹은 대학교수가.. 공급자가 임의로 설정해봐야.. 헛일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진짜 중요한 건 가까운데 있을지 모른다.


객관화, 수치화 평가하겠다고 성능지표를 설정하고 끼워맞추는게 요새 트렌드지만... 정작 그 제품의 구매이유를 물어보면.. 맛이 좋아서, 색이 좋아서, 가격이 싸니깐.. 더나아가 그냥 필요해서.. 일수도 있는 거다. 실제로 필드에선 그런 경험 많이 한다니깐...




이게 실제 사업에 필요해서 진행하는 건지..


아니면 연구를 위한 연구를 진행시키려고 이렇게 만들어놓은 건지.


난 잘 모르겠다.


하여튼 객관성확보, 수치정량화라는 명목하에 지금 이렇게 과제성공여부를 평가하는 방향은.. 어딘지 모르게 참 꺼림직하다.


자연스럽지 않다는 얘기다.




결국, 평가는 평가대로 사업화는 사업화대로 진행해야한다는 얘기가 된다. 고용창출 10명이상, 매출액은 10억 이상, SCI논문은 IF 3.0이상.. 이런 조건은 그냥 보고를 위해 설정해놓은 거겠지? 산업육성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규격설정작업은 종합예술과도 같다.


ktx 열차시간 짜는 작업만큼이나 고도로 훈련된 인원이 그 미묘한 100%에 젤 가까운 지점을 딱 찍어야 한다.


그동안엔 미국, 일본, 유럽의 누군가가 설정해놓은 걸.. 그냥 따라서 하면 됐다. 세계최초라는 수식어를 단 소재를 만든다면.. 규격설정도 쉽게 해선 안되고 그걸 좀 아는 사람이 해야 현실에 젤 비슷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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