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RRI, 국제 미작연구소.
1960년에 미국 포드재단, 록펠러재단, 그리고 필리핀 정부가 합작하여 설립.
쌀사업을 생각하고, 발전전략을 생각하니.
문득 왜 세계 최고의 쌀연구기관인 국제미작연구소는 필리핀에 세워졌을까? 라는 의문이 생겼다.
필리핀이 그 당시는 우리나라보다 더 잘 살던 나라였고, 나쁘지 않은 전도유망한 국가였을 것이다.
필리핀 정부도 주식인 쌀연구에 미국의 두 부자재단을 끌어들여 연구소를 설립한다는 것에 굉장한 기대를 가지고 투자를 했을 것 같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볼때, 그게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필리핀은 여전히 쌀자급이 안되는 국가이다.
원래는 자급을 했었는데.. 현재 그렇게 된 원인을 많은 사람들이 곡물메이저 농간때문이라고말한다.
어떤 시기만 추려보자면 그 말은 맞긴하다. 곡물메이저가 태국산 등 주변국가에서 저렴한 쌀을 들여와 필리핀 내수시장을 초토화시켜버린 적이 있으니깐..
그러나 근본적으로 필리핀 쌀농업이 잘 되지 않았던 이유는...
농지개혁이 더뎠고, 쌀농사에 필수인 수로시설 확충이 제때 안된 데다가 결정적으로 이로 인해 기계화가 늦어졌다는 것.
이 3가지 이유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에비해 한국은 건국과 동시에 토지개혁을 함으로써 소유권이 초기화 되었고, 게다가 바로 이어진 전쟁으로 인해 방해가 될만한 요소가 싹 정리되어버렸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산업화 과정에서 토지개혁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없었고.. 때마침 통일벼의 보급, 이로 인해 녹색혁명이 완성될 수 있었다. 한반도 역사상 보리고개가 없어진 유일한 시기가 된 것이다.
반면 필리핀에서는 농업개혁이 더뎠고. 이에 따라 쌀에 연관된 산업이 발전되기 힘들었다. 미작연구소에서 아무리 우수한 품종의 쌀과 재배기술을 연구개발해내었어도 필리핀 안에 그걸 구현해낼 토지가 적었다. 그리고 마르코스의 독재와 이슬람반군에 의한 치안불안, 그리고 사회구조의 고착화.. 이런 요소들로 인해 쌀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잃어버리게 된 것.
쌀농사는 한때 기아문제 해결을 위해 굉장히 중요하게 평가되었다.
아프리카의 못사는 나라, 기아문제를 갖고 있는 나라중 상당수가 주식이 쌀인 국가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남는 쌀가지고 ODA를 해주자는 얘기가 많다. 근데, 그게 남아도는 자원이 아니다. 노동과 자본, 토지를 바탕으로 농부들이 애써 만들어낸 천연자원이고 국부이다.
난 쌀을 ODA로 막 제공하자는 의견에 반대다.
쌀은 남아서 처치곤란한 소재가 아니다. 부가가치화 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들지 못해, 그리고 그 기술을 소화할 사회구조와 문화를 만들지 못해 저렴하게 보이는 모습으로 머물러 있는 국가 자원이다.
외화를 벌어오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면.. 해외로 국가자원을 유출하는 일이 얼마나 심각한 행위인지도 함께 알 것이다.
왜 쌀은 밀이나 콩, 옥수수 등 다른 식량자원처럼 다른 산업에서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가 없지? 예로든 3가지, 3대 식량작물은 각각에 맞는 가공기술이 개발되어 더 높은 가치로 더 중요한 곳에 쓰이고 있다.
당연히 그들이 활약할 수 있는 시장이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쌀은.. 그냥 쌀형태로 밥지어 먹는게 끝이다.
돈은 끊임없이 다른 형태로 모습을 바꾸어 산업과 경제를 성장시키는데 이바지한다. 그래서 돈이 돈을 낳는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1달러를 몇번 회전시켜 수익을 창출해내는가가.. 선진국 투자기관들의 관심사이자 핵심 역량이다.
돈 만큼이나 곡물 등 천연자원도 가공을 통해 자신의 형태를 바꾸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낸다. 원유는 정제가공을 통해 가스, 가솔린, 등유, 경유 등으로 분리되어 다양한 산업영역에 이용되고 있다.
밀 역시 제분후 밀가루, 그리고 글루텐과 전분 등으로 분리되어 부가가치를 만들고 그들의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
쌀은? 그냥 쌀로 먹는다. 형태를 바꾸지도 않고, 당연히 부가가치는 없다.
국제미작연구소가 필리핀이 아니라 미국에 있었다면..
주구장창 종자연구만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공이용기술 연구가 더 많이 되었을 것이고, 그로인한 부가가치 창출은 해당 국가에서 먼저 퍼져서 새로운 부의 창출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재고미? 골치덩어리가 아니다.
그걸 가공해서 더 값어치 있는 것을 못만드는 상황이 문제의 핵심이다.
일본이 우리보다 20년전 일찍 쌀소비 감소와 재고문제를 겪었지만.. 여전히 그 문제를 해결 못하고 있는 것은 자명하다.
쌀소비를 품종으로 해결하려 들고, 가공으로 소재화하는 것은 여전히 둔감하기 때문이다. 미국, 유럽은 쌀에 대해선 관심밖이다. 그들의 주식이 아니기때문..
근데 최근 글루텐 프리 등의 이슈로 인해 쌀이 전보다 관심을 받고 있고, 그러다가 귀리처럼 확 터지는 날이 오면.. 주도권은 서양으로 넘어간다. 동양에선 아무리 해도 소재화할 수 있는 원천기술이 없어 부가가치화 할 수가 없는 반면.. 서양은 현대 문명의 모든 것의 원천기술을 개발했기때문에.. 그들에게 관심있는 자원의 원천기술 개발이란 식은죽 먹기다.
아프리카에서 지속가능한 식량생산 모델을 만들기 어려운 이유.
간단하다.
그 나라에는 생산부터 가공이용까지 이어지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없어서이다. 외국에서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주면 일시적으로 해소는 하겠지. 그러나 외국인들이 떠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게 되어있다.
원리를 알려준 것도 아니고,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돌아간 것도 아니라서.. 원래 그들이 하던 방식으로 살게 되어 있으니까..
마다카스카르에서 몇년전 거대한 사이클론이 덮쳐와 바닐라농장이 초토화된 사건이 있었다. 그 이후 몇몇 유럽농장주들이 폐허가 된 바닐라농장을 버리고 떠난 모양인데.. 그 자리를 정부에서 차지하고 뭔가를 해보려는 모양이다. 나한테 가공품 만드는 걸 알려줄 수 있냐는 제안이 왔을때.. 어렵다고 했다.
낮은 인건비때문에 아무리 바닐라빈을 싸게 생산하는 능력을 갖췄다해도.. 원가 절감이 가장 많이 되는 구간은 빈을 가공해서 향소재로 만드는 과정에 있기때문에 그걸 서양인들이 독점하고 공유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원료를 싸게 만들어도 말짱 도루묵이다. 라고 얘길 했다.
실제로 그들이 싸게 생산했다는.. 그래서 약간의 공정무역가라는 그 바닐라빈은 국제시세보다 비쌌다.
전세계의 천연물 가공유통시장을 서양인들이, 서양기업이 장악했기에 메이저 거래시장에 들어가려면 그들의 유통망에 들어가야한다.
중간 시스템 생략하고 직접 엔드유저에게 공급한다?
일부 품질이 중요하지 않은 경우에는 가능하겠지만. 핵심이 되는 사용용도에서는 절대 가능하지 않다. 국제질서가 그런 것이다.
우리 눈앞에.. 가공기술이 제대로 개발되어 있지 않아.. 그냥 원물 그대로 남아 있는.. 쌀이라는 자원이 있다.
기술을 개발해 이걸 제대로 이용하는 시스템을 만든다면... 대대손손 대박이다. 수백년 쌀소재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보고 여기에 몇백억 투자하라 했더니.. 국가가 민간에서 하는 그걸 어떻게 손대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누군 또 망상이라고 하더라.
그만큼 큰 그림은 그려본적도 없으니 겁이 나서 그런 거겠지..
뭐라하든 좋다. 내 운명의 길은 거기에 있음을 드디어 내가 인식했으니.
남이 뭐라하든 내 길을 간다.
국제미작연구소가 미국이 아니라 필리핀에 세워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