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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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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은 원래 로컬푸드다

로컬푸드와 쌀가공식품

일본에서 페트병에 담은 쌀이 인기라해서 뉴스에 나온적도 있는데..

사실 쌀이야말로 로컬푸드의 대표적 상품이다. 단. 일본에서.

하지만, 일본을 따라가는 한국 역시 로컬푸드 성격을 띄고 있다.

쌀만큼 원산지 표기가 잘 되어 있는 국산 농산물이 또 있던가?


쌀가공식품 역시 쌀이 로컬푸드라는 개념에서 출발해야한다.

일본의 쌀가공식품들은 상당수가 로컬푸드 개념이 탑재되어 있어 일정 지역에서 재배된 일정한 품질의 쌀로 제품을 만든다.

원산지 표시가 현단위까지 철저히 되지 않았더라도 알고보면 일정 지역의 일정한 품종쌀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 일본에서 팔리는 페트병쌀> (출처 : 연합뉴스)

반면, 한국에서 쌀가공식품들이 시장확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이유는 대량생산하겠다고 나선 대기업들이 쌀의 로컬푸드적 속성을 무시하고 달려들었기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본다. 

전라도 신동진쌀과 경기도 고시히카리 쌀은 보통사람 눈으로봐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당연히 쌀의 품질을 결정짓는 전분 구조, 조성역시 이 두 쌀은 확연히 차이 난다.

그러나, 지난 정권때 그냥 밀가루처럼 싸게만 공급하면 될줄 알고 3년묵은 구곡을 싸게 가공용으로 공급했는데.. "나라미"라는 톤백에 싸여 어디서 어떻게 재배되었는지도 모를 쌀을 가지고 쌀가루를 만들어 쌀빵, 쌀국수를 만들겠다고? 떡은 그나마 좀 나았지만, 이것들 역시 엄밀하게 말하면 품질이 떨어질 수 밖엔 없다.

요즘 소비자들이 어떤 소비자들인데 가격싸다고 무조건 사려고 할까.


암튼.. 쌀가루 가공하겠다고 일본 기술을 앞다퉈 수입한 대기업들이 간과한 아주 중요한 부분은.. 그들이 수입한 기술이 일본의 로컬푸드 쌀에 맞춤형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품종과 산지가 달라지면 자칫 품질이 흔들려버릴 수 있었는데.. 과연 한국쌀 품질에 맞춰 가공기술을 개발하는 단계까지 도달했을까? 

아마.. 지금까지 잘 안되는 이유는 그 불안요인이 계속되어서가 아닐까한다.


오늘 홍대의 #소로리 #라이스랩 에 다녀왔다.

여러가지 품종의 쌀이 조그만 패키지에 담겨 전시되어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쌀과 밥에 대한 감수성을 일으켜 이젠 외국처럼 종자별, 지역별 다른 풍미를 느끼게 하고자 하는 의도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건 특별한게 아니라. 원래 쌀은 지역별로 편차가 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라는 것.. 쌀뿐만 아니라 모든 농산물이 약간씩은 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우리 땅에서 생산된 농축수산품들을 식품에 이용해본 충분한 경험이 축적되어 있지 않다. 대량가공식품에 사용되는 원료는 전부다 수입품이다보니 1차산업의 산물들로부터 가공식품까지 어떻게 적용시키는지에 대해 노하우가 부족한 편이다. 그렇기에 무조건 외국원료처럼 많이 싸게  생산하면 그대로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가공식품이 짜짠~하고 탄생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실제로 해보니 국내 농산물은 산지별로 품질이 약간씩 달라서 대량일괄생산시스템과는 잘 맞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첨에는 이걸 국산 농산물 품질이 나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국산 농산물을 접하는 경험이 늘어나면서.. 아.. 이건 어쩔 수 없는 variation 이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Variation이 있다는 건 대량생산에 치명적이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새로운 차별화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같은 품종의 쌀이라도...

충북 내륙에서 재배된 쌀은 밤낮의 일교차가 심해 전분의 수축팽창 정도가 좀 심한 편이고.. 자칫 다 팬 이삭이 이슬이라도 맞는 날엔 품질이 엉망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반면 서산처럼 해풍을 받는 지역에서 생산된 쌀은 수분을 촉촉히 머금고 있어 타 지역보다 건조기를 태울때 유의해야한다는 점을 염두해둬야한다. 하지만 도정할땐 좀 부드럽게 나오겠지.

이런 전혀 다른 환경의 쌀을 한데 모아 가루를 내면...

쌀빵이 어찌 만들어질까?

쌀빵의 핵심은 가수량조절이다.

산간 내륙지방에서 생산된 쌀은 수분을 좀더 머금게 해줘야하고..

바닷가에서 생산된 쌀은 수분을 따로 첨가할 필요가 없을수도 있다.

어떤건 수분을 많이 어떤건 수분을 적게.. 하는 쌀전분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걸 한데모아 빵으로 만들경우... 어찌될런지는 자명하다.

쌀국수 역시 마찬가지.


그동안 쌀가공품이라는게 막걸리나 떡, 이정도로나 사용될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이런 품질 속성에 그나마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는 유형이라서 그런 것이다.

산지가 다른 쌀을 한데모아 균일한 품질로 만들수도 있다.

그건 앞선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인데.. 어쨋든 산지별로 품질이 차이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면 충분히 극복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쨋거나, #소로리 에 내 작품들을 전시할 기회를 잡는다면...

난 쌀의 로컬푸드적 속성을 극도로 높인 제품을 개발하여 전시하고 싶다. 예를 들면, 쌀스낵은 전남 해남산 어떤 품종의 쌀로 만든것.

쌀빵은 경북 김천산 일미품종의 쌀로 도정일자가 10월 언제부터 언제까지인 쌀로 만든 것. 쌀국수는 충남 서산산 삼광벼로 만든 것..

뭐 이런 식이 될 것이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밥의 식미로서 품종별, 지역별 차이를 다 구분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가공식품으로 만들 경우.. 지역적 차이, 특색을 살려 소비자에게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툴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하나 중요한 것...

쌀 품질은 아밀로스, 아밀로펙틴 조성이 어떻게 되나.. 이런 수치적이고 과학적인 데이터로 설명할 경우도 있지만.. 크게 거시적 관점에서 생각할 줄도 알아야한다. 이게 바닷가에서 재배된 거냐, 산간지역에서 재배된거냐. 조생종이냐 중조생이냐 만생종이냐.. 등등에 따라 전분구조나 단백함량, 품질, 펜토산 함량까지 영향받을 수 있다. 세부데이터만으로 알기 힘든 쌀의 품질은 기후, 지형 같은 메타데이터로부터 알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여태껏 쌀에 대해 좀 안다는 사람이 얘기해준 건 쌀을 움켜쥐었을때 붙어있는 게 많으면 어떻고, 손에 붙어있지 않으면 또 어떻고... 이런정도? 이런 걸 수치화, DB화 해보자는게 내가 올해 해보겠다는 쌀연구소의 목표이다.

아... 어마어마한 작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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