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몽의 변명

迷夢의 辨明

by 앤드류

미몽의 변명


그랬었지 떠오르는 추억들 아래

언제였지 가라앉은 기억들 위에

몽매난망 아로새긴 이름들 옆에

다 잊은 듯, 엉겨붙어 살아 간다


떠올리려 노고하는 얼굴들 앞에

무심하게 웃어넘긴 눈빛들 속에

반복무상 떠오르는 변명들 덕에

푹 젖은 듯, 속절없이 뱉어 낸다


후회 없이 떠나버린 네 탓으로

내 것이라 여겼던 욕심 탓으로

어디든 묻지 못한 미련 탓으로

그렇게 내 탓이 싫어 떠넘긴다


산다는 일 다 그런 거더라, 라며




몽매난망 夢寐難忘 : 꿈에도 잊지 못할 그리움

반복무상 反覆無常 : 일치하지 않는 언행




*



도저히 잠에 들지 못하는 밤엔, 지금도 바닥 께에 노란 미등을 켜두곤 한다. 그렇게 하면 천장으로부터 온기가 내려온다. 눈꺼풀을 감으면 멀리 켜 둔 촛불이 있는 듯, 허공은 더 이상 허공이 아니게 된다. 사랑, 우정, 웃음, 행복, 감사... 그렇게 떠올리기 좋은 단어들을 맨 앞에 얹어 놓으면 입가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어느 기억, 어느 얼굴, 어느 이름이 차곡차곡 물결처럼 떠내려온다. 꿈결과 맞닿는 의식 어딘가에서 조심스러운 핑계가 비죽 고개를 든다. 어서 깨어나야 한다는 예감과 동시에 그렇지 않으면 가위에 눌리게 될 거라는 직감이 들더라도, 입술을 뻐끔거릴 뿐 아무 대처도 하지 못한 채 꿈결에 떠밀린다. 그렇게 잠에 든 듯 아닌 듯, 미몽의 변명들이 한 마디씩 늘어지기 시작한다.


떠올리기 좋아했던 한 때의 기억도 풍화한 바위처럼 어느새 부분이 떨어져 나가 있곤 했다. 그걸 알아차리면 그렇게도 되찾으려 애를 썼다. 그때 그 남자를 만났던 일이, 바로 그 해 그 계절이었는지? 아니면 그 여자를 알게 된 이후와 그때 그 사건 사이의 일이었는지? 살얼음처럼 엷어진 기억의 판 위에 위태롭게 선 채로 발아래 단 하나의 조각이라도 해치지 않으려 했다. 그럼에도, 이미 부서진 원판을 덤덤히 받아들이지 못해 한껏 왜곡하고 멋대로 재해석한 감상의 편린片鱗을 덧붙이곤 했다. 그래서 여태껏 살아남아 둥둥 떠있는 기억들은 대체적으로 믿을만한 게 못된다. 그럼에도, 이미 사실로 못박아 둔 전후의 기억들이 있기에 또다른 변명들이 고집스럽게 버티고 있다.


창문의 안색이 새벽빛으로 허옇게 뜰 때가 되어서야 이젠 잠에 들어야해, 하며 시름했다. 이젠 별 의미가 없어진 미등의 스위치에 손을 가져다 얹고 간밤에 수고 많았다,하며 인사를 해야만 속이 편했다. 그러고 나서 눈을 감고 있으면 밤새 제 할 일을 마친 그것이 나직이 할 말을 하는 듯했다.


받아들이지 못하느니, 불면을 탓하는 거.

잃은 나를 탓하느니, 사라진 것들을 탓하는 거.

잊은 나를 탓하느니, 잊힌 그들을 탓하는 거.

못난 나를 탓하느니, 변명 없을 세상을 탓하는 거.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어차피 잠을 못 잘 거 같으면, 뭐라도 생산적인 일을 해 봐. 운동이라든지.


세상살이에 바빠 지금은 서로 연락이 뜸해진, 지금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의 말이었습니다. 모든 세상일을 무심하게 관통하는 그의 통찰력을 믿었던 게 고등학교 때 일이었습니다. 세월이나 인연 같은 단어들이 갖는 의미를 알기엔 어리숙했던 나이. 그럼에도 잠들지 못하는 밤을 차라리 행복한 기억으로 채우기 위해 부단히 기억을 쫓았습니다.

나쁜 잠버릇-절반 정도는 고의적인 불면-은 그렇게 수년을 자라나 버렸습니다. 한 번은 그에게, 그때 너가 했던 말 때문에 불면이 더 심해졌다,하며 농담 섞인 핀잔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새끼, 지금 보니까 지 말은 다 맞다 생각하네! 너 때문에 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산다는 일을 두고, 그중에서도 특히 슬픔, 이별, 상처, 시련 같은 단어들을 품은 기억을 두고서는, 도무지 내 탓만은 하기 싫어집니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깊은 고뇌로 괴로울 바엔, 차라리 쉬운 변명 몇 마디로 훌훌 털어내 버립시다. 잘못 없는 누군가를, 애꿎은 세상을 탓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