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병

그녀 한정 기억상실

by 앤드류


행복과 불행은 삶의 방향 속에서 병렬한다.

나란히 이어지는 두 선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두께로 공존한다.

기쁨은 빛이 되어 하늘로 뜨고, 슬픔은 그림자가 되어 심연에 닿는다.

사랑은, 그 두 가지를 모두 받아들이는 것이다.






상사병의 유래


어느 부부의 무덤이 있었다.

그 위로 자란 두 나무는 서로를 향해 가지를 뻗어 자랐다.

상사병의 이름은 죽어서도 서로를 그리워했던 부부의 나무,

상사수相思樹의 전설에 유래한다.



*



과거엔 상사병相思病을 앓다 죽음에 이르기도 했다고 한다.

사랑이 주는 정서적 자극이 오늘날보다 더 강렬했기 때문이었을까? 확실한 건,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사건은 지금보다 훨씬 적었으리라는 것이다. 기껏해야 구전되는 이야기, 혹은 그것을 종이 위로 옮겨 담은 글이나 그림 정도였을 것이고, 소문처럼 떠돌아다니는 노래, 혹은 크고 작은 마을잔치가 그랬을 것이다.

남녀의 사랑은 어땠을까. 추측컨대, 사랑이란 늘 지지부진하고 모호한 것이었으리라. 사랑의 감정을 말하기 위해 편지를 부치고, 그 몇 번 접힌 마음이 도달하고 다시 되돌아오기까지 수일은 족히 걸렸을 것이다. 초당 수십 장으로 펼쳐지는 오늘날 영상과는 비교할 수 없다. 사랑의 사회적 지위는 또 어떤가. 과거에는 사랑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도 때때로 금기시되었다. 결혼은 지금도 간혹 그렇지만 두 가문의 결합이었고, 종교적, 풍토적, 도덕률적 이유로 제한되었다. 금기는 곧 갈망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당신의 주변을 둘러보라. 음악은 어디서든 재생되고, 이야기는 텍스트와 영상, 소리가 되어 무한히 복제되고 있다. 우리 삶의 모습이 대부분 이렇듯, 오늘날의 감정도 언제 어디서든 호출되고 또 해소되는 일상의 것이 되었다. 사랑은 더 이상 삶에서 유일하게 진동하는 격정이 아니게 되었고, 크고 작은 문명의 소음 속에서 그 본래의 강렬함이 희석되어 버렸다. 시대가 바뀌었을지라도, 사랑에 대한 갈망이 인간의 언어 속에서 길을 잃은 적이 없다는 사실만이 조금의 걱정을 덜어준다.


꼭 100년 전 1925년, 일제강점기 시인 김소월은 시집 <진달래꽃>에 「초혼」을 실어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라는 임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 고통을 노래했다. 그가 부르짖은 '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잠시 제쳐두자. 다만 쓰여진 활자를 가만히 보면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애절한 고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그가 상사병을 앓았다고 할 순 없지만, 상사병은 그런 것일 테다. 사랑과 죽음을 한 편의 시, 한 줄 문장에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는 것.

그로부터 50년을 거슬러 올라, 톨스토이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각각 다른 불행을 안고 있다'로 유명한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사랑으로부터 파생하는 파괴적 속성이 비단 죽음만이 아님을 써냈다. 여러 인물들 중에서도, 특히 주인공 안나는 불륜과 부정, 용서와 배신, 행복과 불행, 복수와 죽음…, 그 각각의 이면에 사랑이 있음을 보여준다.

수백 년을 더 거슬러 오르는 고전들은 또 어떤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김시습의 <이생규장전>, 황진이의 <이어라>…. 사랑으로 죽음에 이르거나, 사랑을 잃어 죽음에 이른 고통의 기록은 셀 수 없다. 그것은 사랑과 죽음이 삶을 관통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서정적인 주제이기 때문일 테다.


사실 현대에도 과학적 통계나 기록이 없을 뿐 그런 사례들이 더러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상사병은 정신질환으로 구분되고 있으며, 짝사랑도 상사병의 일종으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사랑 때문에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니.

짝사랑은 정신병이라는 차가운 정의定義. 그 선언은 짝사랑 예찬론자에겐 진부하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왜, 사랑은 병이다, 너무 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같은 노랫말도 있지 않은가. 다만 예술·철학이 아닌, 현대 심리·의학 영역에서 짝사랑을 일종의 병으로 구분한다는 것은 여전히 놀라운 일이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통해 내면으로부터 끓어오르는, 결코 채울 수 없는 욕망-사랑이라는 의문의 답을 갈구하는 것, 혹은 진실한 사랑이라는 맹목적 믿음을 품는 것-을 말하며 상사병의 증상은 콜레라와 같다고 표현했다. 콜레라의 증상은 끔찍하다.


콜레라에 비하면, 적어도 나에겐 그런 증상만은 없다는 것이 다행일 뿐, 오히려 축복인 셈이었다. 목소리까진 또렷하지 않느냐며, 혼자 위로하고 웃었다. 그리고 나서야 그 축복 같은 정신병에 걸렸다는 것을 인정했다.






상사병의 증상

선택적 기억상실


상사병의 증상으로는 불안, 식욕부진, 불면증이 있으며, 심하면 지속되는 고열로 인해 실신하고 또 사경을 헤매기도 한다. 그중에서 나는 심각한 불면에 시달렸다. 잠에 들기까지 머릿속을 헤집는 건 온통 그 사람에 관련된 것들 뿐이었다. 특히, 아무리 해도 떠올릴 수 없는 그녀의 얼굴은 잠들지 못하는 내내 의문과 설렘, 상실감을 가져다주었다. 생생한 목소리, 손끝의 감촉, 스쳤던 향기, 그 실루엣을 마음의 시선 위로 떠올려 놓고 그녀의 얼굴을 그리려 애썼다. 그렇게 어느 사이 잠에 들었다가 눈을 떴다.

한두 시간 쪽잠에도 불구하고, 다행인지,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한 출근길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녀를 조금 더 쉽게 떠올리게 해주는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이뤄지지 않으리라는 짐작을 억누르며 행복감을 만끽했다. 그래도 좋다는 걸 어쩌란 말이냐는 듯이.

오늘도 주고받을 몇 번의 대화. 멀찍이 잠깐씩 마주칠 눈빛. 그러나 다시 잊혀질 얼굴. 불면은 깜박거리는 눈꺼풀처럼 경계가 희미했다.



*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일에 익숙한 사람, 그 낯선 조각들의 수집가. 생김새는 어떤지 외면은 물론이고, 말투나 표정, 행동과 눈빛에 스며든 내면을 훔쳐보길 어느새 십수 년을 넘겼다. 사춘기 무렵 깨어난 의식은 스무 해 가까이 얼마나 많은 얼굴과 그 이름들을 새겨왔던가. 또 그것들은 내 상상과 망상의 경계에서 얼마나 많은 비밀스런 이야기를 떠올려 주었던가.


「스쳐 지나는 타인의 모습을 보며 그 목적지를 추측해 본다. 짙은 선글라스 뒤로 숨겨진 눈, 그 투명한 각막의 커튼 뒤편으로 펼쳐진 우주를 떠올려본다. 그의 우주는 어떤 법칙으로 운동하고 있을까, 겹겹이 포개어진 삼차원 좌표계를 떠다니는 의식의 절편을 쫓는다. 헤아릴 수 없이 점철돼 온 사건들의 부피는, 지금 이 순간 그를 어디로 인도하고 있을까. 지금도 겹겹이 퇴적하는 삶이 그를 어떤 인간으로 만들었을까. 악인일까? 선인일까? 아마도 둘 다 아니겠지. 어쩌면 그는 내가 연민해 마다하지 않는 그런, 흔한 머저리일 뿐일 수도 있겠지….」


「삼십 미터쯤 떨어진 벤치에 앉은 젊은 여자, 그 앞에 놓인 네이비색 유모차를 본다. 그 그늘에 감춰진 아기는 단순히 사랑의 유전적 복제물이 아니겠지. 두 남녀가 세상에 남긴 하나의 흔적뿐만이 아니겠지. 폭발한 지 얼마 안 된, 그래, 탄생 직후의 빅뱅! 그야말로 갓난아기나 다름없는 우주가 뜨겁게 들끓고 있겠지. 위태롭게 맥동하는 심장의 주변으로 거대한 중력이 삶을 붙잡겠지. 매끈하게 주름 잡힌 상피조직은 앞으로 끝없는 전자기력을 방출하겠지. 아직 조막만 한 두뇌 속,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작은 그 미시세계微視世界는 잠재된 핵력을 숨기고 있겠지. 아기는 그렇게, 자신의 우주를 지탱할 근원적 힘들을 형성하기 시작했겠지. 그 안에 사랑이 가장 거대하게 자라나기를 바라는 건, 내가 아니라 저 어미의 사랑스러운 눈빛이겠지….


지하철 노약자석 앞에 꼿꼿하게 선 노신사를 본다. 그 손에 굳게 쥐어진 낡은 명아주 지팡이를 본다. 그가 지팡이의 제작자가 아님은 너무나 자명하겠지. 분명 십 년 전쯤 동묘나 남대문 같은 곳에서 어느 상인에게 헐값으로 받아냈겠지. 아니면 자식이나 손주에게 선물 받았을까. 그래서 굳이 빈자리 앞에 서서 자랑스럽게 손에 쥐고 있을까. 아마도 그런 것 같다. 그런데 구태여 자리에 앉지 않는 마음은 무엇일까. 살아있음, 혹은 건강함에 대한 자기증명의 뜻일까. 무릎을 꺾지 않으려는 무의식적 의지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시간에 대한 것일 텐데, 그것은 치기 어린 마음이 아니었나? 그래, 노인의 품에도 아가 같은 마음이 있겠지.


…….


그 무한에 가까운 습관은 내게 사람들의 얼굴과 때때로 그 이름, 가족관계, 취미, 생일, 전화번호 등을 기억하는 방법으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내게 하나의 완성된 기억으로 남지 않았다. 그것은 정확히, 그녀의 얼굴을 떠올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 잘 가라며 눈인사를 나눴음에도, 돌아서자마자 그녀의 얼굴은 지워졌다.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생생했던 꿈이 순식간에 잊히듯 잔상조차 남지 않았다. 그녀의 전체적인 움직임, 그러니까 그 총총 걸어 다녔던 모습이나 뭔가에 집중하던 뒷모습 정도는 쉽게 떠올릴 수 있었지만, 몇 분 동안 대화하며 마주 봤던 얼굴, 눈빛만은 도무지…

그러므로, 내 상상의 영역은 그녀의 어깨선 위로 넘어설 수 없었다. 어떤 삶을 살았을까. 어떤 하루를 보낼까. 그녀가 말했던, 언젠가 겪었던 사건들조차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확신에 찬 추측도 불가능했다. 그래서 모든 상상의 기쁨은 무의미할 뿐이었다. 아무리 해도 세워지지 않는 메마른 모래성일 뿐이었다.

모래로 된 안개 같은 답답함을 달래고 싶을 때면 하얀 종이에 검정 잉크로 그녀의 이름을 적었다. 선명하게 쓰인 이름은 어느 정도 그녀의 얼굴을 대신해 주었다. 이름에조차 어떤 마력이 있는 건지, 작은 안도감을 전해줬다. 그 잔잔한 행복감에 의지해 다시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려 했다.

가족들과의 아침 식사시간, 친구들과 나란히 선 사진 프레임, 두 마리 새우처럼 마주 누운 옛 연인의 눈동자 속, 태양과 달이 번갈아 내려다본 사계절, 혹은 오프화이트로 채워진 캔버스 위

그 무한한 해상도로 그려진 프레임, 그녀의 얼굴만은 임파스토 기법으로 칠해진 추상화의 실루엣이었다.

흰색, 아이보리, 살색, 약간의 갈색과 핑크빛을 띤 회색…


때론 잠시라도 시간이 날 때면 눈을 감았다. 한적한 거리를 걷거나, 공원에 앉아 일광욕을 하거나, 카페에 앉은자리가 편할 때, 언제 어디서든 눈을 감았다. 짧은 낮잠에 기대하지 않았던 좋은 꿈을 꾸듯, 흐려진 의식이라면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백일몽을 좇았다.



*



백일몽


너를 보려,

한낮부터 꿈을 꿨지


강줄기 부서진 햇살처럼

담아 둘 수 없는 빛의 가루,

색칠할 수 없는 기억의 편린


백발 연인의 은밀한 속삭임

흐린 추억의 눈부신 틈사이

숨어든 너의 얼굴 불러내려

한밤까지 하얗게 꿈을 꿨지.






상사병자의 꿈 일기

자각몽, 그녀 그리기


상사병을 앓고 있거나 앓았던 사람들을 만나면 묻고 싶다. 그대는 어떤 꿈을 꾸는지?


나는 종종 한 편의 완결된 이야기 같은 꿈을 꾼다. 시작은 항상 모호하지만, 기승전결이 거의 완벽하게 이어지는 꿈을 꿀 때가 많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어쩌면 무의식이 그려낸 불연속적 시상의 쇄편-파편적 사고의 조각들-일 수도 있다. 그것들을 뇌가 논리적으로 끼워 맞추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거나 내 꿈의 끝자락에서 완성되는 이야기는 잠에서 깬 후에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나는 꿈이 달아나기 전에 그것을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다.

꿈 일기를 쓰는 것은 꿈을 꾸고 있다는 인식을 강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사춘기 때부터 이십 대 초년까지는 자각몽自覺夢을 꾸는 법을 터득하기도 했다. 꿈이 꿈인지 확인하게 해주는 미묘한 사고의 방식부터, 어떤 시간에, 어떤 자세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잠에 들면 자각몽을 꾸게 되는 지도 알았다. 때론 가위에 눌리는 부작용도 겪었지만, 종국에는 그조차 극복하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다.

꿈에서조차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걸 인정한 뒤로는 십수 년 만에 자각몽을 시도하게 됐다. 거의 일주일 동안 이어졌던 지난한 과정은 건너뛰고, 어느 날 남긴 기록만 다시 불러온다.


「○번째 시도. 며칠 만에 파란꿈자각몽을 꿨다.

중고등학교 때 살던 동네였다. 지금은 현대식으로 바뀐 재래시장의 옛 모습. 비가 내려서 다닥다닥 늘어선 조악한 천막마다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특수 렌즈를 끼운 듯한 푸르스름한 기운. 무엇보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장면. 꿈이라 확신했다.

낯설지만 익숙한 느낌. 날아볼까 생각하지만 그만둔다. 하늘을 날아보려다 잠에서 깨버렸던 날들이 한두 번이었던가. 너무 무리한 생각을 하면 잠에서 깨버리게 된다. 잠들기 직전처럼 자연스러워야 한다. 아무도 없는 학교를 떠올리자. 복도에 왔다. 호흡을 천천히 하자. 깨면 안 돼.

없던 물건을 생겨나게 하려면 갑자기 뿅 하고 나타나게 해선 안돼. 최소한 주머니를 뒤적거리는 인과관계가 필요해. 복도 끝 모퉁이를 돌면 교실이 있을 거야. 우선 밤이 좋겠다. 계속 아무도 없어야 하니까. 모퉁이로 향하면서, 창가자리에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자. 이제 문을 열면 그녀가 보이겠지. 천천히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자.

…….

이런.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낯선 사람이다. 일단 한 번 깨야겠어.」

잠에서 깨어 곧장 잠에 들려했다. 그렇게 하면 애쓰지 않아도 자각몽은 이어지기 쉽다.


「○번째 시도. 아마도 학교라는 공간이 주는 왜곡이었겠지.

그녀와 함께 걸었던 그곳을 떠올리자. 꿈이 맞아떨어진 이 느낌. 주변 모든 것들이 단단하게 자리 잡은 이 느낌. 다행이다. 이제 멀리 보이는 모퉁이를 돌면 그녀가 서있다. 내 기척에 뒤돌아보며 평소처럼 인사한다.

…….

이런. 아무도 없다.

포기하면 안 된다. 다시 누군가의 기척을 떠올리자. 이번엔 내가 돌아서면, 그녀가 웃으며 인사한다.

…….

이런. 아무도 없었다.」


날이 밝았다. 눈을 뜨자마자 꿈속에서 본 것들을 꾸밈없이 적어냈다. 초엽의 두근거림부터 마지막 시도 이후로 이어진, 꿈이 꿈인 줄 몰랐던 헛꿈의 잔상들까지.

출근을 준비하기 전, 잊고 지냈던 오래된 꿈일기를 살펴봤다. 떠나보낸 연인들의 기록들도 있었다.

길고 짧았던 만남의 순간들을 떠올렸다. 어느 데이트 장소를 두고 거기가 어디였더라, 갸우뚱하긴 하지만,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내 이름을 불렀던 그들의 목소리, 남들과 구별되는 특유의 입맛, 좋아하는 영화 장르는 물론이고, 남몰래 숨겨진 점의 위치나 벌거벗은 잠버릇 같은 은밀한 비밀도 기억했다. 그 울고 웃는 얼굴들은 멀리서도 알아볼 정도로 선명했다. 지금도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것처럼.

모든 사랑을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사랑하면, 그래서 이별마저도 사랑하게 되면, 그런 결과가 따르는 법이었다.

그래서 떠오르지 않는 그녀의 얼굴은 풀리지 않는, 괴로운 수수께끼였다.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 그건 호감의 변덕인가? 연모의 방해인가? 호기심의 장난인가? 내겐 초능력이나 다름없던 한때의 잠버릇도, 옛사랑의 기억들도 힌트를 주지 않았다.






어느 날은 운 좋게도 그녀와 단 둘이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여느 때처럼 평범했던 대화였다. 다만 예상보다는 길었던, 며칠사이 보다 더 장난스러운 대화였다. 나는 언젠가 다짐했던 대로 치심을 감추며 그녀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녀의 머릿결이 어떻게 검은지, 그녀의 눈썹이 표정을 짓는 방식이 어떤지, 그녀의 코와 입술 언저리가 담아낸 특징은 무엇인지, 특히 그녀의 눈동자가 반사하는 빛깔, 다른 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든 것을 확실히 새겨두고 싶었다. 모든 감각을 그녀의 보이는 것들에 집중했고, 막상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듣지 못했다. 분명 실없는 농담은 아니었을 텐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더 자주 마주쳤다.

더 많은 마주침, 더 실없는 농담, 더 큰 웃음소리.

오늘 밤 꿈에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더 잦은 기억상실뿐이었다. 그날의 퇴근길에서조차도 얼굴만은 여지없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난 며칠간의 대화를, 그 주고받은 문장들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도 읊을 수 있지만, 얼굴만은 절대 그려지지 않았다. 불현, 짝사랑의 자리를 너무 오랫동안 비워두었던 대가일까 생각했다.



*



상사병의 원인

겁쟁이의 사랑방식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어느 날엔 혼자서는 도저히 밝혀낼 수 없음을 깨닫고 검색창을 열었다.


검색 > 좋아하는 사람_얼굴_기억나지 않는 이유


호감이 너무 크거나 긴장을 하면 상대방의 얼굴 특징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 AI 답변의 총론이었다. 그 출처불명의 답변에 만족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증상과 관련된 내용은 간추려진 AI의 답변 외엔 찾을 수 없었다. 영문판이든 중문판이든, 심리학 논문이며 온갖 위키wiki 자료들의 각주까지 살펴봤지만 소용없었다. 자취가 남지 않는 SNS에 사연을 올려보기도 했다. 몇 사람들의 공감을 얻긴 했지만 전문적 답변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정신과에 가봐야 하나? 그럴 리가. 신경과?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논리적인 접근은, 일전의 AI와 조금 더 깊은 토론을 나눠보는 것뿐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아. 왜 그런 거지?” AI에게 물었다. 사람이 아닌, 망상의 존재도 아닌 방대한 데이터의 산물, 그것과 한 시간을 넘도록 대화를 나누게 될 줄은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그 주제가 사랑이라니. 어쨌든 AI와 나는 몇 가지 결론을 얻어냈다.


[ 하나. 과도한 도파민 분출 ]

일평생 짝사랑 전문가를 자처해 온 나는, 예나 지금이나 사랑에 관해서 만큼은 인간의 감정이 단순한 호르몬의 작용일 뿐이라는 관점을 혐오한다. 하지만 내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분명 마음이 아닌 머릿속,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구불구불한 뇌에서 벌어지는 것이었다. 과도하게 분출된 도파민이 신경세포를 자극해서 그것들의 정상적인 정보처리 과정을 방해한다는 것. 인정할 수밖에 없는 유물론적 관점이라니! 하지만 그런 해석도 썩 나쁘지 않았다.

너무 좋아서 눈에 뵈는 게 없어진다는 거야.

너무 사랑하게 돼서 감각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거야.

훗날 떠올린 비유는 이랬다. 콩깍지가 씌워지다 못해 눈이 멀어버린 걸까.


[ 둘. 감정적 긴장으로 인한 기억형성 방해 ]

숱한 짝사랑들을 돌이켜 보면 늘 무력감을 느끼곤 했음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한다. 아직도 추려내고 삭제하지 못한 어느 날의 글들은 손발톱이 오그라들 정도로 절절한 무력감을 기록하고 있다.

이 아이의 입술이 내 심장을 쥐고 있어···

저 여자의 손짓이 내 강의 흐름을 막고 있어···, 따위의 낯부끄러움들.

그 녀석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나는, 호랑이 앞에 잡힌 토끼인 셈이었고, 살아남은 토끼는 호랑이의 형상을 떠올릴 수 없는 '해리성 기억장애'를 앓게 된 것이었다.


[ 셋. 현상現象을 압도하는 감상感想 ]

이상적인 감상은 경험했던 현실을 바꾸기도 한다. 다니엘 캐니먼Daniel Kahneman의 흥미로운 연구와 그 복잡한 과정을 건너뛰면, 기억이 경험보다 중요하다,라는 결론에 이른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내가 그녀를 알게 됐다는 경험은 객관적 현상이자 서로 다른 두 관찰자가 동시목격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나의 기억은 오직 주관적 인지와 그녀에 대한 환상, 불순한 의도와 욕심이 뒤엉킨 야릇한 산물이었다.

그녀는 나를 압도한 것이었다.


[ 넷. 주의분산 ]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 보면, 특히 둘 뿐인 공간에 있게 되면 종종 바보 같은 말이나 행동들이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앞서 언급된 세 가지 이유들에 이어져서, 그것들과 마찬가지로, 사랑은 때때로 상대방으로 하여금 감각을 분산시키기도 한다. 아! 그래서 그때…, 하며 어처구니없던 내 모습들이 스쳐갔다.

당신의 얼굴보다 당신의 존재 그 자체, 당신의 움직임, 당신의 목소리가 앞서 내 감각을 흐트러뜨린 것이었다.


[ 다섯. 회피심리 ]

이 세상 모든 짝사랑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겁쟁이들의 순수한 사랑의 방식이라는 것. 그것이 AI-오늘날 최대 지성의 대변자-의 마지막 결론이었다. 늘 그랬지만서도, 다시 한번 나는 지독한 겁쟁이구나, 하는 생각에 닿았다.

네가 무서워.

그래도 괜찮아.

지난 연인들이 자못 겁쟁이였던 나를, 몰래 감췄던 순수한 불순을 여과 없이 받아줬던 것이라는 사실에 잠시 흥분스러웠다.

하지만 이미 앓게 된 「그녀 한정 기억상실증」은, 그녀의 얼굴을 떠올릴 수 없다는 사실이 단순한 기억의 결핍이 아니라 내 감정과 공포로부터 도망치려는 방어기제였다. 회피심리라는 겁쟁이 반응의 극치... 그 사실은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이제 내 상사병과 그 증상의 원인은 시원하게 밝혀진 한편,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떠오르지 않는다.






행복한 슬픔


그녀의 존재는 잊고 지냈던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그것은 '괴로운 행복', '행복한 슬픔' 따위로 일컬어진 모순이었다. 괴로운 행복이라니. 한동안은 마음의 평온을 찾기 위해 애썼다. 그녀로 인해 엎질러진 행복의 가치를 수습하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지나간 어느 날을 떠올렸다.


겨울이었다.

집도 절도 없이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나앉았던 1월. 그동안 이뤘던 크고 작은 성공들은 온데간데없었다. 온갖 불행이 눈 위에 서리, 서리 위에 눈으로 몰아닥쳤다. 제대로 된 옷가지를 챙길 새도 없었다. 낯선 곳에서의 겨울나기, 말 그대로 생존을 목표로 하루하루를 보냈던 때였다.

온 세상에 내리깔린 추위에 비하면 가을코트는 거적때기나 다름없었다. 그 코트 한 벌로 아침저녁 투잡을 뛰며 한겨울과 늦봄 추위를 견뎌야만 했다. 하루 중 편하게 쉬는 건 고작 서너 시간, 타인이나 다름없는 집안 어른 댁에서 잠을 잘 때뿐이었다. 수면부족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몸에 여기저기 붙어있던 살덩어리를 앗아간 건 추위와 배고픔, 왕복 이삼십 킬로의 출퇴근을 감당해야 했던 하루 사만구천 보의 걸음이었다.

통장에 만원도 안 되는 금액이 찍힐 줄이야. 당장 두어 달 전만 해도 푸근한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차를 살까 고민하다 오토바이를 샀었다. 남은 돈으로 보증금을 올려 복층 오피스텔로 이사했었다. 평소 리스트에 올려 두었던 브랜드 구두를 두 켤레, 겨울 양복과 코트를 사뒀었다. 만나던 연인에게 이별을 고했었다. 새로운 출발이라 여기기에 부족함이 없던 때였다. 그러나 어둠 속 급류急流는 보고도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2월 25일 새벽 3시. 봄의 기척이라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치가 떨리다 못해 온몸을 바들거리며 퇴근하는 길이었다. 낯선 집으로 돌아가봤자 한두 시간밖에 못 잘 터였다. 차라리 걸음걸이라도 아낄 겸 아침일터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 구석에 몸을 기대고 열풍기를 쐬며 몸을 녹일 생각이었다.

시간감時間感마저 얼어붙은 두 달을 버텨냈건만, 입춘이 지난 지 한참이건만!

떠밀릴 정도로 세차게 몰아치는 서풍에 온몸으로 맞섰던 그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얇은 가을코트를 벗어 아무렇게나 어깨 위로 걸쳐 쥐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어느 노래의 피아노 전주를 시작으로 흐느낌이 차올랐다. 그러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야말로 길 잃은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인간이 아냐, 믿을 수 없어

그 울부짖음은 버려진 존엄과 그 설움에 대한 것이었다. 무너진 모든 것들에 대한 항복이었다. 언덕배기를 오르며 가빠진 숨 때문이었는지, 술기운 탓이었는지, 눈물의 온기 때문이었는지? 어찌 된 영문인지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옹벽을 무너뜨리고 쏟아져 내린 혹한의 슬픔이 처절하게 감동적일 뿐이었다. 뜨거운 눈물과 쉰 웃음이 번갈아가며 펑펑 쏟아져 얼굴에 번졌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건지 의문했다.


몇 시간 전이었다.

저녁일터에서 홀로 야근을 마치고 퇴근했다. 하루 종일 굶은 허기를 달래기 위해 24시 편의점에 들어갔다. 천 원짜리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나와 공원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어느 승용차 보닛 위에 누군가 올려놓고 간 하얀 쇼핑백에 눈길이 닿았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나는 컵라면의 온기를 손에 쥔 채 다가갔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지 살폈고 그 속을 들여다봤다. 일전에 즐기곤 했던 위스키 한 병과 샌드위치 두 개가 들어있었다.


…….


내가 알고 있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욕심내는 사람. 내 안위를 위해 신의를 등지는 사람. '최선이었다' 변명하는 사람. 위악僞惡을 내세울지언정 위선 떠는 것은 죽어도 싫었다. 하지만 절망이란 그 모든 신념을 배신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날의 절망은 배고픔을 채우고 싶다는 간절함 같은 것이었고, 나는 그것이 누군가 내게 건넨 선의善意라 믿으며 집어 들었다. 멀지 않은 벤치에 앉아 오들오들 떨리는 손으로 뚜껑을 따고, 샌드위치 포장을 벗겨냈다. 고백하건대, 그 순간 시린 발끝부터 어떤 행복감이 차올라 온몸을 휘감았다.

차가운 샌드위치 한 입, 얼음장 같은 위스키 한 모금.

아직 따듯한 컵라면 한 입, 다시 얼음장 같은 위스키 한 모금.

여유 부릴 시간은 없었다. 남은 쓰레기를 근처 분리수거장에 정성스럽게 치우고 걸음을 재촉했다. 발길이 느려져 잠시 뒤돌아 봤다. 낡은 흰색 소나타 보닛 위로, 앙상한 단풍나무로 그늘진 조잡한 벤치 아래로, 지저분한 분리수거장 마대자루 앞으로, 등뒤로 흘린 발걸음 뒤로…, 낯선 위선자의 허물이 곳곳에 버려져있었다. 취기는, 언덕배기 경사를 타고 올랐다. 인간이 아냐, 눈물이 되어 쏟아졌다.


훗날에서야 그날을 떠올리길, '가장 행복했던 슬픔'이라 이름 지었다. 그러고 보면, 나의 이 상사병도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연히 눈길에 닿은 당신은, 그때 누군가의 쇼핑백.

몰래 거머쥔 한 번의 선택은, 그때 나의 조바심.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슬픔은, 그때 나의 자책감.

마음대로 취해버린 사랑은, 그때 마다하지 않은 행복감.

얼굴을 떠올릴 수 없는 괴로움은, 그때 눈물로 흐른 의문.


'행복한 슬픔'이 아니고서야 그 증상을 설명할 수 없었다.



*



혹자는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라 말하고, 필자는 종종 짝사랑을 예찬하며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랑은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감내하는 일이지요. 기쁨이 사라진 사랑은 어떻게든 닫아내야 해요. 긴 슬픔은 불행으로 이어지는 법이니까요. 그러니까, 영원한 사랑은 함부로 꿈꿔선 안 되는 거예요. 불행해지는 순간 결심하세요. 다시는 짝사랑은 하지 않겠다고.」


슬픔과 불행은 다르다.

슬픔이란 코트를 벗어던지고 기꺼이 껴안는 혹한의 바람.

불행은 뼈와 살을, 신념조차 먹어치우는 허기일 뿐이다.



*



노인과 남자의 대화는 십수 년 전 보았던 어느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그러니까, 자네는 행복해지기 위해 위험을 무릅썼다는 것이지, 나중에 슬퍼질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리고 지금은, 슬프다는 거고.

So, you took a chance, on being happy, even though you knew that later on, you would be sad. And now, you are sad.


맞아요.

Yeah.


그래서, 뭐가 문제지?

So, what's the problem?


너무 슬퍼서요.

I'm too sad.

저기요, 저는... 저는 그녀를 사랑한다는 감정을 좋아했어요. 좋았죠. 하지만 그녀는 떠났고, 그녀가 그리워요. 그리고 이게 엿같다는 거죠.

Look, I... I liked the feeling of being in love with her. I liked it. But now she's gone and I miss her, and it sucks.

그리고 이렇게까지 나빠질지 생각하진 못했어요. 또 생각한 건, 이렇게까지 슬퍼질 거였다면 왜 행복해했나, 그럴만한 가치가 없었다라고요.

And I didn't think it was gonna be this bad, and I feel like, why even be happy if it's just gonna lead to this? It wasn't worth it.


이봐, 고통은 비참함만 가져다주는 게 아닐세.

Boy, misery is wasted on the miserable.


뭐라고요?

What?


있잖아, 난... 자네 이름이 뭔진 몰라도, 자네는 전형적인 멍청이야.

그녀와 시간을 보내고, 키스하고, 같이 즐기고, 그런 것들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 게 사랑일까?

You know, I'm not... entirely sure what your name is, but you are a classic idiot.

You think spending time with her, kissing her, having fun with her, you think that's what it was all about? That was love?


그럼요.

Yeah.


지금 이게! 바로 사랑이야. 그녀를 그리워하는 거! 그녀가 떠났기 때문에, 죽고 싶어 하는 거!

자넨... 정말이지 운이 좋네. 자넨 걸어 다니는 한 편의 시지. 아니면 판타지 같은 장르가 되고 싶나? 디즈니 놀이동산 같은? 자네가 바라는 건 그런 건가?

This! is love, missing her! because she's gone, wanting to die!

You're... so lucky. You're like a walking poem. Would you rather be some kind of a fantasy? Some kind of a Disney ride? Is that what you want?

모르겠나, 지금이 바로 사랑의 '좋은' 부분인 거야. 이게 자네가 늘 바래왔던 거야. 이제야 마침내 자네 손에 쥐게 된, 사랑의 달콤한 결정체인 거야. 달콤하고, 슬픈 사랑. 자넨 그걸 버리고 싶나, 그렇다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걸세.

Don't you see, this is the good part. This is what you've been digging for all this time. Now you finally have it in your hand, this sweet nugget of love. Sweet, sad love and you wanna throw it away. You've got it all wrong.


저는 지금 이게 '나쁜'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요.

I thought this was the bad part.


아니야!

No!

'나쁜' 부분은 자네가 그녀를 잊었을 때인 거야. 그녀가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을 때,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을 때인 거야. 자네가 말한 그 '나쁜' 부분은 지금도 다가오고 있어. 그러니 실연의 아픔을 즐기게. 할 수 있을 때 말이지. 제발.

The bad part is when you forget her. When you don't care about her, when you don't care about anything. The bad part is coming so enjoy the heartbreak while you can, for God's sake.

머저리 행운아 같으니. 난 마릴린이 날 버리고 간 후로는 실연당한 적이 없어. 내가... 서른다섯 살이었을 때 이후로. 그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다면 뭐든지 할 텐데.

Lucky son of a bitch. I haven't had my heart broken since Marilyn walked out on me, since I was... I was 35 years old. What I would give to have that feeling again.

그거 아나? 자네 이름이 뭔지는 정말 몰라도, 자넨, 자네는 내가 만나본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사람일 걸세. 기분 나빠하진 말게. 자네, 자네는... 쓰러지지 말게.

You know? I'm not really sure what your name is, but you, you maybe the single most boring person I have ever met. No offense... You, you... Don't fall down.


- <Louie> S04, E10



*



"당신이 그 어떤 것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붙잡으려 하지 마시오.

그 사람이 당신에게 돌아온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지만

만약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처음부터 당신의 것이 아니었다오."


- 영화, <은밀한 유혹 Indecent Propsal, 1993>





행복한 슬픔에게.

한동안 비가 내렸다. 이 비가 멈추면 잠시 눈을 가린 사이 겨울이 다가와 있겠지. 그리고 너는 다가온 계절 반대편으로 멀어져 있겠지. 이번 겨울은 지난 몇 년의 것보다 더 추운 바람이 불 것 같아. 눅눅했던 공기는 벌써 차갑게 식어서 가벼워졌고, 곧 눈발이 쏟아져 내려서 이별을 두꺼운 필체로 써내겠지. 조금의 햇빛도 들지 않는 먹구름 아래로 하얗게 쌓여가겠지.

그래도 나는 겨울이 가져다주는 모든 것들을 사랑해. 몸서리치게 추웠던 어느 겨울의 절망조차도. 그런 나는 이번 겨울이 가져다주는 것들로 위로를 얻을 테지. 그러니 널 보내는 지금의 이별마저도 사랑하겠지. 다만 그 시간도 지나가면, 흑백사진이 되어 스쳐갈 몇 장의 기억들로 몸서리치겠지.

스며들었던 계절의 눈물이란 게 정말 있는 것이었는지, 마음속 어딘가, 무언가 솟아올라. 그건 내가 오래전 잃어버렸던 감정들이겠지. 그리고 네가 헤집어놓은 조각들이겠지. 위태로운 일이란 걸 알면서도 마음껏 주워 모았고, 지금은 바보 같은 일이었나 의심하기도 한다. 행복한 만큼 슬프기 때문이겠지.

지금도 그려지지 않는, 사무치게 보고 싶은 네 얼굴이 어느 날 갑자기 선명하게 떠오르면 어떡해야 할까.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고 인정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드디어 그려낼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해야 하는 걸까? 두려운 건, 더는 너로 인해 괴롭지 않게 될 날들이야. 더는 너 때문에 외롭지 않게 될 날. 그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네가 내 곁에 있게 된 날일 뿐일 텐데.

나의 심장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뛰어. 사랑하는 마음을 은유한 시적인 표현이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내 심장은 한쪽으로만 숨을 쉬어. 병실에 누워있던 그날 의사 선생님이 그랬어. 내 심장은 아픈 게 아니라 조금 다른 거라고, 다만 병에 걸리게 되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아프게 될 거라고. 갑자기 뛰지 않게 될 수도 있다고. 내 심장의 박동을 그린 검사표를 보면서, 토끼귀 모양으로 뛰고 있는 그래프가 귀엽다고 생각했지. 토끼처럼 뛰는 내 심장이 갑자기 멈춰버릴 수도 있다니. 어두워진 병실에 혼자 누워있을 때 눈물이 났어. 그때 나는 내가 가진 것들 중에 내 심장을 제일로 사랑하기로 했지. 그리고 너는...

내 심장만큼은 정도껏 떨리게 했어야지. 그랬던 때가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따지기도 힘들어. 아니, 그래도 언젠가 빠졌어야만 하는 사랑이라면, 그때가 딱 적당한 날이었겠지. 너라는 사람을 두고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단 한 번도 착각한 적은 없었어. 잠깐의 대화 속에서도, 찰나에 마주친 네 눈동자 속에서도, 선물 같은 우연이 우리 둘 사이에 머물렀던 순간에도, 네가 없어 온통 회색이었던 날에도, 그 모든 순간마다 알았지. 언제든 멈춰버릴 수도 있는 내 심장이, 매일 아침 너를 사랑하겠다고 선택하리라는 것을 말이야.

어쨌든 내가 널 사랑하는 건 별다른 이유가 없어. 구태여 덧붙이자면, 그건 너의 존재가 나의 행복이기 때문이지. 다만 지금도 네 얼굴을 떠올릴 수 없는 이 괴로움은 그 대가라고 해도 충분하겠지. 행복은 위험을 무릅써야만 하는 일이었나 생각했어. 짐짓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걸, 그 끝에 슬픔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훗날에선 떠올렸지만, 나는 행복한 일이라면 주저하는 법이 없어. 씁쓸한 커피와 달콤한 쿠키를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널 찾아냈다는 기쁨이 하늘 높이 떠서 고개를 올려다봐야만 했지. 그건 태양이라 해도 손색없었어. 널 잃는다는 슬픔이 태양까지 집어삼키지 않을까 걱정했어. 네가 태양처럼 빛났던 순간들이, 그 웃음과 대화의 시간들이, 네 손끝이 남긴 별조각들이... 내 심연의 밑자락에 닿지 않기를 바랬지. 하늘이 높은 줄 모른다면 어둠이 조금은 덜 괴로울까. 그렇다면 다시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살지 않을 텐데. 이 어리석은 생각을 떨쳐내기엔, 이번 계절은 느리게만 흐르네.

그래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 네가 남겨준 이 슬픔도 지나간 행복이 남긴 것들과 함께 가라앉겠지. 들여다볼 때마다 얼마든지 은빛으로 모습을 드러내겠지. 가라앉아 신호하는 그 별무리들을 떠 올리는 일을, 나는 여전히 사랑하겠지.

그러니 너는 너만의 행복을 위해 슬픔을 무릅쓰길 바래. 다만 그것은 현명해야 하는 일이기에, 사랑 앞에 어리숙할 네가 걱정될 뿐이야. 그래. 몇 번의 상처가 네게도 필요하겠지. 그렇다면 나는 자신이 없어. 네게는 단 하나의 생채기도, 그 어떤 슬픔도 영영 주고 싶지 않을 테니까.

삶이란, 절반 정도의 행복과 나머지 절반의 불행으로 살아간다지. 그러니 이 슬픔의 깊이만큼, 기쁨도 언젠가 높이 떠오르겠지. 그날은 어쩌면, 만에 하나의 확률로 네가 내 곁에 머무르게 된 날일지도 모르지. 행복한 슬픔이 되어 준 네게 이렇게 미련과 감사를 남길뿐이야.

어느 날 네 얼굴을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인정할 수도 있겠지. 널 잊었다고. 하지만 이 지독한 상사병은 언젠가의 때늦은 추위처럼 도무지 가실 기색이 없어. 그래서 조금은 안심이 돼. 이 슬픔은 그때 겪어봤던 행복이었으니까.

마지막으로, 내가 지워질 너의 삶에 진심 어린 행복은 빌어줄 수 없다고 생각했었어.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지금은, 내 심장보다 소중한 네가 행복하길 바랄 뿐이야. 그리고 언젠가 꿈에서 널 만나게 된다면, 그땐 환하게 웃는 네 얼굴을 보고 싶을 뿐이야.


A로부터


ps. 시간은 영원하지 않고, 우리의 시간도 초단위로 사라지고 있어.

그러니 언젠가 내게 다가와 준다면,

네가 준 별무리가 빛을 잃기 전이길,

내 토끼 같은 심장이 멈추기 전이길 바래.

그렇다면 나는 믿을 수 있겠지. 이별도 영원하지 않았다고. 너만이 내게 영원하다고.








오늘도 행복한 슬픔입니다.

마냥 웃기만 할 수도, 또 슬퍼만 할 수도 없습니다.

꿈에서조차 편하게 쉴 날이 없습니다.

좋아하는 것들이 가뜩이나 많은 내게

당신은 슬픔마저 좋아하게 하는군요.

가을을 손꼽아 기다렸던 나는

이제 겨울이 오기만을 기다립니다.

겨울이 왜 이리 좋은지,

내 심장은 눈토끼를 닮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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